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외 지음, 이병무 옮김 / 다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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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작가 - 케빈 베일스, 조 트로드, 알렉스 켄트 윌리엄슨 공저


  읽다가 눈물이 날 것 같고 마음이 아파서 책을 두세 번 덮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약한 여자들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남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노예의 대부분은 여자와 아이들이라고 하니까.


  노예라는 건,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린 아이들이 멋모르고 하는 주인님과 펫 놀이 또는 노예팅 같은 것을 할 때나 들어볼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링컨의 노예 해방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노예는 근절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였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노예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노예였다.


  맙소사! 이 세상에 아직까지 노예라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조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 노예제의 존립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정 무역 제품을 써야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와 닿았다. 그 전까지는 그냥 팔아먹으려는 마케팅의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노예가 생기는 원인을 읽으니, 화도 나고 마음이 아팠다. 돈 때문에, 신분제 때문에, 정치적 상황 때문에, 전쟁 때문에 그리고 제일 황당한 건 종교 때문에! 아니, 진짜 어떻게 종교가! 읽으면서 열불이 났다. 돈 때문에 팔려가고, 부패한 정부가 범죄 조직과 결탁해서 사람들을 팔아넘기거나, 전쟁으로 진 나라의 여자나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까지는 화가 났지만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종교가? 이 대목에서는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여성과 어린 아이들의 성적 착취에 관한 대목에서 역시 두 번째로 책을 덮었다.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범죄 추리 소설이나 외국 드라마나 호러 스릴러 영화에서 종종 다루는 소재였다. 반복되고 우려먹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방송 매체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소설은 판매 부수를 올리려고, 더욱 더 극적으로 과장되게 만들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건 가짜라고, 진짜 그럴 리 없다고, 마음 한편으로 믿고 위안을 얻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의 증언 기록을 읽어보니, 이건 뭐. 소설이나 드라마는 약과였다. 어째서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그토록 무자비하고 난폭하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낙태를 시키겠다며 깨진 맥주병을 여자 몸에 삽입하거나 배를 때리고,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들을 유독 가스로 가득 찬 광산의 좁은 갱도로 밀어 넣고, 앵벌이를 시키기 위해 일부로 불구로 만들고 말이다.


  그리고 기껏 성노예나 강제 노역에서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선금과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넘어가서 아이를 넘긴 부모의 잘못이고, 그들을 속인 놈들의 잘못인데. 왜 그 고통을 어린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걸까?


  특히 성매매의 대상이었다가 돌아온 여자들이 겪는 2차, 3차 고통에 관한 부분은 한숨만 나왔다. 한국의 강간 피해자들이 겪는 고충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을 여러 남자들 앞에서 얘기해야하고, 너도 좋지 않았냐는 질문이나 받고.


  에이즈 같은 질병에 걸릴 까봐 갈수록 어린 여자아이만 원한다는 남자들의 기록을 읽는 순간, 속으로는 욕이 쉴 새 없이 튀어 나왔다. 내가 아는 욕이 얼마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외국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가정부나 보모로 데리고 와서,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 악덕 고용주에 대한 부분도 화가 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같은 인간으로, 같은 여자로, 같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말이다.


  노예제라는 것이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종식되지 않을 것 같다. 공정 무역 제품을 사용하고, 국가에서 노예제를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노예였던 사람들에게 재활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100% 근절될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돈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아니, 이건 어쩌면 타인을 대하는 사람의 의식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인간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가능할 것 같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나에게 남을 깔보고 멸시할 권리 따위는 없다는 걸 인식시켜야 할 것 같다. 남이 아픈 것은 나도 아픈 일이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 것이다. 내 쾌락을 위해 남을 괴롭히지 말자. 피부색이 다르다고, 나보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몸이 불편하다고 남을 못살게 굴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덧붙여서, ‘한국,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 캐나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대부분은 상업적인 성적 착취를 위해 인신매매된 여성들이다.’라는 대목에서는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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