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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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개다.

왕자를 죽이고 자신이 살것인가?
아니면 왕자를 그대로 살려 놓고 자신이 죽을 것인가?

선택권이 인어공주에게 있기 때문에 두번째 선택은 사실상 자살에 해당된다.
조금 더 간략히 하면

"살것인가 죽을 것인가?"

너무나 유명한 문구이지 않는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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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것인가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마음 아프게 참는것과
무기를 들어 고난의 물결에 항거하여 이를 종식케 하는것은
어느쪽이  더 고상한  태도인가
죽는다는건  곧 잠드는것.
이것뿐이야.
잠이 들어 이 육체에 따르기 마련인 마음의 고통과 수없는 고뇌가 끝장이 난다면
이것이야 말로  열열히 바랄만한 생의 극치가 아닌가.
==============================================================

저런 상황에서 죽는 다는 것,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는가?

그러나 햄릿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죽음을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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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
잠이 든다.
잠이 든다는 것은 아마도 꿈을 꾼다는것.
죽음이라는 꿈속에서 생의 굴레를 벗어날때 어떠한 꿈이 다가올것인가,여기서 망서리게 된다.
고된 인생을 그처럼 오래 끌고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략)
단검을 한번만  휘두르면 이 몸이 조용하고 편안해지는데.
누가 무거운 짐을 메고  피곤한 인생을 신음하며 땀을 흘리겠는가.
다만 죽음 다음에 올 무서움 때문에  결심을 못하는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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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공포로 인해 죽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인어공주의 죽음 이후는 물방울로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 완벽하다.
당연히 자신의 죽음을 선택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런 궤변스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죽음의 선택을 권리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대본출처 : http://www.talent1004.co.kr)
 

내가 만약 작가라면
http://blog.aladin.co.kr/koreaisone/2234937

나는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방학과제로서 나무꾼이 절도,납치,사기,위계에 의한 강압적 혼인등으로 병합내지 가중처벌로서 10년이상 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논문을 제출한바 있다.

"가족마당극 <나무꾼과 선녀>는 전래 민담을  현대화하여
가정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를 관객들과 함께 찾아보는 마당극 작품입니다."
(나만 이런지 모르겠지만) 저 홍보문구에서는 정신이상자를 대하는 듯한 황당함과 괴기스런 막무가내 아우성이 넘쳐난다.
  

"나무꾼과 선녀"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니가 맘에 드는 여자가 있어?
그럼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봉고에 잡아 태워
그리고 애 둘 낳을때까지 가둬 놓으란 말야
그럼 그 여자가 어쩔꺼야

물론 훼밀리 절대 가치 라는 베이스도 깔고 있다.
그리고 그 훼밀리의 탄생과 존속은 폭력에 의한 것이다

민담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원래의 힘을 되찾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해도 여자가 훼밀리를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은 어리석은 나무꾼에게서 비행복을 되찾은) 여자는 애들만 데리고 되돌아간다.

징징 울고 불고 하던 나무꾼이 어캐 어캐 훼밀리 상봉을 한다넌 사족이 붙어 있지만 나 보기에 이건 위장술일 뿐이다.
원래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무꾼은 그게 너무 슬퍼서 맨날 맨날 울다가 죽어버려.
안 됐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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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08-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님은 마로를 너무 편애하시는거 같아요.물론 편애받아 마땅한 마로양이지만요.ㅎㅎ

조선인 2008-08-1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
사실 저는 전래동화를 싫어라 하기에 아이가 졸라도 안 사주고 있는데, 도서관에 가면 목마른 사슴처럼 전래동화만 읽어요. 고민중입니다.

2008-08-14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웅의 사전적 정의는 대략 이렇다.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다음 국어사전)

그러나 이건 영웅을 정의한것이 아니라 영웅중의 일부를 표현했을 뿐이므로 틀렸다.
누군가가 어떤 영웅의 기준을 충족시켜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 열광하는 집단이 있으므로 해서 영웅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집단의 최소 단위는 단 한명이면 된다.

주인공 송자호(적룡, 난 이 배우 모른다)나 주윤발(마크? 반대로 배역상 이름을 모르겠다)의 입장에서 '악' 이란 건
폭행이나 마약거래나 위조화폐제조나 심지어 살인까지 머 이런 불법적인게 아니며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송자호가 조직을 떠나겠다는 이유도 (그리고 이것이 전체 사건의 발단, 즉 송자호 자신이 이 모든 사건의 원인제공자다) 단지 그의 동생, 장국영이 경찰이 됐다는 것이며 그의 아버지가 형제간에 쌈질하면 볼쌍사납다고 그래서 그런거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가 아니다
주윤발이 이쑤시게를 자근자근 물어 뜯어면서 그 까무라치게 멋있는 총질로 (20년전에 볼때는 그랬다) 무자비한 학살을 집행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송자호를 배신하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배신으로 인한 송자호의 피해는 달랑 3년 복역이니 죽은자들과는 매우 심각한 형평성 문제가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수십명의 갱단이 몰살되도록 송자호의 심기를 건드린 이유는 그 들이 장국영의 안위를 해쳤으며
주윤발을 두둘겨팼다는 것이니 역시 나쁜놈들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이다.

