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 생선회를 처음부터 못 먹은건 아니다.
온몸이 처절하게 난도질 당하고서도 눈만 껌벅이며 접시에 올려진 이스라엘 향어를 보고 나서 부터 일거다.
 
내가 닭고기를 그리 탐탁해 하지 않는건 그보다 오래 전이다.
규모가 꾀 되는 양계장을 거의 혼자서 꾸려 간 할머니는 매일매일 폐계를 골라내 처리하였다.
완벽한 닭 분해처리 테크닉의 소유자였던 할머니도 언젠가는 실수가 있는 법이라 어느날 한마리가 도주하였다.
어린 손자에게 뒷산으로 날라버린 닭을 잡아오라고 시켰고 부지런히 쫒아 간 손자는 곧 찾아 냈으나 경악하였다.
머리가 짤려 없어진채로, 피 투성이 목만 있었다, 질주하는 닭을 본적이 있는가.
   
개는 잘 죽지 않는다.
멀치감치 떨어져 바라보며 어서 죽어달라고 간절히 바랬지만 족히 한시간은 더 간다.
개를 죽이는데는 닭 잡는 칼을 쓰지 않는다. 소 잡을때 쓰는 묵직한 둥그스런 망치도 쓰지 않는다.
그냥 몽둥이로 두둘겨 패서 죽인다. 그래야 살맛이 좋단다.
한번이라도 그 살풍경을 본다면 어떻게 개를 먹을 수 있는가.

국회의원이 강만수에게 삼겹살 값을 모른다고 비난하고 있다. 당신은 삼겹살도 먹지 않느냐고 핏대를 올린다.
그렇다 나는 안 먹는다. 싫다. 고기가 싫다.

그렇다면 내가 채식주의자인가. 그것도 근본주의적 채식주의자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생명체를 살해하는게 싫다. 그게 동물이던, 식물이던 간에 말이다.
내 병적 완벽주의는 세포 수준으로 생명체를 논한다.
그러나 내 생명의 유지는 필연적으로 타 생명의 파괴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절망적 구조체로 이루어진 이 상황에서
모든 생명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과의 직거래만이 완벽한 경지이다.
 
가끔 꿈꾼다.
내가 돌연변이 되어 하얀 살갗대신 녹색의 엽록체로 채워진 피부로 뒤덮여 있고 다른 생명을 해치는 대신
태양의 에너지를 바로 받아들이는 가장 효율적인 광합성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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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전생 말고 현생에서, 5촉 짜리 노란 전구가 저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고
다다미 한장이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방이다. 천정이나 방의 그 거대한 스케일로 보아 거의 유아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5촉 전구나 다다미로 구체화 된걸 보면 그 기억이 반복되어 디테일의 보강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다음 기억은 어린 누나가 날 들쳐업고, 사실관계를 따져 보면 누나도 채 7살이 안되었을 시기이다, 철길을 가로질러
달리는 장면이다.  이 기억에서 유의할 점은 제3자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 어린 여자아이가 갓난애를 업고 뛰어가고
있는 것을 카메라가 같이 달려가며 찍어낸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누나에 대한 디테일도 있다. 단발머리에 검정색 짧은 치마 그리고 기차표 운동화, 그러나 이 기억은 훗날 추가된 왜곡된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세구루 미류나무에 대한 기억이다. 하늘을 찌르며 쭉 올라간 근사한 나무이다.
이 기억은 매우 세부적이며 게다가 아직도 그 기억의 실체가  그대로 남아있다.
강렬한 햇빛, 찢어질듯 몰아대는 매미 울음소리, 낯을 스쳐가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분명 여름날 한때다.
잔디처럼 잘 가꾸어진 파란 떼, 근심 걱정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정의 태초, 모든게 편안하고 아늑한 미류나무 아래서의 기억이다.
워낙히 강렬한 기억인지 수없이 반복되어 꿈에서 나타난다. 똑같이 반복되는 꿈.
이 기억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무덤, 땅속에서의 평안.

종일 비가 오던 날. 뒤채 흙담에 기대어 초가지붕의 짤막한 처마가 막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날린 빗물을 그대로 맞고 서 있었다.
다 젖어 오한이 시작된 몸을 언제 왔는지 누나가 자기 옷가지로 덮어 주고 빗물과 눈물과 콧물과 흙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자기가슴에 꼭 안아주어 영원으로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불과 9살짜리 여자애 가슴의 채취가 늘어난 시간을 타고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으니.

