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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줘?

  안피웁니다.


  연구실에서도 내키면 전혀 거리낌 없이 피워댔다.

  멀 해도 항상 당당했다. 

  연기를 뿜고 있을 때면 그 당당함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여자라서 더 삐딱해지는 주변의 눈길 같은건 안중에도 없었다.


  세학기 선배라지만 처음 보자마자 반말이었다.

  군대 갔다온걸 손 꼽아보면 어리면 어렸지 더 많을리는 없는데.

  나는 아주 오래되더라도 쉽게 반말을 하지 못한다.


  내 생각에도 그리 유능한 조교는 되지 못하였다.

  일에 대한 유별난 감정이입, 일에 대한 엄청난 열정에도 불구하고.

  반면에 나는 그저 빠르고 정확하게 헤쳐 나갈뿐인 드물게 유능한 조교였다.

  아무런 감정도 열정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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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갈색.

항상 검게 염색해서 아는 사람이 없지.

해가 쨍한 날 멀리서 보면 금발로도 보여.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는 줄 알았지.

거의 햇빛을 못 본 것처럼 창백했으니까.

벗겨 놓으면 온몸이 다 그래.

시골의원에서는 알비노일 것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피부가 얇아.

쉽게 손상이 되.

햇빛에 내 놓으면 얼마 안 가 타 버려.

정말 타.

화상으로 피부가 벗겨지지.

 

시골 의사는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했지만 

잘려 나간 발가락이 다시 자란건 사실이야.

 

다음날이면 뱀 허물처럼 벗겨지고

또 그 다음날이면 새 피부로 덮여 지지.

그래서 언제나 하얀거야.

 

연약함을  재생력으로서 균형을 맞추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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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종 내게 묻는다.

대구 사람들은 더위에 강하냐고.

내 생각에는 거기라서 더운게 아니고 여름이라서 더웠나 보다.

그리고, 산다는 게 다 그런거지 하고 지냈었나 보다.

기억에 남아 있는 그 하루는 아주 더웠다는 것 보다는 그냥 좀 신기했나 보다.

 

그날은 8월이었고 시간은 두세시쯤이었고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시작은 이런 류의 기억에서는 뻔하지만,

디테일이 실제라기 보다는 페키지로 덮어 씌웠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세심하게 기억의 모든 단편들을 머리속에 영구히 집어 넣어 두는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니까.

거의 모든 기억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진 않으니까.

대신 가장 유사한 요약본의  대출 도서 번호만 넣어 두는 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부터 땀이 나지 않았다.

팔도 이마도 뽀송뽀송 했다.

몸은 따뜻했고 관절들은 노곤노곤했다.

강력한 태양풍이 몸을 밀어주어서 걸음걸이도 경쾌해졌다.

요약하자면, 살아있다는 건 참 좋은 거란걸 만끽하고 있었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제 정신이었다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았을 것이다.

체온 조절 기능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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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 하던 앞집은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서 자리잡았다.

할머니와 내가 고향을 떠날쯤이 되어서는 온 마을이 거의가 비었고 무너져가는 집이란게 낮설지 않을때 였다.

닭집 딸네미를 다시금 본 건 참 오랜시간이 지나 먼 친척 뻘 집 애 결혼식에서였다.

역시나 먼저 알아본 건 내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고질적인 안면인식 불량문제가 있다.


"너 잊어버렸는데 보니까 알겠더라"

"오빠가 너 보고 싶다고 울다가 아빠한테 맞았어"

"너 한테 간다고 집 나갔거든"

"아빠 지갑 들고서 말야"

"오빤  저기 있는데. 너 못 알아보더라고"


우린 전에도 친했을까.

기억하는 한 그 집 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 집 닭만큼이나 없다.

얘가 나에 대해 아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린 서로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서로 공유하고 있는 고향의 기억을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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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여운 얼굴에 당혹, 곤란, 혼란, 망설임 등등이 지나가는게 훤히 보인다.

잠깐 그러다 엉겹길에 불쑥 튀어 나온다.

 

"이모부"

 

아가야, 난 이모랑 결혼한 적이 없단다.

결혼말이 나온 적도 없단다.

심지어 이모랑 연인이었던 적도 없단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너라도 별 다를게 없구나.

대체 누구라고 불러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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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20-08-1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글 올리신듯! ^^

- 저는 어머니와 결혼하시지도 않고 연인이신적도 없는 어머니 친구분을 삼춘이라고 불러요. ㅎ (우리 동네에서는 이웃의 어르신들을 삼춘이라 부르는 거.. 아시죠?)
삼춘이라는 호칭이 공용어가 되면 좋겠다는 쌩뚱맞은 생각을....

저는 신부님,이라고 부르던 분이 사제직을 떠나 일반신자가 되었을 때, 신부님 호칭을 버리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호칭이 참 어렵습니다 ㅠㅠ

hanalei 2020-08-16 06:5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잘 계시겠죠.
뜸 한건 그저 만사가 귀찮아서 그런겁니다.
생각이란게 피곤하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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