이들이 격렬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보면
 (1) 형을 배신하였다. (이로 인해 3년 복역함. 주윤발은 송자호를 형이라 부른다.)
 (2) 아버지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칩입자의 최초 의도는 아버지를 데려가는 것, 최악이라도 납치하는 것 정도인데
   장국영이 폭력으로 맞서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였다)
 (3) 동생을 해쳤다 (하룻만에 퇴원하는 정도의 총상)
 (4) 주윤발을 때렸다 (눈가에 반창고 하나 붙였다)     

이렇게 보니 과잉방어로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훼밀리라는 것이다.
송자호가 자기를 모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동생이나 친구, 즉 훼밀리를 건드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라고 하는 대사에서
이미 명백히 해 놓은 것이니 이게 내 주장만은 아니다
 

그보다 10년쯤 먼저 나온 찰톤 헤스톤의 the Last Hard Man 에 열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것이다.
(이 영화 한편으로 인해 내가 무기소지 자유화에 절대 찬동하게 되지 않았던가)
NRA 회장시절 찰톤 헤스톤이 클린턴에게 한 발언에서 요점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의 안위를 국가에게 내 맡긴적이 없다."


오우삼이나 찰톤 헤스톤이나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반미색깔을 씌운 괴물조차도 NRA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복제해 써먹고 있다.
딸을 괴물에 날린 아버지,할아버지,고모 모두 훼밀리만의 방위권을 발동하여 괴물과 단독 대항하니까 말이다.
 
이들이 보기에 진정한 영웅, 즉 영웅의 본색은 무차별,과잉폭력을 행사해서라도 훼밀리를 지켜 나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폭력은 본질적으로 상승작용을 하게 되며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할때 적당한,정당한 폭력이란건 있을 수가 없다. 혹 어느 영화에서라도 그런 거 본 적이 있는가?

또 이 영웅주의가 불편한건 내가 영웅이 되기보다는 영웅들의 콜랙트롤 데미지가 되어 길바닥에 나 엎어 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영웅들의 절대가치인 훼밀리에 대한 것으로서
훼밀리 붕괴의 적은 (영웅적 시각에서)  외부 보다는 내부일 공산이 크다는 사실에다,
폭력은 항상 외부로만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다 (실제는 내부 지향적일 것이라는 의심도 크다)
폭력이 훼밀리 존속을 위해 정당화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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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붕괴의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 깊이 공감합니다. 죽도록 힘든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해프닝은 아닐런지.

하날리 2008-08-11 23:09   좋아요 0 | URL
시지푸스식 공굴리기죠 머
알면서도 그러는게 내 운명이라는 식이죠
 

"소음에 민감하다" 는 "청각이 뛰어나다" 와 같은 말이 아니다.
"소음에 민감하다" 는 "소리로서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라는 말이다.
이 스트레스는 고막에 충격을 주어 손상시킨다거나, 장기간 지속적인 자극으로 고막이 두터워져 난청이 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위층 공룡이 춤을 춘다고 해서 소음계를 들이 대 보았자 바늘은 까딱도 않을 것이다
머리위 에어버스의 90db 굉음보다 조용한 사무실에 켜 놓은 더 조용한 MP3에서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지나가는 온갖 차량의 교통소음과 엔진소리는 못 느끼지만 그에 비한다면 별 것아닌 버스 라디오 소리에 열 받는다.

내가 민감해지는 듣기 싫은 소리는 무엇인가?
어쩔수 없는 게 아닌 부주의, 몰상식, 예절이 없는, 공중도덕이 무시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등등의 행동결과로서 만들어 진 소리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졸지에 소음으로 바뀐다.

