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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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나오는 추리소설이라니,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호감이 갔다. 소설 속에서 음식을 묘사한 부분을 읽는 것은 간접체험을 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주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팬더와 추리소설은 무슨 관계일지, 팬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한 것은 끝도 없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정겨운 부부 한 쌍이 결혼식 하객으로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초반엔 제법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며 펼쳐진다. 조금은 수다스러우면서도 정이 가는 캐릭터인 아야카와,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가끔은 친구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딴짓을 하는 평범한 주인공 코타가 꾸며나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연상되었고, 자기중심적으로 자라 상대방을 배려한 줄 모르는 천박한 인성의 소유자 기노시타 마키, 그리고 신이 내린 미각과 매너를 지닌 멋진 노신사 나카지마 옹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각 인물의 특징이 그들의 대화에서 또는 묘사된 어구에서 개성있게 폴폴 풍겨대어, 머리 속 검은 그림자가 점점 환해지면서 각자의 모습을 드러내듯 그렇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인물들의 성격이 뚜렷하게 잘 드러난 점은 이 소설을 생동감있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장면은 바뀌어서 저돌적인 박력으로 무장한 형사 아오야마와, 그의 행동을 걱정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중심을 지니고 사건을 처리하는 상사 혼다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앙상블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셜록 홈즈나 포와로 같은 명탐정의 분위기는 전혀 아니지만, 평범한 형사의 포스만으로도 사건의 해결로 한발한발 다가선다. 

사건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오야마 형사가 의심을 했던 그 인물이 그대로 범인으로 판명되고, 설마 하던 일은 사실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범인이 잡힌다거나 하는 의외성은 없었지만, 잇따른 실종사건이 계속적으로 연관이 되면서 사건은 끔찍스럽게 확대되어간다. 

저자가 전직 요리사였던 탓에 생소한 프랑스 요리를 언어로 맛깔나게 표현해 놓은 점은 이 책이 가진 또하나의 장점이다. 때때로 벌어지는 식사 장면과 식재료 구입장면 등에서 맛을 추구하는 장인정신과 맛에 즐거워하는 원초적 생동감이 펄떡거리는 듯이 숨을 쉰다.

오로지 맛만을 추구하는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가족도 외면한 채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성품마저 상실한 사람들이 벌이는 범죄행각은 비뚤어진 가치관의 엄청난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맛이 그렇게도 대단한 것인지 절대미각이 아닌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맛에 죽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관자적 입장에서나마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었던 추리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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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 레드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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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람의 화원'과는 좀 다른 느낌의 김홍도와 신윤복을 만났다. 화원으로서 절대적 경지에 이른 것으로 묘사된 김홍도는 정조의 특명을 받은 비밀조직 간자를 양성하는 직책을 비밀리에 수행중인 사람으로 나오고, 그에 비하면 신윤복은 한층 경거망동하고 주색에 빠지기 쉬운 인물이나 사유리와의 만남으로 진정한 사랑에 한발 다가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기존에 품고 있던 이미지를 곱게 반납하고, 새로운 인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에 그리 반감은 없었다. 또다른 창조된 이미지에 설득력이 있어 공감이 간다면 '바람의 화원'과는 별도의 영역을 구축하여 '색, 샤라쿠'만의 공간을 마음 속에 내줄 터였다. 그러나, 책의 재미는 인정하면서도 마음은 쉽게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재미와는 별도로 김홍도와 신윤복을 '색, 샤라쿠'와 연결하여 새롭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존심 내세우며 또아리튼 뱀마냥 고개를 쳐들었다.

