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이 넘은 세월동안 열심히 일만 하던 일개미 67호는 언제부터인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만 하다 죽는 게 내 일생일까”
하루하루 쌓여가는 시간의 단층에
차곡차곡 새겨지는 내삶의 궤적들
삶의 구석에서 고단함은 깊어가고
뒤엉킨 실타래는 풀수록 더 꼬이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소망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로 마감하네
으스름 가로수길 낭랑한 풀벌레 소리
좁아진 어깨, 천만근 걸음
나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네
번민하던 일개미 67호는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던 보물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 개미가 살면서 힘들 때 읽으면 도움이 될 거라 했던 것입니다. 한참 찾던 끝에 집안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가보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책입니다. 일개미 67호는 침을 꼴깍 삼키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일까? 겨울에 베짱이가 개미를 찾아와 음식을 얻어먹으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부분부터 책이 찢겨진 채로 나머지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일개미67호는 이야기책의 사라진 뒷부분이 너무 궁금했지만 주변에 내용을 아는 개미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베짱이는 게으름을 피우다 결국 굶어 죽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그날부터 일개미67호는 베짱이의 말과 삶이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근로의욕을 잃고 개미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베짱이의 삶을 살아보기로 합니다. 주변의 동료개미들이 수군거리고 가족개미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 일개미67호는 개미일터를 벗어나 베짱이를 찾으러 떠납니다. 곧 돌아올거라 말하면서요.
청명한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
코끝을 간질이는 알싸한 공기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숨만 쉬어도 행복한 계절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먹고 사는 것은 이제 그만 걱정하자
걱정한다고 더 좋아질 이유는 없으니
이제 그만 멈추고 나가자
게으른 스위트홈일랑 이제 그만 버리고
불편한 바깥으로 뛰어 나가자
어제와 오늘이 그대로 겹치는 건 너무나 억울하니
오늘에 내일을 얹지 말고 또 다른 가슴 뛰는 날을 계획하자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며 별이 쏟아지는 저 들판으로 나가자
산이 있어 올라가고 강이 있어 건너가며 길이 있어 걸어가니
나무와 이야기 하고 들꽃과 노래하고
그네들 하나하나 물어보고 불러주자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게 삼아 풀벌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자자
발길이 머무는 곳 이 세상 모든 곳이 더 이상 낯선 땅이 아닌 것을
이제 더 이상 머무르는 인생이 아닌 것을
걱정일랑 매어두고 근심일랑 떼어 놓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