90db급 지하철, 항공기, 시내교통, 공사장 심지어 오케스트라까지, 물론 듣고 싶지는 않지만, 그다지 스트레스는 없다.
그 소음 제공자들이 소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며 또한 생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꿈치를 바닥에 꽝꽝 내리치면서 걷는다거나, 새벽3시에 장시간 샤워를 한다거나, 의자나 테이블을 질질 끌고 다닌다거나, 귀가 나쁘다고 티비 볼륨을 왕창 올려 사방에 중계한다거나, 문이 깨져라 닫는다거나, 남들 일하는데 혼자 음악을 켜 놓는다거나, 핸폰에 대고 온갖 사생활을 고함친다거나 하는 행위는 전혀 생계와 관계  없지 않는가

결국 소음이라는건 공중도덕의 문제로 종착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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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어떻게 걷는지야 알 바 없다.
어느 누가 본적이 있겠는가.
그러나 윗층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다.
아마 공룡시대 말기와 포유류시대 초기가 겹쳐진, 머나 먼 옛날의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일게다.

주파수가 낮은 소리(즉 저음)는 힘이 실려 있다.
건물 구조물을 타고 멀리 멀리 나아간다.
주파수가 높은 소리(즉 고음)는 힘이 약하다.
벽체 하나도 통과하지 못해 여기까지 들리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온갖 소음의 스펙트럼속에서 건물기둥을 타고 울려오는 공룡발자국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다.

위층에서 공룡떼가 잔치를 벌이던 날
용감하게도 그 집 도어벨을 울렸다.
수백만년을 살아남고, 인간떼가 지구를 완전히 뒤덮은 이 시기에 그 정체를 전혀 들어내지 않은, 초절정 궁극의 위장술을
목격하였다.
키 160에 50킬로밖에 안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나는 위층 공룡들 각각의 발자국 소리를 분간해 낼 수 있으며
어른공룡, 새끼공룡 모두의 모든 동선을 파악하고 있고
식사시간, 세척시간, 청소시간, 뜀뛰기 시간, 낮잠시간.
심지어 교미시간까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위장된 공룡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룡이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가?
아님 인간을 공룡으로 만들고 있는가?

내가 진정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윗집 침대가 심히 덜컹거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정도 프라이버시조차 지켜내지 못하는게 과연 제대로 지은 집이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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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0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층간 소음이 끝내주네요. 그 정도라면 보상받아야 할 수준 아닌가요?

paviana 2008-08-0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드디어 공룡이실지도 모른다고 밝히시는건가요?

진주 2008-08-0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웃과 살가운 왕래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우리가 사는 날림공사 이 아파트도 층간소음 때문에 말이 많았나봐요.
어느 날 층간소음이 화두가 된 자리에서 제가 아무 생각없이,

"우리윗집은 마늘을 자주 찧어요."

했더니, 여편네들이 죄다 배꼽을 잡고 쓰러지더라구요?
그 집은 진짜로 김치 담느라 마늘 찧었을 뿐인데...


 

1.
중앙일보
중앙일보에 대한 내 선입견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거니님의 존안이 자꾸 오바랩되는 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며
중앙일보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 줄 기미도 그닥 보이지 않는바
나의 최초 견해를 바꿀 생각은 없다.
중앙일보는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상식적 의미의 신문이 아니다.

2.
동아일보
한번 사랑은 영원하다. 식의 내 감성구조로서는 동아일보를 미워 할 수가 없다.
75년의 광고사건 하나로 동아일보는 이미 자리매김이 되어 버렸고 작금의 시황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하고 넘어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75년 4월자(이젠 어렴풋해져 버렸다) 동아일보 1면에 아버지는 내 명의로 2단 백지광고를 내셨다.
당시 지극히 기울어진 집안사정으로 볼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증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인바
훗날 유품으로 남겨진 이 스크랩을 부주의하게 분실한뒤 오래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었다.

3.    
조선일보
오랫동안 균형된 중도를 매우 정교하게 연기해 왔으나 근래들어 본색을 알아보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하여간 재미있다는 건 사실이다.

최근에 조선일보 구독을 끊어 버린건 내가 이제 와서 조선의 실체를 알아차려서 한건 물론 아니다.
난 어떤 신문이건간에 정치적 중립 내지는 공정성을 유지 할 수 있다고는 전혀 믿지 않으며 또 꼭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를 쭉 보아온건 내가 주로 보는 경향,한겨래,프레시안,오마이 등과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나의 조선일보 절독을 작금의 반2MB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조선측의 절독 사유를 묻는 데에 대한 나의 짧은 답변과 완전히 같다
"신문이 너무 뚜꺼워요"

나는 오프라인 신문의 불필요함을 말했던 거다.
사실 내가 가장 바라는 건 오마이 + 프레시안 의 형태일 것이다.
굳이 풀자면,
그대로의 사실전달(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 전문가의 심층적 분석(좀 웃긴다는건 나도 안다) + 독자의 의견형성(이제 여기에 많은 기대를 건다) 정도 일까나.

하여간 조선일보가 자랑스레 내놓는 검증된 판매부수가 그 신문의 위력이던 시대는 이제 아주 가버렸다는 건 좀 알아 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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