왜일까?
도슈샤이 샤라쿠가 신윤복이 아닐지라도 책은 무죄다. 소설은 픽션이므로, 사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도 잘 짜여진 플롯과 줄거리로 나름의 주장을 탄탄히 뒷받침하면서 공감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간혹 그런 책들은 정교한 구성으로 실제와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말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색, 샤라쿠'는 일본 사회를 정탐하고 일왕의 교서를 찾아오는 임무를 띤 신윤복이 일본에 입항한 후 출판업자 쓰타야의 전속 화가로 일하며 인기를 얻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지며, 주변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잔인한 살인사건은 궁금증을 더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이카 옥에서 알게 된 기녀인 어린 소녀 사유리를 마음에 두어 접근하고 미륵교의 배후를 캐며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동안 그가 맡았던 임무는 잠시 실종된다. 게다가 하시모토와 다로의 남색 행각은 꽤 비중있게 등장하는데, 이런 곁가지의 일들이 휘몰아치는 동안 신윤복이 왜 일본에 갔는지를 잠시 망각할 지경이 된다.
우연의 짜맞춤이 보이면 독자들은 소설의 급수를 낮게 평가하게 된다. 신윤복이 본연의 임무인 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후반부에서 갑자기 사유리가 닌자로 등장하는 순간, 신윤복의 이미지는 마음에서 날아가버리고 꼭 신윤복일 필요가 없는 조선의 화가 정도로 생각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신윤복이 사유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정성으로 매진했던 작품인 '미인도'를 완성하는 순간은 클라이맥스가 될 수도 있었음에도 왠지 어색함만이 감돌았던 것은.

이 책은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다. 단, 영화처럼 전개되는 각 장면마다의 흥미요소는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책 속의 신가권이 전혀 신윤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의 화원'으로 굳어진 이미지를 풀기 위해선 적어도 그 정도의 감흥이 주어져야 했는데, 기대에 못미친 결과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이미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물들이라 그 인기에 묻어 주목을 받긴 쉽겠지만, 만족감을 주지 못했을 경우 결과는 더 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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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을 날아서
프랜시스 하딩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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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소녀 모스카와 거위 사라센의 행적을 따라가는 동안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 읽기가 금지된 세상에서 아버지로부터 남몰래 글을 배웠던 모스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줄곧 매여 일을 하던 방앗간을 탈출한다. 가던 길에 사기꾼 클랜트를 만나 함께 맨들리온으로 향하던 중, 권력자 공작의 여동생인 레이디 타마린드와 마주치고 그녀의 첩자로 일하게 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클랜트를 믿지 못하던 모스카는 레이디 타마린드를 위해 일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얼떨결에 시체를 유기하던 클랜트의 일을 돕게 되면서 주변 상황에 휘둘리게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 용기를 내며 당당하게 일어선다. 그것은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거짓 증언을 강요한 클랜트의 말을 따르지 않고 경찰 앞에서 용감하게 사실을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도저히 애꿎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울 수 없었던 사라센은 정의로움은 물론이고 거위 사라센을 끝까지 지켜내는 다정함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모스카는 출판업자 길드, 열쇠장이 길드, 뱃사공 길드의 세상을 종횡무진하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는다. 까닭없이 느끼던 레이디 타마린드에 대한 동경심은 권력을 향해 따라가던 느슨한 마음이었다. 진실을 깨달은 모스카는 조금씩 사건의 조각을 끼워맞추는 동안에 12세 소녀가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의 집합체를 모아놓은 것처럼 용기와 지혜를 발산하면서 숨겨진 사실을 밝혀낸다.

