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의 차순봉은 죽음을 맞는 인간의 한 면을 보여주었다. 불치병에 걸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는 고통은 아무하고도 그 무게를 나눌 수 없는 것이리라. 그걸 이해하면서도 어차피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죽게 되는데 다만 그 시점을 좀 더 당겨서 명확하게 되었다는 현실이 그렇게 힘들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내일 사고로 먼저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내가 죽는 시점을 모른채 죽는 것과 알고 죽는 것의 차이가 한 사람의 행과 불행을 이토록 좌우하도록 놔두는 것이 옳을까?

 

차순봉은 보통 우리가 갖는 죽음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을 깨뜨리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죽음을 무조건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삶이 조금 줄어든 것, 죽음의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죽음에 대해 보통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태도를 그는 보여 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슬픔으로 허비하지 않고, 죽는 그 시간까지 늘 그러하듯이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가족과의 일상을 보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고자 했다. 언뜻 비범해 보이면서도 잘만하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삶에 맞춰져 있다. 내일 뭐할까? 내일 무엇을 먹을까? 모레는 또 어떠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릴까? 내년에는 무엇을 하고 10년 뒤에는 또 무엇 무엇을 하고....그 어디에도 내 삶의 끝은 없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끝없는 삶만 생각하지 결코 죽음의 그림자는 밟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엄연한 운명이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다. 내 삶이 굴러가는 그 어느 순간에도 죽음은 항상 같이 다닌다. 죽음은 무섭다고 회피할 대상도, 저주스런 운명도, 비극적인 종착역도 아닌 삶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죽음을 준비하자.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행복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다. 죽음은 삶을 보다 경건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죽음은 인간의 욕심을 자제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천국에 가고자 애를 쓰는 것은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의 행복을 죽은 이후까지 연장시키고자 하는 욕심일 뿐이다.

 

죽음 이후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나는 족하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며 주위사람들을 지옥에 끌어 들이지 않고, 그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삶의 미련을 한 가닥 먼지인양 훌훌 털며 깃털처럼 가볍게 일어나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순봉 아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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