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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감정 속에 허우적거리던 10대 시절,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를 벗어나면, 멀리 떠나면,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또 안정되겠지, 하는. 학생과 달리 어른은 하루를 오롯이 자신이 계획하고 가꿀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괜찮고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쌓여 울고 웃고 화내고 우울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기대와는 정 반대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더욱 다양해진 데다가, 학생 시절에는 비슷한 감성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며 어리광을 부림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면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10대 때보다도 더욱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막연한 기대감이 사라져버린 자리에는 텅 비어버린 하얀 공간만이 남아 나 홀로 서있을 뿐이다.
그런 나이기에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라는 제목은 보는 순간 끌릴 수밖에 없었다. 10대 때 가지고 있었던 그 막연한 기대와 믿음이 훅 하고 떠오르며 '괜찮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답이 이 안에 있을지 궁금했다. 책을 펼쳐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확한 해답은 없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증상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대답을 알고 싶다면 책이 아닌 1 대 1 상담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겪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담이 필요하다거나 어떠한 도움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돌아보게 만들고, 그것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게다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혼자서도 어느 정도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은 우울증, 조울증, 번아웃 증후군, 만성피로 증후군 등 현대에 만연한 문제들에 대해 다루며 각 문제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고, 자가 진단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중간중간 "일요일 오후 1시"라는 두 저자의 질의응답 코너를 통해 보다 내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들려주는 사례가 제법 구체적이라서 각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느끼고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경우라고 생각했던 조울증이 집을 판 돈을 전부 교회에 헌금하거나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막 나가다가 뒤늦게 우울감에 빠져 벌여놓은 일에 손도 대지 못하는 등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만드는 위험한 증상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었다.
또한 각 증상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가 진단으로 확인을 해보기도 하고 내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해결 방법을 보다 꼼꼼하게 읽으며 메모를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심리학 서적 중에서는 사례와 분석 위주로 된 것들이 많은데, 그런 책들은 앎과 공부의 목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쉽게 읽히지 않고 거리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잘 읽는 편이 아니고 또 읽더라도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의사인 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들려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고 기억에 남는 부분도 많았다. '의사들도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책 전반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그만큼 마음에 와닿고 공감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이라고 다 괜찮지 않으며, 오히려 어른이기에 더 힘들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세심하게 돌보고 가꾼다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이 책은 이 당연하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불안정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다른 딱딱한 심리학 서적보다 말랑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책이자, 감정에 휩쓸려 어쩔 줄 모르고 있다면, 원인 모를 우울함과 무기력감에 허덕이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