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과 주제로 본 우리들의 윤리학
박찬구 지음 / 서광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윤리학 책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한 건 [니코마코스 윤리학] 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무리 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이를 만났고 , 함께 읽어야 할 책인 듯 하여 - 자고로 철학이라는 말은 이미 철[鐵]의 학문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쌓았고 스스로 유리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시작해보았으나 , 역시 그 길은 요원하여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벌써 몇 년 전- 저의 기억의 시간은 더딥니다만 물리적 시간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 의 일입니다. 

촛불이 켜지고 들불처럼 일어났을 때 사람이 만든 권력이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권좌에 앉은 자의 도덕성이라든가 윤리의식에 대해서 잠시 고민했습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일 수 없나 하는 단순한 의문이 들었던 탓입니다. 다시 마음 속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심각한 결정장애와 선택장애를 가진 사람이라 주변에 말해두지 않으면 생각만 하다 마는 경향이 있어서 말입니다. 또 주변에 소문을 내느라 나무늘보 한 걸음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혼자서는 방향도 못 잡을 일이었습니다. 철옹성의 학문에 어디를 건드려야 미세한 균열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쇠몽둥이로 벽을 쳐서 균열하는 지점을 찾는 장인의 정신처럼 단박에 찾아 수 없을테니 벽의 여러군데를 망치로 두드려본다는 심정으로 여러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았습니다. 윤리학이란 책도 있고 에티카라는 책도 있고 많았습니다만 철벽같은 언어였습니다. 그러니 언어조차도 틈을 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찾다가 보니 [개념과 주제로 본 우리들의 윤리학]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 째 고비는 책을 펼치자마자 시작되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의 이름을 보았거든요. 언어철학자라고 알고 있는데 도덕에서 만나니 생경했고 들리는 소문에 어마무시하게 어렵고 난해하다는 풍문을 듣고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만났으니 난감했지만 다행히 슬쩍 지나갔습니다.

두 번 째 고비는 또 한 사람의 철학자였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철학자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철학자가 한 분 계시는데 바로 칸트 옹입니다.

칸트의 의무론에서처럼 도덕이라는 것이 정언명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면 우리는 왜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도덕과 무관한 이유를 대라는 요구인셈이다. 즉 그것은 정언명법을 가언명법으로 바꾸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의 벽을 넘어설 수 없기 대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 통찰한 사람에게 있어서 위와 같은 물음은 사실상 사이비 물음에 불과하다. 그것은 물질문명에 물든 그래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병든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들의 윤리학 145쪽]

저는 한 순간에 사이비 물음을 묻는 질문자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철옹성의 철학에 또 한 번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잠시 책을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미 두드리기 시작해으니 두드리기라도 끝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을 마저 읽습니다.

고대 덕윤리부터 시작해서 평등과 정의 자유에 대한 장을 읽을 때 ‘강자의 덕으로서의 정의‘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제가 찾고자 했던 사이비 물음에 대한 어렴풋한 윤곽을 잡을지도 모르는 단초- 혼자 생각중인 -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강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강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구구한 이야기가 필요 없다.문제는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강자임을 입증한 그가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서 강자가 단지 자신의 주관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하는가 아니면 객관저 가치 질서에 입각하여 행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강자의 권리는 자기 자신의이익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능력 늘 최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도 벅찬 약자는 갖지 못한 능력 즉 정의로울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정의는 강자의 덕이라 말했던 이유이다.

[우리들의 윤리학 197쪽]

저의 균열은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만 읽어도 될 듯합니다만 윤리학 책을 읽다보니 에피쿠로스의 쾌락과 공리주의 철학 칸트의 실천이성 같은 것들을 공부해야 강자의 덕과 윤리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읽어보려고 합니다. 스스로 자기 발 가죽을 벗기고 소금을 뿌린다음 달군 철판을 걸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의 염려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읽은건 구판인데 이미지가 데이터 베이스엔 없다

