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 블랙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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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해가 된 며칠 후, 셰틀랜드 제도의 한 섬에서 캐서린이란 여학생이 살해됩니다. 새해 첫날 파티를 마친 후 괴상한 노인네가 사는 집에 팔락팔락 놀러갈 때부터 어쩐지 죽을 것 같았습니다. 노인네 아주 괴상해 보였거든요. 사실 캐서린 보다는 같이 놀러갔던 단짝친구 샐리가 죽을 줄 알았습니다. 캐서린에게선 주인공의 포스가 풍겼기 때문에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던 평범한 소녀 샐리가 죽을 줄 알았거든요.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어쨌든 매그너스 노인은 지능이 낮은데, 그런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순한 분위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암울한 분위기만 팍팍 풍겨댑니다. 연쇄살인범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글이 진행되면서 노인과 얽힌 과거사가 튀어 나옵니다. 8년 전에 10살 정도 되는 소녀가 실종이 되었는데 노인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았습니다. 증거가 없어서 풀려나오긴 했지만 섬마을 주민들은 노인이 범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괴상한 노인의 집에, 그것도 며칠 전에 놀러간 고등학생이 살해당한 채 발견이 되면 노인이 용의자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형사 페레즈는 그 당연한 수순을 뒤로 미루고, 최대한 공정하게 수사를 진행합니다. 그런 점들을 보면 페레즈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강한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수사를 해나가는 것이겠죠. 수사를 지휘하기 위해서 본토에서 건너온 테일러 형사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일을 서두르긴 하지만 현지 경찰을 배려하면서 수사를 지휘합니다.

수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용의자가 하나, 둘 떠오르고 반대로 용의자에서 지워지는 사람도 나옵니다.

가장 의심스러운 용의자는 앞에서 언급한 매그너스 노인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의심스런 사람이 많습니다.
캐서린과 샐리를 태워주었던 의문의 소년.
새해 파티에서 한께 어울렸던, 로리타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로버트.
캐서린을 파티에서 꼬시려 했던 던컨.
캐서린의 시체를 발견하고, 다른 시체도 발견한 프랜.

범인은 누구일까? 왜 캐서린을 살해했을까? 8년 전 소녀의 실종이 캐서린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레이븐 블랙은 수수께끼풀이형 추리소설입니다. 범인이 누구일지 궁리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립된 섬에서 일어난 살인이니 범인은 분명히 섬주민 중에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설정이라 푹 빠져서 글을 읽었습니다. 작가의 맛깔난 글 솜씨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야기는 어린 소녀가 다시 실종되면서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아이가 변을 당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페레즈는 범인을 잡아내고 아이를 구출할 수 있을까요?

레이븐 블랙은 마지막까지 독자의 눈을 잡아 끕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앤 클리브스는 작품을 20편 정도 썼는데 외국에 번역 출간된 건 레이븐 블랙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레이븐 블랙은 참 재밌는 작품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이면 다른 작품도 분명히 재밌을 겁니다. 이제 소개가 되었으니 나머지 작품들도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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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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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최신작(번역기준) 12번째 카드가 운 좋게 손에 들어와서 시리즈 중 유일하게 읽지 않고 있었던 사라진 마술사를 구입했다. 그의 전작 본 컬렉터, 코핀 댄서, 곤충 소년, 돌원숭이. 그리고 지금 막 끝낸 사라진 마술사까지 다 읽은 후 느낀 점은 범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슈퍼맨 같다. 물론 그들을 모조리 잡아넣은 링컨 라임은 더 대단한 사람이지만 신체적인 핸디켑(왼손 검지와 목 위를 제외한 부분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때문에 그런 느낌은 약하다.

사라진 마술사의 범인은 특히 더 위험해 보였다. 이 사람은 잡혔는데도 안심할 수가 없다. 경찰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도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진다. 오랜 기간 갈고 닦은 마술솜씨로 감쪽 같이 속이고 탈출하는 것이다. 심지어 감방에서까지 탈출한다. 그의 마술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다. 물리적, 화화적 속임수 뿐만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파고들어가 마음을 흔들고 정신을 속여버린다.
본문에 누누이 언급되는 미스디렉션이 대단하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놓고 완벽하게 속이는 것이다.

과거의 사고로 마음 속이 분노로 가득찬 마술사는 분노를 풀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인다. 그것도 마술공연을 재현해서 죽이는 정신병자 같은 짓을 저지른다. 경찰이 범행을 목격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도 상관없다.
짠.
마술적인 솜씨로 사라지는 것이다.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술살인의 감춰진 이면이 하나씩 드러난다. 마술사의 살인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뒤에 숨겨진 목표가 있었다. 링컨 라임과 마술사는 속고 속이며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제프리 디버의 솜씨는 여전히 마술적이다. 하나의 사실과 감춰진 목표가 드러나면 그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사실과 목표가 드러난다. 나중에는 뭐가 뭔지 헷갈리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독자는 이게 사실일까? 혹 숨겨진 노림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 의심하면서 글을 읽게 된다. 가끔은 운 좋게 작가의 노림수를 맞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작가가 한 수 위다.
특히 사건이 다 끝났을 거라고 확신했을 때 벌어진 일은 참 대단하다. 깜짝 놀랐다.

