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 어떻게 걷는지야 알 바 없다.
어느 누가 본적이 있겠는가.
그러나 윗층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다.
아마 공룡시대 말기와 포유류시대 초기가 겹쳐진, 머나 먼 옛날의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일게다.
주파수가 낮은 소리(즉 저음)는 힘이 실려 있다.
건물 구조물을 타고 멀리 멀리 나아간다.
주파수가 높은 소리(즉 고음)는 힘이 약하다.
벽체 하나도 통과하지 못해 여기까지 들리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온갖 소음의 스펙트럼속에서 건물기둥을 타고 울려오는 공룡발자국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다.
위층에서 공룡떼가 잔치를 벌이던 날
용감하게도 그 집 도어벨을 울렸다.
수백만년을 살아남고, 인간떼가 지구를 완전히 뒤덮은 이 시기에 그 정체를 전혀 들어내지 않은, 초절정 궁극의 위장술을
목격하였다.
키 160에 50킬로밖에 안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나는 위층 공룡들 각각의 발자국 소리를 분간해 낼 수 있으며
어른공룡, 새끼공룡 모두의 모든 동선을 파악하고 있고
식사시간, 세척시간, 청소시간, 뜀뛰기 시간, 낮잠시간.
심지어 교미시간까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위장된 공룡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룡이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가?
아님 인간을 공룡으로 만들고 있는가?
내가 진정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윗집 침대가 심히 덜컹거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정도 프라이버시조차 지켜내지 못하는게 과연 제대로 지은 집이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