결혼하지 않는 도시 -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신경진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로 결혼과 출산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보내오는 청첩장이 늘어나고, 누구는 벌써 아이가 있다더라는 소식들을 듣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로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끼리끼리라고(...) 나나 내 친구들은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대화는 대개 막연한 상상으로 흘러가는 편이다. 나는 이런 결혼을 하고 싶어… 근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 끝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끝나기 일쑤라 나는 홀로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을 더해보곤 했다. 우리의 삶에서 결혼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랑이 곧 연애가 되고 연애가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왜 자연스러운 흐름일까, 같은 생각들.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어느 하나 명확하게 끝나는 법이 없어 오히려 답답함이 가중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으면 사랑이 소멸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책을 만났을 때 어쩌면 그 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결혼하지 않는 도시>는 과거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던 저자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로, 단순하게 말하면 사랑을 주제로 한 연애소설이다. 책은 신혼여행지에서의 고백으로 삶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영임과 하욱 부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우와 태윤, 은희, 용재, 네 남녀의 복잡한 관계와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에서 자신의 것을 찾으려 애쓰는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하게 말하면 연애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결혼하지 않는 도시>는 각각 다른 세대의 인물들을 통해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연애상, 결혼상의 변화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변화를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인지 이들의 사랑은 몽글몽글한 핑크빛 로맨스나 한순간에 삶을 뒤흔들어놓는 강렬한 로맨스 대신 차갑고 날 선 시선들로 담겨 있다.


먼저 영임과 하욱 부부의 이야기. 신혼여행 중에 남편의 삶이 거짓으로 점철된 것임을 알게 된 여자가 사랑을 믿지 않는다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10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사람을 흠칫하게 만든다. 첫 시작부터 무차별적으로 쏟아져내리는 냉소적이고 경멸 섞인 시선들은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안고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임은 결혼을 하고, 속았음을 알았음에도 이혼하지 않은 채 자식을 갖는 것에 집착하고, 결국 겉보기에는 완벽한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 살아간다. 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라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는 얽히고설킨 네 남녀의 이야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복잡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충동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얽히고설킨 이들의 모습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이들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는 게 맞을까. 어떤 것이 진실인 것일까. 그들이 한 것은 사랑이 맞는 걸까. 이와 같은 온갖 혼란 속에서도 이들의 이야기가 '결혼'으로 종착된다는 사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반면에 한나의 이야기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앞선 이들의 이야기가 결국 결혼으로 종착된다면 한나는 <결혼하지 않는 도시>라는 책의 제목처럼 결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려움 속에서도 홀로 아이를 낳아 아이와 둘이 살아가고, 그러한 삶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그의 모습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는 성소수자인 그의 친구 찰스와 "결혼하지 않으면 사랑이 소멸된다고 생각하세요?(264p)"라고 묻는 태영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각기 다른 사랑과 삶의 모습은 보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아마 현재 나와 같은 세대의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이 가지 않았나 싶다.


*


<결혼하지 않는 도시>를 보면서 변화해온 시대상과 결혼상을 쭉 되짚어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앞으로의 삶과 결혼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명확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어떠한 가능성을 본 기분이랄까.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인물들의 시선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느껴져서 조금 힘들었다. 독서를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이거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우울감에 몸도 마음도 축 늘어질 정도였다. 그나마 한나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한숨만 내쉬었을지도. 앞서 주제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긴 했지만 자칫 <결혼하지 않는 도시>라는 책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만큼 극단적이었다.


그래도 마냥 핑크 핑크 예쁜 사랑 얘기가 아니라서,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또 그들의 이야기가 세대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펼쳐지는 대신 시점과 중심인물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전개되어 이 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는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까지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켜 책에 집중하게 만들고 곱씹게 만들었다. 덕분에 새로운 자극과 여러 가지 생각을 얻을 수 있었으니, 예쁘고 직관적인 사랑 얘기 대신 새로운 양상의 이야기를 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계인 게임
오음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닌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제아무리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도 그가 느낀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할 수 없고, 그와 함께 같은 것을 보고 먹고 경험하더라도 그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완전히 똑같을 수가 없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고 부르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더라도 그 속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타인이 있다. 어쩔 때는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족, 다른 생명체, 그러니까 외계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자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로 쏟아내는 대신에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언어로 손짓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너의 이야기가 나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의 손짓이 너를 일으키기도 한다. 비록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의 존재가 의지가 되어 두 눈을 감고도 나아갈 힘이 된다. 바로 <외계인 게임> 속 다섯 남녀처럼 말이다.