모스카가 사라센을 안고 쫓기듯 뛰어가는 표지의 모습은 이 소설의 성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노란 색깔의 꿈을 꾸는 듯한 배경과 사방을 에워싼 묘한 분위기는 모스카가 헤쳐나가는 판타지 세계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판타지의 세상에서 휴머니즘을 만나면 현실에 없는 세상의 생경함 속에서도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클랜트조차도 속사정을 알고 보면 잡히기 이전에 묘사되었던 것처럼 악인만은 아니었으니,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함께 길을 떠나는 동반자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걸 보면 둘은 이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듯하다.
제목대로 깊은 밤을 훌쩍 날아오른 느낌을 받으며 판타지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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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나의 10가지 약속
가와구치 하레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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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강아지 사진에도 끌렸지만,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으례 그렇듯이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애틋하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 줄거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촘촘한 구성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단점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어버리는 매력적인 요소는 단연 표지와 속지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는 귀여운 개의 사진과, 개와 나의 10가지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10가지 약속을 하나하나 음미해 보니, 그간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너무나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했었다는 후회감이 든다. 나는 은연중에 사람은 강자이자 지배자, 동물은 약자이면서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는 하인, 또는 잠깐 왔다 가는 손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식구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둘은 한 집안을 구성하는 동일한 구성원이므로, 사람에게 맞추기만을 바란다면 애완동물을 기르기 전에 조금더 고려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동물이 그런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갈등이 표출될 것이고, 상태가 지속되면 상처를 입는 것은 동물쪽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키우던 잉꼬새를 하늘로 보내고 뒤늦은 반성을 했다. 왜 깨달음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 이후에 찾아와 후회만 안겨놓는지 모르겠다. 집안을 어지른다는 이유로 못하게 했던 여러 행동들, 나에게 가하는 공격을 사람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미워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신에게는 학교도 있고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답니다.
나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말을 안 들을 때는 이유가 있답니다.--


책 속의 아카리 또한 아끼는 삭스를 한때 멀리 하고 무관심했던 적이 있었다. 엄마의 유품인 옷에 얼룩을 묻혀 놓았다는 것이 주이유였다. 이후 바짝 말라가던 삭스는 한번 줬던 마음을 쉽게 돌리지 못하는 것에서 사람보다 더 충직하고 곧은 성품을 보여준다. 
애완동물을 키울 때에는 평생을 같이 할 친구로 여겨야 한다. 이 책을 간직해두고 틈틈이 보면서, 이 다음에 다시 애완동물을 키우게 될 때에는 그 점을 잊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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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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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서 만났던 오스카 와일드를 대하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으면 약간은 생경한 기분이 든다. '행복한 왕자'를 예쁜 삽화가 가득한 그림책을 통해 만나면서 교훈이 가득한 아름다운 동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의 동화들이 다수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든다.

출판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일러스트들의 향연은 내용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다양한 용지와 기법을 사용하여 네 명의 일러스트들이 그려낸 그림은 마치 오스카 와일드에게 바치는 헌사인 것처럼 정성스럽다. 일반 책처럼 지면의 일정 부분을 활용해 그림을 삽입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위해 두 장 길이의 종이를 삽입하여 일일이 펼쳐보게 되어 있다. 책의 느낌을 그대로 형상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그림들이다.

총 9편의 단편은 모두 오스카 와일드표 동화의 특징을 짙게 풍기고 있다. 처음에 나온 '별아이'는 거만하고 냉혹하던 별아이가 깨달음을 얻어 자신이 냉대했던 친어머니를 찾는 길에 갖은 고생을 겪은 후, 사실은 왕과 왕비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왕이 되는 이야기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는 별아이가 삼 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자는 사악하기 그지 없었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전형적인 동화가 한순간 어두운 여운을 남기며,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헌신적인 친구'는 더할나위없이 착하고 순박한 한스를 이용하는 이웃인 방앗간 주인의 파렴치한 행동에 답답함과 무기력마저 느끼게 되는데, 세상을 한껏 조롱하고 비판한 오스카 와일드의 시각이 느껴진다.
'유별난 로켓 불꽃'은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던 로켓불꽃이 죽는 순간에 가서야 온 세상을 놀라게 할 줄 알았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이다. 교훈적이면서도 역시 냉소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
'나이팅게일과 장미' 역시 청년을 위해 심장을 찔려 죽어가면서 빨간 장미를 피워낸 나이팅게일의 죽음도 무심하게, 사랑하던 여자의 실체를 알게 된 청년이 빨간 장미를 길가에 던져 마차 바퀴에 짓밟히게 만드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청년은 공부에 몰두하기로 결심하고 책을 꺼내 읽지만, 고운 나이팅게일의 마음의 결실을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지 난감해진다.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을 때 읽어서인지 더 어둡게 느껴졌던 동화, 그러나 와일드표 동화를 멋지게 보여준 책의 가치는 인정할 만하다. 훗날 다시 읽으면서 이야기 속의 가치를 더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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