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예니체리 부대의 음모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학자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소설로 그린 작품을 몇 편 읽은 적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재미 없었다. 헌데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은 재미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저자 제이슨 굿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잔틴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동유럽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실에 매료되어 오스만 제국을 연구했다고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적혀 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데이지 굿원이 오스만 제국에 대해 추리소설로 접근해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해주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의 경력과 데이지 굿윈의 충고 덕에 나는 훌륭한 추리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경력이나 집필 동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19세기 초의 오스만 제국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상당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쟝르 소설에서 그런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면 등장할수록 글이 재미없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소설은 재미로 읽는 거지 역사적 지식을 공부하기 위해서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보통은 양념 정도로 사용하면 충분하다. 헌데 저자는 그런 위험을 뛰어넘어 멋들어진 솜씨로 역사적 지식을 글 속에 녹여넣었다. 추리란 강력한 용매를 사용해서.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의 재미는 뭘까? 
범인이 누굴까 추리해보는 재미. 탐정이 여러 조각을 끼워맞쳐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의외성.
이런 게 아닐까?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은 약간 다르다. 물론 조각을 끼워맞추는 재미도 있고,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도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적 재미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야심이 이스탄불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활약하는 과정 그 자체가 재미의 핵심이다.
야심은 황제의 마구간, 시장의 가판, 화재 감시탑, 대사관, 황궁의 하렘, 목욕탕, 뒷골목 등을 돌아다니며 이스탄불을 생생하게 구경시켜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어맞고 감금되는 등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환관인 주제에 로맨스까지 벌인다. 그 덕에 우리는 술탄의 하렘 같은 아주 궁금한(?) 부분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황궁의 권력 다툼도 구경하게 되고, 유럽을 공포에 떨게했던 예니체리 부대의 영광과 좌절, 그리고 최후를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의 사건은 참 복잡하다. 우선 신식군대의 장교 4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다. 그들은 하나씩 아주 끔찍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으로 술탄과 동침할 예정인 하렘의 궁녀가 교살되는 사건이 나오고 또 술탄의 모후가 나폴레옹에게서 선물 받은 보석을 도난당하는 사건도 나온다.
사건만 보면 전형적인 수수께끼풀이형 추리소설 같다. 범인이 궁금해서 손이 근질근질할 것 같다. 그리고 짤막짤막한 챕터를 보면(챕터가 무려 132개나 된다.) 속도감이 대단한 스릴러 소설 같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유형의 소설 말이다. 현대 추리에서 종종 보이는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나올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런 요소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앞에 말했듯 그게 책의 핵심은 아니다. 그저 야심이 활약하는 광경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읽어나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책장이 전부 넘어가서 결말에 다다르고, 사건은 어느새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머리 굴리면서 보는 것도 괜찮다. 그런 걸 즐기는 독자라면 말이다. 

오랜만에 편안한 독서를 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배가 고파졌다. 이 책을 읽는 분은 공감하실듯.
내일 쉬는 날인데 시내 나가서 케밥이나 사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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