<외계인 게임>은 저마다의 아픔과 사정을 안고 여행자들의 천국 파키스탄 훈자로 떠나온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옴니버스 소설이다. 각자 태어난 곳도, 현재의 직업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다른 다섯 청춘이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여 함께 하면서 보내는 날들과 이곳에 오기까지의 사정을 각자의 시선으로 한 명씩 풀어낸다.


언뜻 보기에는 다섯 사람 모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존재들이다. 먼저 28세 중학교 국어 교사 김설. 엄격한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 밑에서 사춘기란 것도 모르고 자란 얌전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아버지의 바람대로 교사가 되었다가 뒤늦게 방황하는 사람이다. 32세 영상 번역가 남하나.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지만 책임감 있게 제 손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멋있는 사람이다. 40세 소설가 최낙현. 자기 세상에 심취하여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밤낮없이 괴로워하면서도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22세 대학생 전나은. 눈부시게 빛나는 청춘 그 자체로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해맑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29세 여행자 오후. 역시나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능글맞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일 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정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에 대한 생각은 백팔십도로 바뀐다. 가장 평범하고 무난해 보이지만 복잡한 사랑으로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보는 이가 겁이 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김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고단하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남하나, 자의식에 가득 차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 빛바랜 눈물을 숨겨놓은 최낙현, 그 어떤 것에도 뛰지 않는 무미건조한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는 전나은, 그리고 누구보다 순수한 사랑을 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오후.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질수록 결국 이들 역시 완전한 타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계인 게임>은 이렇듯 완전한 타인이 모여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 어울리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이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도 결국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실감하게 만든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타인이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고,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타인에 대해, 이해와 공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타인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서 힘을 얻고 있음을,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외계인 게임>이라는 제목 때문에 처음엔 비현실적인 판타지풍의 소설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어떤 책보다도 생생한 현실감을 보여줬던 책.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참 좋은 책이었다.


*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글입니다.

우리의 삶에, 마침내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다.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었다. - P3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희일비의 맛 - 이게 바로 주식하는 재미
홍민지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 인구의 절반이 주린이를 자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열기야 작년에 비해 덜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주식판에 뛰어들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옆 직장 동료도 개미로 살고 있고, 가족모임에서도 주식 얘기는 빠지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오로지 나만 고양이 없, 아니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안 하면 바보다, 누구는 얼마를 벌었다, 더 후회하기 싫으면 얼른 들어와라 등 온갖 사탕발림이 오고 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긍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개미의 수만큼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그들의 절절한 애환 서사도 늘어나고 있다. 멍들었다 퍼렇게 물들었다며 농담처럼 오고 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나 신화가 아닌 현실이다. 그야말로 멘탈이 갈려나가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판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 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주식과 함께 보낸 10년의 애환을 가감 없이 풀어놓으면서도 결국 그 맛에 대해 논하는 책, 바로 <일희일비의 맛>이다.




책 <일희일비의 맛>은 직장 선배들을 따라 얼떨결에 판에 뛰어들어 어느덧 10년 차 개미가 된 저자의 주식에세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초반에 쓰린 맛을 보고 손을 뗐다가 다시 이 판에 등판, 울고 웃은 저자의 경험을 꾹꾹 눌러 담은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에세이'로써 저자 개인의 이야기가 듬뿍 담겨있다는 것이다. 주식서적이라고 하면 보통 방향이나 방법 같은 것을 알려주는 실용서로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하는데 반해 이 책은 저자가 울고 웃었던 일희일비의 순간들이 모두 담고 있다.


