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행성 환상문학전집 6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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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말하는 기술을 로카난이란 세계에서 다른 종족에게 배웠다는 부분이 본문에 나오는 걸 보면 유배행성의 시간적 배경은 로캐넌의 세계 이후인 모양이다. 로캐넌의 세계에서 연맹은 전쟁을 치루고 있었는데 그 일 때문인지 유배행성이라 불리는 행성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잊혀지고 고립된다. 그래서 그들은 도착한 행성을 유배행성이라 부르며 마치 유배지에 사는 것처럼 느끼며 생활한다. 그들은 원주민과 섞이지 못한 채 불임과, 유산으로 1000년이란(지구기준) 긴 시간 동안 서서히 사멸해간다. 이주민들에게 맞지 않는 환경이 불임과 유산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해결 방법은 없다.

이주지의 원주민이 고등생명체인 경우 그들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은 사용할 수 없다는 연맹규약 때문에 이주민들은 과학기술의 힘이 깃든 도구를 사용할 수 없고, 그래서 예전의 기술을 거의 잊은 채 유배행성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유배행성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그런 겨울이 오면 북쪽의 약탈자들은 남하를 한다. 랜딘의 이주민들은 수가 적어서 그들을 막아내기 어렵게 되고, 그래서 지도자 아가트는 원주민 테바와 동맹을 맺으려 한다. 랜딘에 적대적인 테바를 겨우겨우 설득해서 동맹이 맺어진 때에 아가트는 원주민 처녀 롤레리와 사랑에 빠지고 동맹은 위태롭게 된다.

사랑 때문에, 여자 때문에 공들여 추진하던 일이 파탄나는 광경은 익히 보아온 이야기 유형이다. 그것이 SF라는 쟝르의 탈을 뒤집어 쓰니 나름 새롭게 보이긴 한다만 기본적으론 낯익은 풍경이다.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배타적인 감정이 공통의 적인 약탈자에 맞서 벌이는 고통스런 전쟁의 와중에 옅어진다는 것도 어딘지 익숙해 보인다. 그 투쟁을 통해 아가트가 유배행성을 진정한 고향행성처럼 여기게 되는 부분도 그렇다. 그런 눈에 익은 이야기 유형으로 현대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눈에 익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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