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정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원제 - Ancillary justice, 2013

  작가 - 앤 레키

 

 

 

 

 

 

 

 


 

  ‘아난더 미아나’ 황제가 무려 삼천년 동안 지배하고 있는 ‘라드츠’ 제국. 그들은 주변 행성들을 병합하여 ‘문명인’으로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광범위한 영토 확장에 힘썼다. 주인공 ‘브렉’은 제국의 바깥쪽에 있는 행성 ‘닐트’에서 천 년 전에 실종되었던 ‘세이바든’을 발견한다. 우주선의 함장이었던 세이바든은 천년동안 냉동되어 있다가, 바뀐 세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약에 취한 상태였다. 브렉은 그를 보며, 19년 전 ‘올스’ 행성에서 있었던 황제와 ‘오온’ 대위와의 만남을 회상하는데…….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으로 하루에 100쪽씩 읽자고 결심했는데, 결국 사흘 만에 다 읽어버렸다. 아마 시간이 넉넉했다면 하루 만에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브렉의 정체와 사용하는 언어가 생소해서 시간이 더뎠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도가 쑥쑥 나갔다. 작가가 만들어낸 미래 사회의 설정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브렉’은 ‘보조체’다. 라드츠 제국의 함선에는 인공지능이 하나씩 설치된다. 그 인공지능은 인간, 특히 포로의 몸을 빌려 만든 보조체를 이용해서 함선 내의 여러 가지 업무를 관장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아니다. 브렉은 ‘저스티스 토렌’호의 단 하나 남은 보조체이다. 이야기는 19년 전 행성 ‘올스’에서 있었던 사건과 현재 브렉이 ‘세이바든’과 함께 황제 ‘아난더 미아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도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의도했는지 천천히 드러내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황제 ‘아난더 미아나’는 수백 수천 개의 분신체를 만들어서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브렉과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싶지만, 그는 보조체가 아니라 분신을 거느리고 있었다. 문득 진짜 오리지널 원본은 누구인지 궁금했다. 분신은 늙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한다는데, 그러면 지금 남아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는 과연 원본일까 아니면 분신의 분신일까 궁금했다.

 

 

  예전에 보았던, 복제 인간에 대한 영화가 떠올랐다. 일이 너무 많아서 복제 인간을 만들었지만, 여러 번 복제해서 나중에는 아주 지능이 떨어지는 멍청한 복제인간이 만들어진다는 설정이었다. 이 책의 황제에게도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는 바보 같은 분신이 아니라, 다른 것을 꿈꾸는 분신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국의 모토인 ‘정의, 공정, 이익’을 실현하는 이상적인 군주가 아니라, ‘이익’만을 추구하는 변종이 태어난 것이다.

 

 

 

  잔혹한 황제의 모습은, 비록 보조체이지만 인간적이고 다정하기까지 한 브렉과 비교가 되었다. 로봇이 더 인간적이고, 인간은 로봇보다 더 비정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우리 사회가 자꾸만 겹쳐보였다. 분명 소설의 시대 배경은 지구가 아닌데, 이상하다. 자기들 이외의 존재는 유의미종 내지는 사냥감으로 여기는 라드츠 제국의 성향은, 넓게는 유색인은 열등하다 말하며 노예를 부리는 서구 열강들이, 좁게는 거주지와 출신학교로 상대를 구별하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함선에서 거의 모든 일을 맡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하고 무시와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보조체에 대한 인식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도 비슷했다. 그냥 보아도 못 본 척하고, 알아도 모른 척하면서 시키는 대로 일만 하라는 게 딱 그런 분위기였다. 아직 작동시키지 않은 보조체야 함선에 수백 개가 있으니, 하나둘 고장 나거나 망가트려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선가 읽은, 아픈 직원에게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아.’라고 말했다는 회사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과 보조체에 대한 대접이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사소한 정의’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책은 정의가 무엇인가 묻고 있다.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시답잖게 보일 정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했다. 그게 보조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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