저자는 '저렇게 해도 되나?'싶을 정도로 허술한 매매에 불태우기는 쉽게 엄두 내지 못하는 소심함, 보면서도 의심이 될 정도의 판단력(작가님. 죄송합니다)을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물론 그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빠르고 명확한 매도, 끈질기게 버텨서 잡은 기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기심과 추진력 역시 그 속에 담겨 있다. 주식과 함께 울고 웃는 이야기들이 그의 필력과 어우러져 재미있게 펼쳐진다.


게다가 각 잡고 쓰는 실용서가 아닌 가벼운 에세이라서 이 판과 판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물타기, 불태우기, 보통주/우선주 등 주식문외한은 알 수 없는 것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일희일비의 맛>은 특정 테마를 가진 에세이답게 모든 게 그와 연관되지만 오직 그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서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옷을 살 때 기본 템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화려한 것들만 선호하는 그의 쇼핑성향이나 쇼핑메이트에 대한 철학(?),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 당근마켓 중독, 직구 중독 등 소비지향적 인간의 삶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주식과 연결되는 것도 제법 재미있다.


저자의 글솜씨가 어찌나 훌륭한지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 '어? 이거 해볼 만한 거 같은데?'라는 생각과 '야~ 이거 안 되겠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동일한 테마를 이야기하는 영상이나 도서를 봤을 때 느꼈던 나와는 다른 종족, 다른 나라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냥 내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의 이야기 같아서 그의 울고 웃음에 함께 울고 웃으며 혹하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기도 했다. 그가 이익을 본 종목을 슬쩍 눈여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역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 그의 경험과 경험을 통해 나온 이 책이 제법 매력적이지만, 그가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만 다시 생각해도 이 주식이 대체 왜 상을 치는 건지 주주였던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장에서 우리는 주식을 하고 있다. - 145p



어쩌면 나는 평생 '일희일비의 맛'은 모르고 살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을 담은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늘 크고 작은 행복들로 가득 차 있다. 취업이나 여행, 승진, 성공처럼 크고 특별한 행복은 물론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소박한 식사,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누는 친구와의 수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고양이처럼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이 늘 우리와 함께 한다.


