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수녀원’에 대한 방송을 봤다. 주로 고아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게 주요 업무인 수녀원이다.

사회에 버림받고 평생 그늘진 삶을 살 운명이었던 아이들은 새로운 어머니들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고루 사랑과 관심을 주기 위해 고민하고,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어머니를 찾아와 즐거운 운동회를 하며. 비록 고아였지만 그 수녀원에서 자랐기에 자신은 행운아였다고 회고하는 모습, 어머니와 똑 같은 삶을 살고자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신입 수녀들의 당찬 포부들..

이제 늙어서 더 이상 아이를 키울 힘이 없기에 물러나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한다며 웃으시는 수녀님. 사랑 만 남기고 다 가져가시라고 기도하는 수녀님.

“이렇게 사시는 것이 행복하셨느냐”는 PD의 우문에 해맑게 웃으며“내 얼굴이 지금 행복해보이지 않나요?”하는 늙은 수녀님의 현답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사랑을 펼치고 있는 참된 종교인에 대한 밝은 면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행하는 이러한 선행들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원래 착하게 살 사람이다. 다만 그들이 종교를 가졌기에 부각되는 것 뿐이다. 종교는 인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들에게 종교란 무엇이고 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천성이 착해서 선행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종교로 인해 선행을 하는 것일까? 내 의문은 풀어질 길이 없다.

 

평평한 이 세상을 중심으로 해와 달과 별들이 돌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고, 번개와 우레를 신의 노여움으로 받아들였던 고대에 탄생한 종교를 우주 끝까지 파헤치려 애쓰는 첨단 과학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별도로 하자.

 

학문적인 고상한 정의와 상관없이 나는 종교를 우리가 갖고 있다가 만에 하나 잃어버릴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잊어버릴 수도 있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진리나 규범들을 외부의 안전한 곳에 영구히 보관하는‘은행 금고’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살다가 필요하면 얼른 달려가 금고를 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면 되는 것.

아무리 사본이 여러 번 변해도 변치 않은 원본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

 

다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과학과 종교는 그 쓰임새가 다른 것이 분명하다. 종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존재 유무를 과학의 잣대로 따지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터, 살아가는데 위안이 된다면 족할 것이다. 종교의 가장 좋은 점을 소박하게 말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돌보는 수녀님들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초기 종교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명분도 종교에서 나오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을 행하도록 북돋는 힘도 역시 종교에서 나오는 걸 보면서 금고에 넣어 둔 원본과 변질 된 가짜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금고 안에 안전하게 넣어 둔 원본의 존재는 잊어버리고 금고 자체를 신성시하며 숭배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은 아득한 옛날 하늘을 쳐다보며 자연의 변화에 벌벌 떨었던 원시인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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