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의 바깥 창비시선 335
이혜미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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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의 시집 <보라의 바깥> 첫 시의 첫 문장은 묵직하다. ‘어떤 문장은 사라지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쓴다. 소멸은 부재이며 겪어 낸 자가 없으므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소멸은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금(線) 바깥으로 나아가는 행위다. 안은 바깥을 동경한다. 바깥은 안을 동경한다.


  시인은 ‘나는 도망친다. 빛으로부터’(보라의 바깥 중에서)라고 말한다. 자발적 도피다. 빛은 더 이상 안온하고 건전하며 긍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빛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것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0번 중에서)과도 같은데 시인은 ‘잉여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사라질 권리)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바깥으로 걸어나갈 때 스스로 획득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은 가시의 거리 - 붉음과 보라의 사이 적외선과 자외선 사이 - 에서는 확인 할 수 없다.


  이혜미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넘치지 않음에 있었다. 흥분하거나 냉소적이지 않은 시선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서히 집중해서 듣게 되는 낮은 목소리 말이다.


  바깥에서 보면 세계는 ‘개연성 없이 흩날리는 저 무수한 의미’(토요일의 주인)들에 불과하다. 이러한 의미들은 ‘휘발하는 것만이 우리의 경전’(제 3 통증)인 것처럼 가볍다. 어둠으로 도망해서 보는 밝음의 단면은 부나방처럼 사라져가는 가련한 존재들의 광란이다. 침참하고 퇴적되며 고요하지 못한 것들은 휘발하고 산화하여 사라져간다.  

 

  이것에서 저것 되기는 죽음의 통례를 치른다. 죽음은 한 존재의 끝인 동시에 시작이다. ‘빛이 저물며 어둠을 잉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침몰하는 저녁 중에서)  ‘하나의 삶이 수많은 죽음을 표절’(청록색의 여인 중에서)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어둠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어둠은 시인의 몸 전체를 이루고 있다. 순록의 뿔에 관통되는 순간 ‘줄줄 흘러 나오는 내 속의 어둠’(블랙 아웃)이라고 고백한다.

예전에 이혜미의 시집을 읽으면서 잠깐 기록한 것을 찾아보니 이렇게 적어두었다. ‘어떤 문장은 사라지기 위해 태어납니다’ 이혜미의 <보라의 바깥> 첫 시 얼음 편지의 첫 구절이다. 노래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고음을 때리고 감정을 펌프질하는 문장이다. 오랜만에 쓰는 표현인데 나와 채널이 맞는 문장이다. 내 솥 끝 입가에서 사라져버린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수없이 사산된 문장들을 사산시킨 나를 위로하는 문장이다. 나는 위로를 받았으나 시인이 걱정이다. 초장부터 이리 강하게 때려버리면 종장은 어찌 감당할까 싶다.


  사라질 권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누군가 심어두고 떠난 가시를 기억하는 입 속은 이미 부재가 사는 집이다’ 이 문장에서 내 기억은 기형도를 불러냈다. 어제는 ‘입 속의 검은 잎’ 하루가 지나서는 ‘빈집’까지 불러낸다. ‘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 하나가 나는 두렵다’고 쓴 기형도는 ‘빈집’에서 ‘사랑을 잃고 ’ 쓰면서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마무리한다. ‘입과 부재가 이혜미의 시에서 돋아나 내 기억 속 몇 편의 시들을 불러낸다. 이제 나도 기억이 퇴적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한 켠에서 퇴적될 것이다. 어떤 이의 기억에도 남지 않게 되는 순간 영원한 소멸 즉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혜미의 시와 기형도까지만 이야기하려 문득 죽에에 대한 술회까지 이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읽는 기록은 부끄럽다. 또 한 편의 책 읽기는 이렇게 어영부영 끝내려고 한다. 시를 읽는 건 언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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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2015-05-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