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석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작가 - 오영석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유행했던 학교 폭력 단체나 조직 폭력배를 미화시켰던 다른 작품들이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가 처음 인터넷에 연재되었을 때가 저런 류의 작품들이 유행할 때와 비슷할 것이다. 사나이들의 의리라는 주제로 유행했었고, 지금은 느와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의리’는 요즘 모 개그우먼을 대세로 만든 유행어이기도 하다.

 

  정우는 부산에서 중학 시절 근처를 휘어잡던, 학교 일진 짱이었다. 서울로 전학 와 조용히 지내려던 그였지만, 세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디서나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힘의 서열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니 말이다. 결국 1학년은 물론이거니와 3학년 짱까지 박살낸 그에게, 한 지역을 갖고 있는 폭력 조직에서 스카우트 의사를 내비친다. 공부에는 뜻이 없었기에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조폭이나 되어야겠다고 제의를 받아들인 정우. 하지만 학생인 그가 알게 된 어른들의 폭력 세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그가 서울로 전학을 와서 단 7주 동안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두 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정우는 많은 일을 경험했다. 그의 천부적인 싸움 실력으로 인근 고등학교의 조직을 무너뜨리고, 연합을 결성했다. 그의 실력을 본 폭력 조직에 스카우트되어, 그들의 전투에 직접 참관도 한다. 그리고 친구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고, 조직에서는 배신자로 여겨지고, 주요 용의자로 경찰에 수배가 된다.

 

  여러 가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자기는 통(부산에서는 짱이라는 뜻)이고 자신의 말이 법이고 자신은 무조건 옳다는 아집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존경할 어른 따위는 없다던 그의 불신의 벽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주먹만 믿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 전까지는 잔소리처럼 들렸던 학교 선생이나 교생 선생의 말이 그제야 귀에 와 닿는다.

 

  정우를 보니 문득 전에 읽은 소설 ‘미치도록 가렵다’의 도범이 떠올랐다. 그 때 도범이가 일진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낸다면, 아마 정우와 비슷한 길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범에게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아파하고 눈물 흘려주는 부모가 있었다.

 

  그런데 정우에게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고, 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게 된 배경에는 정우를 돌봐주는 누군가가 있는 게 분명한데, 책에서는 한 단어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가 미성년자라 경찰에 자수했을 때 보호자가 필요했을 텐데도, 철저하게 부모라는 존재를 배제했다. 오직 학교와 학생, 선생 그리고 폭력 조직과 경찰만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가장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왜 작가는 부모를 철저하게 배제했을까? 만약에 이 책이 단순한 학원 폭력물이라면, 부모가 등장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서열에 관한 문제라면, 그건 어른들이 낄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어른들에게 어른들만의 법칙이 있다면, 아이들 사이에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그런 흐름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단순히 학생들의 일만 등장한 게 아니었다. 학교 선생, 교생 선생 그리고 폭력 조직이라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단순히 지나가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정우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고 엄청난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 특히 정우네 반의 교생으로, 그의 일에 관심을 보이며 나름 바로잡아주려던 정임은 폭력 조직에 납치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상관없는 제 3자인 교생까지 이런 일을 당하는데, 부모가 가만히 있다는 건 내 사고방식의 범위 내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설마 고아인가? 하지만 그런 단어는 보이지도 않고…….

 

  흐음, 결국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그런 걸까?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라는 그런 뜻? 돈은 대주겠는데,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알아서 해라. 이런 주의인가보다. 부모가 아들을 강하게 키우나보다.

 

  결말은 뭐라고 해야 할까? 개과천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상당히 찜찜하다. 그를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폭력 조직원들이 있으니까, 평생 조용히 평범하게 숨어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뿐인가? 서울에 조직이 그가 부슨 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다른 조직에서도 그에게 눈독을 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의 싸움 실력을 보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우는 죽을 때까지 트위터나 페이스 북은 물론이거니와 블로그도 하면 안 될 것이다.

 

  영화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 2005’를 보면 정체를 숨기고 숨어살던 전직 조직원이 나온다. 하지만 우연히 강도를 잡은 일 때문에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오고, 그에게 이를 갈던 사람들이 복수를 위해 찾아온다.

 

  악담 같지만, 정우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니까 다른 조직에게 쫓기기 싫으면 외국으로 뜨는 방법을 추천한다. 아니라면 눈에 띄지 않게 평생 숨어살든지. 물론 어쩌면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다른 조직에 들어가 어른들의 서울을 정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래는 한 가지가 아니니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학생들 사이의 일만 다뤘다면 저런 뒷일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조직원이라는 어른들을 개입시켰기에, 정우가 뒷감당해야할 일이 많아졌다. 과연 그는 저런 것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작가는 폭력 조직을 미화시키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저런 가능성 있는 후폭풍까지 생각하면, 폭력에 몸담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저런 것도 다 한 때 있을 수 있는, 추억의 하나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싸움 잘하는 아이를 미화시키고 싶었던 걸까? 혹시 그 당시 이런 소재가 대세라서 시류에 편승한……? 아, 설마 나 혼자 웃자는 글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고 박봉성 씨가 그렸던, 폭력 조직 관련 만화가 보고 싶어진다. 참 재미있었는데…….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일 황당했던 부분은 조직 폭력배들이 고등학교 연합에 처참하게 발리는 장면이다. 이미 자기들끼리 1차전을 벌인 뒤라서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어이없게 깨진다. 그래도 명색이 서울의 한 부분을 휘어잡고 있는 조직인데……. 제일 약체였던 걸까?

 

  그리고 이상한 부분. 215페이지에서 선생에게 혼이 나던 정우가 중간에 끼어드는 교생 선생에게 ‘넌 상관하지 마.’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나서 교생의 이름을 불렀다고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교생의 이름이 ‘너’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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