재밌게 읽은 책이 영화화 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것과 화면에서 사실로 구현된 것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상상한 것이 더 멋지고 근사하기 마련이다. 대개는 말이다. 하지만 본 콜렉터의(영화 개봉시 본 콜렉터로 개봉 되었다. 책은 본 컬렉터로 나왔고) 경우는 좀 달랐다. 두 배역을 맡았던 댄젤 워싱턴과 안젤리나 졸리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두 배우가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와 겹쳐졌는게 그게 나쁘지 않았다. 매력적인 두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때문에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사라진 마술사에서는 라임과 색스 외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하나 더 등장한다. 마술적 트릭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렵게 고용한 마술사 카라이다.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다른 작품에도 등장시켰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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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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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여사님은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데 능숙합니다. 때문에 글을 읽고 나면 여운이 상당히 오래 갑니다. 해서 즐겁게 읽고 잠깐 사이에 잊어버릴 수 있는 여타 쟝르 소설들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 등장인물의 감정과 욕망을 밑바닥까지 들여다 본 후에 고스란히 건져올려서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던져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작가 같으면 예쁘게 혹은 정반대로 추하게 포장을 할 텐데, 기리노 여사님은 그런 게 없습니다. 그냥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자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 인물을 읽어나가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 독특함이 여사님을 베스트셀러 작가의 위치까지 끌어올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팬이 많은가 봅니다. 저도 그 팬 중의 한 명입니다만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을 읽다가 차갑다는 느낌을 받을 때 종종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특별히 차갑게 서술하고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그게 차갑게 보일 뿐입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왜 차갑게 느껴지는 걸까요?
우리가 포장하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잔학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이 비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잔학기의 줄거리는 상당히 자극적입니다. 이 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흉악한 범죄로 꼽는 유괴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괴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유괴는 성적인 쾌락을 위해 미성년자를 유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성이 결부되어서 돈을 노린 유괴보다 더욱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잔학기에 나오는 유괴가 바로 그런 유형의 유괴입니다.

우부카타 게이코는 10살 때 아베카와 겐지라는 25살짜리 공장 노동자에게 유괴되어 그의 방에 1년간 감금이 됩니다. 게이코는 일 년 후에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고, 겐지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을 합니다. 게이코의 삶은 그 유괴 때문에 온통 뒤틀려 버립니다. 그러나 다행히 잔학한 범죄의 희생자로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글을 통해 감정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괴를 극복합니다. 게이코는 16살 때 고미 나루미로 데뷔를 해서 인기를 끕니다. 나름 유명한 여류작가로 그럭저럭 꾸려가던 삶은 어느날 날아온 한 통의 편지로 뒤흔들립니다. 30대 중반이 된 그녀에게 범인 아베카와 겐지가 편지를 보낸 겁니다. 편지에 쓰인 문구가 실로 묘합니다.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굉장히 뻔뻔한 문구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뻔뻔해지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 따위 말을 적어 보낼 수 있을까요. 그런 감정이 드는 동시에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범인이 피해자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뭔가 숨겨진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게이코는 유괴에서 풀려난 후 아무에게도 진상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도 나어린 피해자에게 꼬치꼬치 캐묻기가 어려워서 그냥 넘겼죠. 이제 게이코는 처음으로, 사건이 일어난 지 2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그 사건에 대한 글을 남겨놓고 집을 나가 버립니다. 우리는 그 자서전 같은 소설을 통해서 유괴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소설이 진실 그대로일까요. 글을 읽는 와중에도 계속 의심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근본적으로 거짓말쟁이니까요.

