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퍼즐을 맞추는 읽기
1월 첫 책은 <일리아스>였다. 오래전 기억도 나지 않는 여름 한 철에 파이데이아 바람이 불어 - 바람도 바람이었지만 , 알지 못한다는 부끄러움과 책 좀 읽었다고 하면 당연히 읽었을거라고 생각하는 그런류의 책들을 읽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시크하게 ˝응˝이라고 대답해주기 위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은 언제나 열등감을 채워주기 위한 천착이었나보다. 그러나 , 사람들은 서양 고전은 읽었냐고 물어보면서 정작 동양 고전은 읽었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또한 서양 고전을 읽으면 오~라는 감탄사와 반짝반짝한 눈빛을 보내지만 동양고전을 읽으면 응?이라는 감탄사와 약간의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왜 그러는가? 궁금하다. - 한 번 읽은 기억이 있다.
나름 주인공이라고 하는 분들이 명예의 선물 - 그렇다. 말이 명예의 선물이지 , 여성이다. 노예다. 잠자리 수발하는 사람이다. - 때문에 찌질하게 싸웠다. 두 번 째는 , 함선의 목록 많은 함선과 그곳에 타고 있는 영웅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장면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파란책의ㅡ어린 시절 교회에 과자 먹으러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읽어보라면 파란 책을 줬다. ~~~ 복음이었는데 첫 장이 누구는 누구에게서 태어나고 결혼하고 애를 낳고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정말 지루했다. 책을 덮었고 그 다음부터 파란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 첫 장을 기억해내고는 그 여름날의 지리한 아지랑이처럼 내 머릿속이 이지러지는 경험을 해야했다.
2권을 지나자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서사시여서 흥미롭게 읽고 그저 끝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그 여름 햇살같은 게으름과 졸음을 견디며 읽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면 여름이 아니라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모호한 그 중간 어느 한 시절이었다는 것 정도다.
두 번 읽으니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외에도 다른 조연들의 이름이 보이고 그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그 궁금증을 인터넷으로 해결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이야기의 스포일러를 당하는 상황이 많아지기도 해 난감해지기도 했다.
일리아스를 처음 읽을 그 여름에 과하게 욕심을 부려서 - 읽고싶다는 것이 아니라 책의 두께가 주는 뿌듯함 때문에 또한 천병희라는 이름이 주는 뿌듯함 - 오뒷세이아와 소포클레스 비극집 아이스퀼로스 비극집까지 두루 두루 읽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스퀼로스에서 멈춘 읽기가 에우리피데스 비극집 1권 읽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집 1권을 읽으면서 이제껏 잘 보지 않았던 전쟁의 이면 , 흔히 말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시대에도 전쟁은 여전히 남자들의 전쟁이었으나 전쟁을 겪는 것은 언제나 살아남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일리아스에서 전쟁은 파리스가 헬레네를 트로이아로 데려오면서 시작된다. 파리스의 파렴치를 나무라던 헥토르는 그래도 동생이라고 전쟁의 선봉에 서서 아카이오이족과 대치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아가멤논이다.
<아가멤논>은 아이스퀼로스 비극집에 전하는데 부인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스포라서 글자를 아낀다.)<아가멤논>을 읽다가 이제는 아가멤논보다는 클뤼타이메스트라( 또는 클뤼타임네스트라 , 천병희 역을 따랐다. 전자는 아이스퀼로스 비극집에서 쓰이고 , 후자는 소포클레스 비극집에서 쓰였다.)의 처지가 이해가 갔고 , 애먼 캇산드라의 처지도 눈에 띄였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집 중에는 <헤카베>라는 비극이 있는데 헤카베는 파리스의 어머니이자 프리아모스의 부인 즉 트로이왕의 부인이다. 헥토르의 어머니이고 안드로마케의 시어머니며 폴뤽세네 , 플뤼도로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많은 아들 딸들을 두었는데 거의 모두 전사하고 만다. -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고 잘못키운 아들하나 쉰 아들 다 죽인다. - 그러던 중 죽은 아킬레우스가 풀뤽세네를 제물로 줄 것을 요구하는 -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잡는 - 애처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여기까지다. 스포일러 자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이야기들을 읽게 하는 것이지 말해주는 것이 아니므로 ) 한다. 내가 보기에는 제일 불쌍한 할머니다.
<헤카베>를 읽으면 캇산드라와 아가멤논의 신탁이 제일 마지막에 나온다. 그렇다. 시간 상으로 <헤카베> 다음이 <아가멤논>이다.
<헤카베>를 읽고 나면 다음이 <안드로마케>인데 이 사람은 헥토르의 부인이었고 - 지금은 미망인이고 , 노예 그것도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의 노예다 - 그러니까 자기 남편을 죽인 남자의 아들의 첩이 되었다는 소리인데 여기서 더 비극적인 것은 네옵톨레모스의 아들 몰롯소스까지 낳았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안드로마케>는 몰롯소스와 안드로마케가 네옵톨레모스의 부인 헤르미오네 -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와 메넬라오스의 위협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뜻밖의 인물 오리스테스가 등장한다. 오리스테스는 아가멤논의 아들인데 소포클레스 비극집 중 <엘렉트라> - 아가멤논의 딸이다. 오리스테스오 동기간이다. - 에 등장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집에도 <엘렉트라>가 실려- 아직 안 읽어봤다. 그래서 말 못한다 - 있다.
트로이는 멸망했고 트로이아 여인은 살아남았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에우리피데스 비극집 <트로이아 여인들>을 통해서 조명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인 헬레네의 운명도 여기에서 다뤄진다. 물론 <안드로마케>를 읽으면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의 말에서 전쟁 이후의 헬레네의 삶의 단편을 들을 수도 있다. 또 에우리피데스 비극집 2를 읽으먄 <헬레네>라는 비극을 볼 수도 있다.
일리아스를 중간에 놓고 이렇게 저렇게 비극집의 이야기들이 얽히고 섥힌다. 요즘 마블코믹스에서 어벤져스들의 영화를 만들어 흥행을 하는데 이러한 어벤져스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컨텐츠를 서양 사람들은 이미 그리스로마시대 신화에서부터 만들어낸 모양이다. 끊어졌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타래가 풀리고 정렬을 하니 스토리가 있는 거대하고 맥락이 있는 이야기가 되어간다. 어서 에우리피데스 비극집 1을 마무리하고 2로 넘어가야겠다. 2권은 헬레네 이야기와 아가멤논의 딸 이파게네이아의 단편이 실려 있으니 전쟁과 여성이라는 관점으로 읽는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에 또 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