다만 작은 것들이 으레 그렇듯 작은 행복 역시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흘러 곱씹어 보았을 때에야 그것이 찰나의 반짝임으로 나를 긍정하게 만들어준 행복임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존재를 끝까지 모른 채로 살면서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것이냐고 한탄하기도 하고, 눈이 멀 정도로 빛을 발하는 큰 행복만을 좇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눈을 기르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돌보지 않는다면 삶은 쉽게 불행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현 작가의 글은 참 고마운 존재다. 2017년 출간한 베스트셀러 <달의 조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하현 작가는 신간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를 통해 다시 한번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는 제목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칠법한, 하지만 분명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나를 긍정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누구나 쉽게 지나칠법한 일상의 조각들과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그 손길 속에서 지극히 평범해서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던 것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모습은 언뜻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실 저자가 어루만지는 조각들이 처음부터 모두 빛나는 것은 아니다. 힐튼 호텔을 예약한 덕분에 떠나기 전부터 빈틈없는 행복을 느꼈던 엄마와의 여행, 알레르기 때문에 괴롭지만 언제나 환상적인 맛을 선사해 주는 복숭아, 학교에서 회사에서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한 사람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행복인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지킬 것이 많아 불안해했던 지난날의 인연과 끝끝내 친해지지 못했던 조모와의 관계, 썩은 사과가 된 것은 아닐까 고민했던 풋사과 시절처럼 떠올리는 순간 먹먹하고 그리워지는 것도, 후회와 아쉬움이 짙은 자국을 남긴 것도, 여전히 그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도 그의 조각들에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빛나는 조각만을 끌어모으는 대신 그러한 조각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각각의 색으로 빛나도록 해준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내가 되고, 그런 나여서 좋은 것임을,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는 무심히, 가볍게 지나쳤다가도 곱씹어 보면 은은한 맛이 올라오는 그런 책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려 다시 펼쳐들었을 때는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 덕분에 스스로의 삶을 곱씹으며 조금씩 천천히 작은 조각들을 발견하여 어루만지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고였어! 재밌었어!"라고 말하기보단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은 책.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어 기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면, 꼭 약속이 취소된 날이 아니더라도 하늘이 예쁜 주말, 느긋하게 읽기 좋은 책을 찾는다면, 일상의 작은 조각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눈을 기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놈의 기억 1
윤이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망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처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나는 망각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수많은 잘못과 실수에 대한 기억들이 예고 없이 덮쳐와 후회와 자책감에 몸서리치게 만들 때면 내겐 망각만큼 간절한 것이 없었다. 머릿속으로 되뇌던 변명과 사과가 이따금 입 밖으로 튀어나와 흠칫하고 주위를 둘러볼 때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우울이라는 파도를 몰고 와 그 속에 완전히 잠겨버릴 때면, 그런 스스로가 못 견디게 싫을 때면 신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망각의 물약을 찾아 목숨을 건 모험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윤이나 작가의 추리/미스터리 소설 <놈의 기억> 역시 망각은 축복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사람의 기억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이식까지 할 수 있다는 논문을 게재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는 뇌과학자 한정우. 그는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 괴한의 습격을 받아 의식을 잃고, 나흘 만에 깨어났을 때는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들어야 했다. 아무런 증거도 뚜렷한 용의자도 없는 상황.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정우는 괴로움에 몸서리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어린 딸이 충격으로 말을 잃고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점차 안정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딸의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한정우는 결국 자신의 이론을 이용해 딸의 기억을 지운다. 다행히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딸은 망각의 축복 속에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런 딸과 반대로 한정우는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타인의 기억까지 기꺼이 자신에게 이식하기를 선택한다. 그는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주는 치료를 하며, 강력팀으로 일하며 범인을 검거하다가 칼에 찔려 칼 트라우마에 걸린 친한 동생 인욱의 기억을 삭제하고 자신에게 이식하며 범인을 잡기 위한 준비로 기억을 다루는 연습을 한다. 그는 망각의 축복을 얻는 대신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기억에 매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기억의 중요성을 알고 끈질기게 달라붙은 그는 마침내 타인의 기억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아낸다.


네 기억 속에서 내가 사건 당일에 지수에게 사 준 귀걸이를 봤어. 한국에 세 개밖에 없는 거라고 했거든. 그 귀걸이가 내가 산 게 맞는다면…. (32p)

작은 단서로 시작해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기억을 뽑아 자신에게 이식시키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한정우. 나 하나의 기억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괴롭건만 그는 놈의 기억을 찾기 위해 기꺼이 타인의 기억을 제 것으로 만들어나간다. 그건 괴롭고 또 괴로운 일이라 이식 직후에도, 일상을 보내는 사이에도 그를 고통에 휩싸이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 끊임없이 달려나가고, 마침내 그 끝에 다다르게 된다.


그를 기절시키고 아내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사람들의 기억은 어떻게 얽히고설켜 진실로 이어질까? 놈의 기억은 어떤 진실을 담고 있을까?


얽히고설킨 기억들을 쫓아 그와 함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찼다. 그리고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진실에 도달했을 때는 일순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과연 한정우는 망각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은 것일까. 그의 딸은 망각으로 인해 더 나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망각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따금 밀려오는 기억에 휩쓸릴 때면 나는 지난날의 후회를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이 기억을 교훈 삼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자, 정신 차리고 살자. 그리고 그와 같은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더 나은 오늘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힘들어도 그게 삶이었고,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놈의 기억> 속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간만에 읽은 추리 소설은 무척이나 흥미로워 평일 퇴근 후 <놈의 기억> 1권을 펼쳐들었다가 새벽 늦게 잠들고, 그 다음날 하루 종일 2권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정도였다. 처음 전개가 너무 빠르고 몇 년이 통째로 생략되어 당황스러웠던 것만 빼면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기억과 망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도 있었으니, 내겐 꽤 좋았던,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자유롭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