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있다.

피 끓는 후회와 반성의 물결이 온 나라에 넘실대는 듯 했지만 결국, 시간의 마법은 우리의 기억을 또 다시 희미하게 만들었다. 분노는 자포자기로 슬픔은 무덤덤하게 반성은 희미하고 실천은 다음으로........역사는 기어이 반복되고 말 뿐.

 

신이시여

하늘의 영광과 땅 위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전능한 신이시여

 

참사 1주년이 얼마 전에 지나간 걸 보셨나이까?

이제 우리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졌나이다

이전의 역사가 부정부패, 탐욕, 성장의 기록이라면

이후는 무슨 역사라 부르리까?

 

개발의 탐욕 찬란한 기치 아래 앞만 보고 내달린

우리는 오직 성공과 목표에 함몰된 청맹과니였음을

무릎 꿇고 고백하나이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룬 채

부지런히 씨 뿌리고 가꾼 결과의 단 과실을

이제 막 한 입 베어 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린 세상은 바라며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나이다.

 

진정 몰랐습니다.

땀 흘리며 뿌린 씨앗에서 자란 건 독 사과였고,

키운 건 끔찍한 프랑켄슈타인이었음을 작년 그날 뼈저리게 깨달았나이다.

 

어리석은 부모들은 열심히 일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이쁘게 자랐을 자식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볼 

소박한 행복을 기대하며 그토록 애썼건만

우리의 바람을 당신은 냉정하게 뿌리쳤지요.

 

당신의 평가는 소름 돋게 잔인하고 처절하도록 무섭게 공정했나이다.

그러나 당신을 원망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한 건 어리석은 저희였으니까.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나이다.

서로 탓만 했습니다.

제 눈의 대들보는 못 본 척, 남의 눈의 티끌만 열심히 찾았지요.

감히 누구 탓을 하겠나이까

 

저 어리석고 무지한 이들을 더 이상 용납지 마옵소서.

세월호를 가라앉힌 건 이기적인 몇 사람의 실수라고 얼버무리고

다시 눈감으며 제 앞길만 열심히 가려고 하나이다.

다 저만 잘했다고 큰 소리치고, 다 제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나이다.

바라옵건데 제 입으로 고백하고 무릎 꿇고 빌고서야 용서하소서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한 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죄.

오만과 독선으로 스스로 기만하고 남 탓만 한 죄.

이웃의 불행을 못 본 척 내 행복만 추구한 죄.

이기심과 아집, 편견에 눈이 멀어 지도자를 제대로 뽑지 못한 죄까지.

 

이 모든 게 당신이 주관한 일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나이다.

청산하지 못한 더러운 과거를 밑거름으로 욕망을 덕지덕지 발라

하늘 끝까지 세우려 했던 금빛 찬란한 바벨탑은,

결국 탐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나이다.

불쌍한 304명의 순결한 어린양을 제물로 가져가면서 말입니다.

 

당신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나이다.

수백 겹 쌓이고 시커멓게 눌어붙어 썩어 가던 우리의 죄를 씻을 존재는

순결하고도 순결한 저 아이들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나이다.

 

당신의 가르침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아나이다.

하지만 당신의 채찍질은 너무도 매서웠고 무서웠나이다.

그러나 감히 당신을 원망할 수 없음도 아나이다.

 

지금 당신이 가라앉힌 저 시커먼 탐욕덩어리를

다시 환한 세상으로 끌어올리려는 무리를 보소서.

당신의 뜻이 궁금하나이다.

저 시퍼런 바닷속에서 건져야 할 건 쇳덩어리가 아니고

참회와 고백으로 죄를 사한 순결한 영혼들이 아닌지요.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나이다. 당신이 한 일의 의미를.

당신의 발아래 경건한 마음으로 엎드려 다시 고백하나이다.

이마가 피에 물들도록 찧고 또 찧으며 사죄하나이다.

 

부디 도와주고 또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나이다.

불쌍하고 어리석은 이 땅의 백성들이 이제라도 깨닫게 되기를 도와주소서.

다시는 순결한 영혼들이 죄를 대신 쓰고 희생되지 않기를 도와주소서.

당신이 거둬간 304명의 영혼들이 환하게 웃으며 당신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음을 위안받고 싶나이다. 그들의 맑고 깨끗한 웃음소리가 듣고 싶나이다.

 

부디 말씀해 주소서

그들의 희생으로 이 세상이 다시 한 번 구원의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부디 가르쳐 주소서

그들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당신의 무서운 심판이 

내려지지 않을 방법을.

 

이제 새로운 역사를 세우도록 도와주소서.

 

자본의 논리에 앞서 인간의 권리가 우선하는 세상.

그리하여 돈 때문에 스스로 기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아이들이 어른 말을 믿어도 배신당하지 않는 세상.

그리하여 어른이 된 아이가 또 믿음을 전할 수 있는 세상.

권력과 돈에 취해 제 백성을 무시하는 이들을 과감하게 내칠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민심이 무서움을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의 역사가 되도록.

 

남의 자식 귀한 줄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는 세상.

그리하여 너와 내가 함께 행복을 누리는 세상.

내 배가 부르기 전 다른 이의 배고픔을 생각하는 세상.

그리하여 내 밥그릇에 다른 이의 숟가락을 얹을 수 있는 

세상의 역사가 되도록 도와주고 또 도와주소서.

 

이런 세상을 다시 세우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맹세하나이다.

맹세를 어긴다면 당신의 이름으로 불지옥의 벌을 달게 받겠나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당신이 벌을 내리기 전

이미 우리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님을 아나이다.

당신의 벌은 이미 집행되고 있음을 아나이다.

 

거룩하고 전능하신 신이시여!

부디 이 불쌍한 나라의 어리석은 인간들을 어여삐 여기고 도와주소서.

부디 당신이 거두어간 어린 영혼들을 보살펴 주소서.

 

그들의 부모가 훗날 죄 많은 인생을 거두고 갈 적에

당신과 한 이 모든 약속을 지킨 뒤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아이를 만나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잊지 말고 또 잊지 말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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