게이코의 소설을 통해서 몇몇 부분은 선명하게 해명이 됩니다만 몇몇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 미진한 부분은 남편의 이야기에서 조금씩 풀려나갑니다. 그래도 끝까지 걸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완벽한 해명을 위해 머리를 굴릴 수도 있습니다만 전 여기서 만족합니다.
왜냐구요?
타인의 감정과 욕망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한 모두 진실을 알아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건 글을 창조해낸 기리노 나쓰오 여사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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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예니체리 부대의 음모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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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소설로 그린 작품을 몇 편 읽은 적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재미 없었다. 헌데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은 재미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저자 제이슨 굿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잔틴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동유럽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실에 매료되어 오스만 제국을 연구했다고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적혀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데이지 굿원이 오스만 제국에 대해 추리소설로 접근해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해주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의 경력과 데이지 굿윈의 충고 덕에 나는 훌륭한 추리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경력이나 집필 동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19세기 초의 오스만 제국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상당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쟝르 소설에서 그런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면 등장할수록 글이 재미없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소설은 재미로 읽는 거지 역사적 지식을 공부하기 위해서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보통은 양념 정도로 사용하면 충분하다. 헌데 저자는 그런 위험을 뛰어넘어 멋들어진 솜씨로 역사적 지식을 글 속에 녹여넣었다. 추리란 강력한 용매를 사용해서.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의 재미는 뭘까? 
범인이 누굴까 추리해보는 재미. 탐정이 여러 조각을 끼워맞쳐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의외성.
이런 게 아닐까?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은 약간 다르다. 물론 조각을 끼워맞추는 재미도 있고,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도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적 재미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야심이 이스탄불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활약하는 과정 그 자체가 재미의 핵심이다.
야심은 황제의 마구간, 시장의 가판, 화재 감시탑, 대사관, 황궁의 하렘, 목욕탕, 뒷골목 등을 돌아다니며 이스탄불을 생생하게 구경시켜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어맞고 감금되는 등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환관인 주제에 로맨스까지 벌인다. 그 덕에 우리는 술탄의 하렘 같은 아주 궁금한(?) 부분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황궁의 권력 다툼도 구경하게 되고, 유럽을 공포에 떨게했던 예니체리 부대의 영광과 좌절, 그리고 최후를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의 사건은 참 복잡하다. 우선 신식군대의 장교 4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다. 그들은 하나씩 아주 끔찍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으로 술탄과 동침할 예정인 하렘의 궁녀가 교살되는 사건이 나오고 또 술탄의 모후가 나폴레옹에게서 선물 받은 보석을 도난당하는 사건도 나온다.
사건만 보면 전형적인 수수께끼풀이형 추리소설 같다. 범인이 궁금해서 손이 근질근질할 것 같다. 그리고 짤막짤막한 챕터를 보면(챕터가 무려 132개나 된다.) 속도감이 대단한 스릴러 소설 같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유형의 소설 말이다. 현대 추리에서 종종 보이는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나올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런 요소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앞에 말했듯 그게 책의 핵심은 아니다. 그저 야심이 활약하는 광경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읽어나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책장이 전부 넘어가서 결말에 다다르고, 사건은 어느새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머리 굴리면서 보는 것도 괜찮다. 그런 걸 즐기는 독자라면 말이다. 

오랜만에 편안한 독서를 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배가 고파졌다. 이 책을 읽는 분은 공감하실듯.
내일 쉬는 날인데 시내 나가서 케밥이나 사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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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행성 환상문학전집 6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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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말하는 기술을 로카난이란 세계에서 다른 종족에게 배웠다는 부분이 본문에 나오는 걸 보면 유배행성의 시간적 배경은 로캐넌의 세계 이후인 모양이다. 로캐넌의 세계에서 연맹은 전쟁을 치루고 있었는데 그 일 때문인지 유배행성이라 불리는 행성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잊혀지고 고립된다. 그래서 그들은 도착한 행성을 유배행성이라 부르며 마치 유배지에 사는 것처럼 느끼며 생활한다. 그들은 원주민과 섞이지 못한 채 불임과, 유산으로 1000년이란(지구기준) 긴 시간 동안 서서히 사멸해간다. 이주민들에게 맞지 않는 환경이 불임과 유산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해결 방법은 없다.

이주지의 원주민이 고등생명체인 경우 그들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은 사용할 수 없다는 연맹규약 때문에 이주민들은 과학기술의 힘이 깃든 도구를 사용할 수 없고, 그래서 예전의 기술을 거의 잊은 채 유배행성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유배행성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그런 겨울이 오면 북쪽의 약탈자들은 남하를 한다. 랜딘의 이주민들은 수가 적어서 그들을 막아내기 어렵게 되고, 그래서 지도자 아가트는 원주민 테바와 동맹을 맺으려 한다. 랜딘에 적대적인 테바를 겨우겨우 설득해서 동맹이 맺어진 때에 아가트는 원주민 처녀 롤레리와 사랑에 빠지고 동맹은 위태롭게 된다.

사랑 때문에, 여자 때문에 공들여 추진하던 일이 파탄나는 광경은 익히 보아온 이야기 유형이다. 그것이 SF라는 쟝르의 탈을 뒤집어 쓰니 나름 새롭게 보이긴 한다만 기본적으론 낯익은 풍경이다.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배타적인 감정이 공통의 적인 약탈자에 맞서 벌이는 고통스런 전쟁의 와중에 옅어진다는 것도 어딘지 익숙해 보인다. 그 투쟁을 통해 아가트가 유배행성을 진정한 고향행성처럼 여기게 되는 부분도 그렇다. 그런 눈에 익은 이야기 유형으로 현대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눈에 익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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