시골에서는 죽음이 익숙하다. 사람의 죽음도, 동물의 죽음도.
9살에 죽은 아이는 아직도 9살이다.
동그란 얼굴에 송충이 눈썹, 커다란 눈, 잘 붉어 지는 얼굴, 어눌한 말투, 작은 몸집, 항상 9살인채로 나타난다.
세월에 의해 바래진 죄책감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다.
온후한 낯빛과 다정한 대화와 포근한 심정이 이제 9살에 죽은 아이를 맞는다.
9살에 아직 죽지 않은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나이다.
깊은 눈에 덮힌 산길에서 내가 물었다.
저기 뒤에 서 있는 하얀 옷 여자 봤어?
돌아 보지마.
같이 가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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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각 일간지에 따르면 정부가 중산서민층의 요건을 연봉 1억 수준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실제 소득세율 인하로 인한 세부담 혜택의 경우 소득세 과표구간 8800만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으로 분류했다.
각종 소득공제를 고려하면 과표 구간 8800만원의 근로자는 연간 소득이 1억~1억500만원에 이른다. "  <조선일보 기사중>

일단 중산층이 먼지나 알아보자.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중간에 놓이는 사회층. 중소 상공업자·소지주·봉급 생활자 따위." <야후 국어사전>
전혀 도움이 안되는 말이다..


KDI 최신논문중에서 찾아보면

정의1)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 미만, 50~150%, 150% 이상으로 구분하여 각각 빈곤층, 중산층, 상류층으로
정의하는 방법  (OECD[1995])

정의2) 전체 가구를 소득수준에 따라 20%씩 균등한 수로 5등분하였을 때 중간인 2, 3, 4 등분에 속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방법 (Easterly[2001])
<KDI 이슈분석: 중산층의 정의와 추정 『KDI 재정ㆍ사회정책동향』2008년 상반기>

그게 그거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정의1은 중산층의 크기가 오락가락 하지만 정의2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

강만수팀이 어느 기준을 선호하는 지 밝히지 않아  정의1,2 각기 살펴보자

정의1의 예를 들면,
 5가구 가,나,다,라,마 등이 있으며 각기 년소득이 1000, 1100, 1200, 1300, 1억 이라고 하면
중위소득은 7300 이 되어 가,나,다,라 모두 빈곤층, 마는 상류층, 중산층은 '없음' 이 된다.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 라는 말은 정의1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산수이니 없어진 중산층이 절대 상류층으로 옮겨 간것이 아니란 것을 직감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산층이 줄어 들었다는 것은 빈곤층이 늘어 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어 버린다.
(물론 그 반대가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산층이 상류층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굳이 지나가던 개를 쳐다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의2 는 이미 중산층을 60%로 고정시켜 놓았다.
 가는 빈곤층, 나,다,라 는 중산층, 마 는 여전히 상류층. 이런 식으로 줄세워서 말이다.

정의2에 따르면 내 주변 인간의 60%는 연봉 1억 이상 이어야 하지만 그런것 같아 보이지는 않다.
 그러나 아래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할 수는 없다.
 (1) 다들 연봉 1억 이상인데 나만 모르고 있다.
 (2) 나는 하층민 부락에 살고 있다. (이 가능성이 훨 커 보인다)

오늘 저녁을 제대로 먹은 사람이라면 강만수팀의 근거는 정의 1 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해서, 중산서민층에 속할려면 연봉 1억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놀라운 것도 아닌데 언론의 과잉반응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말이다. (동아일보는 젊잖게 언급하지 않았다)
언제나 진실은 불편한 법이다.
대한민국에 중산층이라는 건 없다. 
99.5%의 빈곤층과 0.5%의 상류층만이 있을 뿐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6년 귀속 소득 기준 과표구간이 8000만원(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현행 8800만원)을
 넘는 근로소득자는 전체 근로자의 0.5%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기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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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날리 2008-09-0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연봉 1억에 상류층 운운은 개가 웃을 일이다' 라는거군요.
그럼 연봉 1억짜리는 중산층도 아니고 상류층도 아니고 어디에 속하는 건가요?

마늘빵 2008-09-0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극빈층이라는... -_-
 

It depends what one means by sex. If it's the usual masturbation with a living partner, I try not to have it at all.

masturbation은 가장 효율적인 반sex 행위이다.
(무엇이 sex인지의 정의, 내지는 범주를 만들기는 매우 귀찮고 논란스러운 일이기에 잠시동안만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이성간의 성기 삽입&수용행위로만 놓고 보자)

성충동을 자기제어 하는데에 자위 만큼 효과적인게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여야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전 어린이들에게는 자위를 죄악시하도록 명백하게 혹은 은밀하게 교육되어졌다. 
이 자위에 대한 죄의식이 미성녀자 sex금지 차원의 연장선이란건 쉽게 이해가 된다.
물론 sex가 강압적으로 금지되었다 해서 남자 일생에서 성능력이 가장 피크가 되는 시기가 10대 후반이라는데, 성충동이 안생기는건 절대 아니다.
윤리책에 등장하는 바와 같이 운동이나 예술활동으로서 성충동을 승화할 수 있으며 또한 하여야된다고 하나, 내 생각엔 달보고 짖어대는 똥개소리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실제도 그렇다) 이 또래의 남자애들이 성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위를 적극 권장하여야 한다.
이 나이 또래의 남자애들 거의 전부가 자위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아주 가끔 부주의한 탓으로 증거물을 남기거나 오묘한 타이밍의 불협화로 인해 현장이 목격되기도 하지만 이는 절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져야만 한다.

