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의 삶. 소망하기엔 너무 터무니없는 꿈인지라 삼천갑자 동방삭 이야기 수준이지만 사실 인류의 역사는 이 목적에 다가가기 위한 수많은 노력의 과정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영생은 불가능하기에 우회적으로 시도했거나 성공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목적으로, 생명유지와 동등하거나 심지어 능가하곤 하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그렇고,
먼 훗날까지 자신의 흔적을 이름으로나마 알리고자 하는 명예욕이 그러하며,
비정상적이고 악마적인 방법으로 영생을 추구했던 흡혈귀와 같은 괴이한 상징의 창조까지 불사한 대리욕구 충족 같은 것도 그 흔적이다.
이 불가능한 주제를 놓고 이 영화는 시작된다. 14,000년 전 크로마뇽인으로 출생 후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는 한 불가사의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한 집에서 몇 사람끼리의 대화로 시작해 끝까지 대화만으로 끝나는 지극히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상당히 몰입도가 높고 흥미로웠다.
영화하고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가끔씩 내가 천년을 살면서 수만 권의 책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속독으로 하루에 수십 권의 책을 볼 수 있다거나 무슨 책이든지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사진 찍듯이 철자 하나까지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떤 경지까지 다다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식의 양으로 봐서 만물박사가 될 것이다. 비록 많은 양의 지식이 망각으로 사라지겠지만 수만 권의 책 중 일부만으로도 엄청날 것이다. 또한, 지식의 질로 봐서 성인의 반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뇌 용량의 한계로 과부하가 일어나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주위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돌아버렸다는 사람에 대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소화를 못할 만큼의 많은 생각은 뇌를 포맷시켜버릴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웃음만 짓고 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책 욕심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헛생각이다.
각설하고 스포일러라 할 만한 대단한 줄거리도 없기에 내용에 대해서 딱히 쓸 만한 이야기는 없지만 허름한 집 한 채가 전부인 세트로 몇 사람의 배우가 만사천년을 오가는 인류의 진화사를 몇 마디 말로 엮어간다는 줄거리는 참신한 아이템이다. 액션장면 하나 안 나오는 영화지만 끝나는 시간까지 몰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우주선도 외계인도 안 보이고 미래의 이야기도 아님에도 다 보고 나서 한참동안 신비스런 분위기가 여운으로 남는 저예산 SF영화. 보는 이의 기대와 상식을 무너뜨린 독특한 줄거리가 인상에 남는 영화다.
그러나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나서도 계속 살아야 하는 생은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우주를 배회하다 나이를 먹지 않은 아버지가 지구로 돌아와 늙은 딸의 임종을 지켜보는 장면은 시간의 순서와 삶의 길이가 맞지 않는 낯 선 세계를 보여 준다.
물리적인 영원의 삶보다 단 한 번뿐인 현생을 영원처럼 깊이 있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오늘의 시간을 내일 다시 살아도 전혀 후회가 없는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 물리적으로 이룰 수 없는 영생을 가장 바람직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