담담하게 읽을 수 있는데 일리아스 헥토르의 죽음 혹은 디오메데스의 수훈 같은 맛은 없지만 영웅 개인 서사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어벤져스 먼저보고 영웅의 솔로무비를 보는 느낌 그런데 이 영화가 한참 재미있을라니 다음 시간에라고 자르는 드라마 같다 어느 지인의 말처럼소실되어 전하지 않는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18-02-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벤저스 담에 각 영웅들의 솔로무비.
적절한 비유십니다.
천천히 따라가께요^^
 
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어의 간극은 끝이 없는 동굴과 같다. (사실 원래 쓰려고 했던 문장은 언어의 간극은 무저갱과 같아서였다. 무저갱은 내게는 돌아올 수 없는 지옥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

언어의 간극은 당신과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보다는 평행을 달리는 직선과 같다. 당신은 당신의 말을 하고 나는 내 말을 하고 당신은 나의 말을 듣고 나는 당신의 말을 듣는다. 당신의 말을 듣는 나는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말을 듣는 당신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의 의미와 내 의미는 우리가 쓰는 말과 글 속에 유폐된다. 유폐되기도 전에 사산한다. 언어의 의미는 태어나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사산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의 한 순간들 

치열한 전작주의자는 아니니까 심심풀이 삼아 2017년 말미에 불었던 헤세와 도끼(도스토예프스끼) 옹의 글들을 찾아 읽어보기로 혼자 마음 먹었다. 헤세 씨의 글들은 어쩌다 보니 유리알 유희만 남겨두고 대강은 훑었으니까 도끼옹의 책들을 읽어볼 요량이었다. 다분히 즉흥적인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 수제 맥주의 알싸한 끝맛이 그리웠던 모임을 마치고 돌아서 집으로 오던 그 때였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고 , 분신을 읽는다 분신을 읽었고 백야를 읽을 생각이다. 

분신은 9등 문관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의 삶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골랴드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문득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마까르 제뿌쉬킨의에서 느껴지던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좀 더 확장되고 구체화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 광증에 가까운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인물이 골랴드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소설은 두 가지 점을 보게 되는데 개성적 인물의 탄생을 보여주거나 , 잘 짜여진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드라마로 말해보자면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 물론 요즘은 아이돌이란 수식어가 미안한 연기자들이 몇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으니 내가 골랴드낀 같다. - 스토리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드라마와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서 그 연기자의 연기를 보느라 스토리를 잊어버리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데 왜 이렇게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냐면 도끼옹의 두 번 째 작품이 그 묘한 경계선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약간은 매력적인 캐릭터인 골랴드낀은 제대로 포텐을 터트리지 못했고 획기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었던 장치들의 사용이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물로 끌고 갈 거였으면 라스콜리니코프 같이 끌고 나갔어야 할 것이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면 까라마죠프가의 형제들처럼 - 읽은 작품이 빈약하고 그 중에 예를 고르려니 마땅히 제 옷을 입은 예를 찾는 것이 힘들다 - 했어야 하지 않을까? 

비평가들의 이야기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 왜냐하면 저들만의 이야기인것 같고 나는 느끼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내가 꼭 소설을 잘못 읽은 것 같은 감정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그들이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이론을 끌어오고 융의 이론을 끌어오고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끌고 들어와서 말할 때 나는 그만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책을 덮는다. 더이상은 읽을 수 없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변신을 읽으면서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골랴드낀의 병세라든지 심리상태를 좀 더 명징하게 설명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미안해졌다  . 프로이트와 융을 공부하고 철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하고 비평을 하는 사람들에게 ..... 그러나 앞으로도 나는 그냥 내 식대로 글을 읽고 생각하고 살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18-02-0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비록 혹평받은 작품이지만
위대한 작품들의 단초가 되는
시도들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명징치 못한 서사나 이야기의 끝맺음이 확실치 않고, 잘 짜여진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현실적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골랴드낀은 고골의 주인공들을 많이 닮았습니다. ^^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한 것과 달리 끝나버렸지만 강박적 캐릭터의 탄생을 보게된 작품 게다가 프로이트나 융을 읽고싶게 만드는 도끼옹의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