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전사의 탄생 -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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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S란 단체에 대한 국제뉴스가 자주 나온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이 단체는 우리나라 한 청년이 제 발로 찾아 들어간 뒤로 유명해졌다. 또 참수와 화형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테러로 미국을 자극하여 전쟁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중동은 먼 지역이다. 70년대 중동개발 붐으로 우리나라 근로자의 외화벌이로 잠시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던 때를 제외하곤 그저 TV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상관없는 곳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탈레반, 알카에다 같은 단체들이며, 이스라엘 대 중동전쟁, 팔레스타인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 같은 크고 작은 전쟁, 911테러로 대표되는 자살테러,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인물들의 연원이 모두 중동이라는 지역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처럼 뉴스거리로만 지나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우리가 알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무관심속의 먼 세계,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참극들이 그들만의 문제일까? 그동안 우리가 화면으로 바라본 중동은 실재 그대로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은 걸프전 당시 스포츠게임처럼 중계됐던 미국 CNN의 칙칙한 화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AK-47 소총을 치켜든 사람들, 요새 가끔씩 인터넷에 떠도는 끔찍한 인질참수 동영상들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미국의 시각이지 우리의 시각이 아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그네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진실은 바뀔 수 있다.

 

이슬람권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배경에는 대부분 사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척박한 땅과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인구 성장이 있다. 석유는 강대국의 착취를 끌어들였을 뿐, 그 열매는 일반 국민들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자원과 인구의 불균형은 분쟁의 에너지가 되어 청년들로 하여금 총을 들게 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건설적으로 해소할 곳이 막힌 그들의 젊은 에너지는 전쟁만이 유일한 분출구가 되었다.

 

또한, 근대화를 이끄는 세속주의 군사정권과 이슬람 교리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종교권력 간 갈등, 수니파와 시아파 같은 종교 및 부족 간 뿌리 깊은 지역 갈등, 석유이권과 맞물린 미소 냉전이념 갈등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쌓여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하고도 근원적인 문제는 당연히 전 세계 패권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이다. 각종 비밀공작으로 정권의 전복마저 서슴지 않는 CIA같은 정보기관들의 악행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첫 번째 걸림돌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거의 무제한으로 지원을 했다.

무기는 기본이고 군사 및 테러훈련까지 지원해 소련과 싸우도록 했다. 당시 소련 헬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지급했던 수천 개의 대공 스팅어 미사일을 지금도 회수하지 못했고 그 때 살인기계로 키워졌던 무자헤딘(지하디스트, 의용군)들은 전수받은 제조법으로 만든 폭탄을 나중에 미국에 되돌려 준다.

 

미국 뿐만 아니다. 중동의 분쟁을 부추기는 주변 국가들도 문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개입하여 온갖 공작을 펼치는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같은 이슬람권임에도 안정된 국력을 바탕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종범(從犯)이다.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했고, 파키스탄은 공작 및 군사기지 제공, 군사훈련 등을 지원했다. 어쩌면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들의 등장은 이 모든 것들의 필연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극단적인 이슬람원리주의라는 종교적 배경, 무력투쟁의 반복으로 길러진 호전성 , 오일달러로 인한 경제적 지원과 정규훈련을 통한 군사적 지원으로 다져진 전투력, 미국의 대규모 공습에도 견딜 수 있으며, 능숙한 게릴라전으로 다수의 정규군과 대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산악지대의 지형적 조건 등은 소수의 힘으로 다수의 적을 장기간 상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 중동사태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 미국도 중동도 쉽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소련이 아프가티스탄 전쟁을 무려 7년이 넘도록 진행하다 결국, 소련붕괴의 단초가 된 것도 그렇고 미국 역시 중동에 발이 묶여 최근 이라크사태에서처럼 지난하고도 지루한 소모전을 겪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이처럼 해결을 어렵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중동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당연히 강대국들의 중동개입 포기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사회주의 불럭과 경계를 나누고 있는 지정학적 조건과 석유 이권이 존재하는 한 쉽지는 않을 것이다. , 강대국이 물러간다 해도 그들이 과거에 뿌려 놓은 갈등으로 인한 아랍권 국가 간 분쟁, 부족 간 반목, 종교적 파벌투쟁으로 파인 골이 어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겠는가?

 

장기간 외세 침략과 내전의 결과이겠지만, 아랍인들의 종교적 호전성도 문제다. ‘지하드로 일컬어지는 성전(聖戰)을 무슬림의 교리로 확립하고, 이를 어기면 동족까지도 무참하게 학살했다. 자살테러를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의식은 자위권의 발로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양날의 칼이 되고 있으며 특히, 참수(斬首)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죽음이 무서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스펜서의 말이 무색하게도 이 종교는 수많은 무슬림들을 죽음의 성지로 보내는 데 이용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하나가 있다. 서로 물로 물리는 싸움 속에 결국, 죽어나간 건 이름 없는 백성들이란 것이다. 그들은 왜 죽는 지도 모르고 역사 속에 사라져 갔다. 라덴이 외쳤던 교리와 신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세상에 태어난 걸 알라신에게 따져야 될까?

 

빛나는 인류의 문명을 아득한 원시시대로 회귀시켜버리고 있는 중동의 역사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한 편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이 잔인한 전쟁을 끝내지 않고 인류의 평화, 지구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

 

걸프전 당시 첨단기술로 무장한 미국 폭격기는 오차범위 제로에 도전하는 정밀타격기술을 자랑하며 수 만발의 포탄을 이라크에 퍼부었고, CNN의 더럽고 추악한 화면은 죽은 자식을 부등켜안고 절규하는 부모와, 죽어가는 부모 곁에서 울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깨끗이 제거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떤 도덕이나 양심의 부담을 갖지 않고 위대한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될 장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친절한 배려를 해주었다.

그 당시 난 그 CNN앞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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