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의 매그놀리아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
안도 미키에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현실과 영적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양쪽을 다정한 시선으로 감싸고 있어, 요즘 들어 영적 세계에 부쩍 관심이 높아지는 내게 안도감과 그리움을 주었던 소설이다. 책 속의 정령들은 현실과 유리되지 않았으며, 공포의 대상도 아니다. 단지, 추억을 공유한 채로 인간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존재들이다. 작은 꼬마 미호의 할아버지 영혼이나 도코의 외삼촌 영혼은 다른 세상에서조차 가족들을 지키고 보호한다. 그러나, 그들은 함부로 나타나 놀라게 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한번 정도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어 사랑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혼이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소설의 기본은 현실에 튼튼하게 뿌리박혀 오늘을 얘기하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도코는 정의감이 있는 건강한 소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오래 전 혼자 되신 외숙모를 챙겨드리는 엄마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외숙모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아는 깊은 속을 지녔다. 손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꼬마 미호를 위해 함께 레인보 빌딩에 가주기도 한다. 나이에 걸맞게 같은 반 남학생인 세키타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면서도, 키짱과 함께 스키장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는 친구를 리드하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친구 린이 왕따를 당했을 때에는 무관심으로 함께 동조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책에서는 왕따현상을 깊이 다루지 않고 스쳐지나가는듯이 묘사했지만, 당사자의 아픔만큼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아이에 대한 따돌림은 별 것 아닌 일을 계기로 다른 아이에게 옮겨 간다. 따돌림당하던 아이가 구제되는 동시에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면서 괴로움을 겪는데,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써내려간 것이 비뚤어진 교우관계를 더 설득력있게 나타냈던 것 같다. 

여섯 편의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의 '마블 쿠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질녘의 매그놀리아'란 제목은 이 '마블 쿠키'편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담장을 넘어들어온 낙엽과 일조권을 이유로 목련나무를 벨 것을 요구하는 이웃 때문에 외숙모의 시름이 깊었으나, 다행히 이기적인 이웃의 마음을 바꾸게 만드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보다 나무를 더 잘 이해하는 고양이 뭉크와, 나무의 정령을 본 도코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묘하면서도 푸근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다.
다른 세상에서 지켜주는 존재에 든든함을 느끼며 사랑을 배우는 소녀인 도코의 체험을 공유하고 나니, 자꾸 하늘 위를 쳐다보게 된다. 영혼이 존재하는 또하나의 세상, 그곳은 무한히 환할 것만 같다. 

--언젠가 외숙모가 말했다. 유령은 무섭지 않다. 죽은 사람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 정작 무서운 건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 즉 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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