분명 masturbation은 usual한 행위다.
자위에 사랑이 어떻고 하는 걸 들어 본적이 있을리 없을것이며 혹 그렇다면 지나가는 개가 쓰러질 일이다.
자위는 순수한 육체적 행위이며 육체적 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육체적 흥분이 동반되지 않아도  쾌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니 파트너가 자위를 한데서 그게 사랑이 식었니 하는 것은 난센스일뿐이다.

If it's the usual masturbation with a living partner,I try not to have it at all.
지첵이 했다해서, 설사 하느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별 의미를 부여 할 필요가 없는,  usual한, 즉 흔한, 고상한 말이다.
사랑없는 섹스는 하지 않으련다...
이 말이 교육으로 만들어진, 즉 사회적으로 형성된 관념의 일부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사랑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공자왈식 주장도 할 수 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든 그렇지 않는 경우에서든 오르가즘은 동일하다. 단지 절정에 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가기만 한다면 동일한 것이다.
절정은 순수한 육체적 감각이다.
그러나 그저 사랑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성적충동만으로서 되는 것도 아니다.
파트너의 몸, 감각, 선호도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약간정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즉 정성이 있어야 된다.

고로 내 스타일로 하자면 이런 말이 된다.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가?
섹스의 의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시간 동안 정성들일 만한 파트너가 아니라면 섹스는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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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날리 2008-08-2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장대로라면 범생들은 자위 마니어들이군요

조선인 2008-08-21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식, 마지막 답변 기대 이하에요.

hanalei 2008-08-22 00:33   좋아요 0 | URL
몇시간이 기대이하라면 감당하기 힘드는데요?

조선인 2008-08-22 08:09   좋아요 0 | URL
고작 시간을 따지자는 게 아니잖아요. 다들 이 질문에 대해 너무 몸을 도사려 재미 없었어요.

hanalei 2008-09-02 00:34   좋아요 0 | URL
음? 수정하셨군요!
 

50년 7월
읍네에 나갔던 사람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그리고 며칠후 순사가 와서 괴뢰군이 지척에 도달하였으니 마을 사람 모두 피난을 가야한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날 밤 당황한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의논을 하였으나 우왕좌왕하여 난상토론만 벌이다 새벽까지 아무런 결론도 못 내렸다

아침,  마을 노인네들과 의논한 이장이 직권으로 결정을 내리길 20리 쯤 떨어진 물놀이 자주 가던 낙동강 지류천변으로
며칠동안 피난하였다가 그 때가서 또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그 날중으로 기르던 가축(소,돼지,닭...)들을 앞세우고 가재도구랑 가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메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났다.
그러나 젊은 할아버지는 반대하였으며 결국 피난길을 거부하였다.
전쟁때 일본놈도 그렇게 악독하게 굴지 않았는데, 아무리 난리가 났다 해도 그쪽도 같은 조선사람인데,
이게 다 쏘련놈과 미국놈들의 장단인데,,,투덜댔으나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농번기에 다 내버려 두고 갔다가 올해 농사 절딴 나는게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젊은 할아버지는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그대로 남았다.

다음날 텅 빈 마을에서 두사람만 한가히 노닥거리고 있었다.

다음날 한낮, 인민군이 마을로 들어왔다.
워낙히 아무런 전술적 가치가 없는 곳이라 그저 한번 휘둘러보고는 그냥 통과하고 말았다.
인민군들은 부자가 열심히 일하던 논 옆으로 지나가다 도주하지 않은 민간인이 있는 지라 경계를 했으나 의심스런게 보이지 않았든지 군관 혼자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군관은 왜 피난을 가지 않았는가 물었고 할아버지는 왜 피난을 가야 하냐고 되물었다 한다.
답변이 맘에 들었는지 우호적이 된 군관은 잠시 갈길을 멈추고 할아버지에게 담배를 권했으며 할아버지는 새끼참으로 가져온
감자와 옥수수등을 나누어 주어 같이 먹으면서 농삿일등에 대해 환담을 나누었다.
인민군은 곧 떠났으며 이게 할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민군과의 조우였다.

강변에 피난 갔던 마을사람들은 며칠밤을 잔치벌인 모기떼들에게 시달리며 7월의 뜨거운 햇볕 아래 고생하다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아무도 보지 못한체 마을로 되돌아 왔다.

이상이다.
이로서 할아버지는 부역한 빨갱이가 됐으며 아버지는 연좌로 걸려 평생을 시달려야 했다.
어릴적 매달 한번씩 찾아오던 눈매가 너무도 날카롭고 무섭던, 겉은 무서워도 속은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분명 속도 무섭다는걸 분명히 알 수 있다, 대공 직원만이 이제는 모두가 다 희미해진 빨갱이 집안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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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

paviana 2008-08-1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라면 정말 기가막힐 따름이네요.

마늘빵 2008-08-1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빨갱이 되기 쉬운 나라입니다. -_- 참으로 빨갱이 되기 쉬운 시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