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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평점 :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책을 읽더라도, 영화나 그림을 감상하더라도, 사람을 만나더라도, 대화를 하더라도, 하다못해 길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건물 한 채를 보더라도 딱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예를 들자면 경복궁에 나들이를 가더라도 경복궁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경복궁은 그저 옛날에 지은 오래된 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사실을 경험을 통해 수없이 많이 깨닫고 되새기면서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고 솔직해지게 됐다. 그래야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고 또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역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솔직하게 이 책이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를 보는 동안 이러한 생각, 즉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작가의 여정은 그 누군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함께하기에는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한 인물에 대한 전기가 아니기에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정보와 한 번 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 장소의 만남은 서로를 보완하기보다 오히려 흐트러트렸다. 번번이 글의 흐름을 놓쳤고 장면 장면이 뚝뚝 끊어졌다. 특히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에서의 이야기는 나를 체념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니, 나는 일단 글을 읽고 있긴 하구나, 하는 상태가 된 나는 이 책을 일단 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나는 책갈피도 빼버린채 책을 덮어버린 후 일단 짧게나마 각각의 인물에 대해 찾아보았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유명해졌는지에 대해 간단하지만 확실하게 알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책을 펼쳐들었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아예 처음 보는 책처럼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끌리는 부분이 잔뜩 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문장을 옮기기도 하면서 두 번째 독서를 이어나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여느 여행 에세이들을 볼 때면 으레 그런 것처럼 나도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는 욕구도 가지게 되었고, 그 장소를 머리로라도 방문하고자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어릴 적부터 달이 궁금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망원경으로는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선배의 이야기도, 물을 무서워하는 강아지에게 괜한 두려움이라는걸 인식시키는 훈련을 하는 밀다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아 내가 이 책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아는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그만큼 여유가 생긴 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에 대해 보지 못한 것이 본 것 보다 더 많다. 그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푸시킨의 시를 곱씹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탐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박과 고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아는 사람’의 자취를 따라가는 정도로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세 번째 독서를 시도하면 나는 또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도 더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읽는 이에 따라 보고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다를 거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읽으라고, 재미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자신이 볼 수 있는 하늘을 넓히기 위해 끝없이 우물 안에서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옆에 두기를 추천하고 싶을 뿐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하고 그에 대해 솔직해지기만 한다면 이 책은 매 순간 다른 매력을 뿜어내며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다. 사람을 나아가게 만드는 책이 얼마나 값진것인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알라딘 공식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