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18C까지 가족과 성(性)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생식의 관계에 머물렀고, 성적인 욕망은 가정이 아닌 사회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풍속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살롱문화’는 가난한 젊은이가 출세하기 위해 권력자의 후원을 얻기 위한 발판이었을 뿐만 아니라 상류층 부인과의 사랑의 장소를 제공했으며 각종 담론의 토론장이 되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공창(公娼)의 존재는 상류층의 전유물인 살롱 같은 고상한 배출구를 확보하지 못한 보통사람들에게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불가피한 성욕의 탈출구였을 것이며 당시 우리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왜 매독 같은 성병에 시달렸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도 겸할 것이다.
자식은 따로 유모가 키웠으며 부모의 양육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성을 가정이라는 테두리 밖에서 향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젊은 기사가 모시던 상관의 부인에 대한 연모를 테마로 하는 ‘궁정문학’의 유행 또한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이다.
(조선시대 우리사회에서도 내용은 같거나 유사하다. 사극을 보면 진실은 아닐지라도 대감나리가 정실부인과 돈독한 애정을 과시하는 장면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서로 대감, 부인하면서 예의를 깍듯이 갖추다가 친구들과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속된 말로 ‘기생파티’를 하거나 투기를 ‘칠거지악’으로 규정하며 첩을 들이는 것이 허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가족과 성의 불일치는 전근대화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던 성이 19C에 들어서면서 가족과 결합되어 생각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를 신성하게 생각하였으며 공개된 욕망으로서의 성욕은 부부간의 ‘은밀한 침실’로 스며들었다. 부인은 정숙함을 미덕으로 삼게 되었으며 외간남자와의 사랑은 불륜으로 법적,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된다.
이처럼 근대 산업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다. 공장노동자가 필요해진 신흥 부르조아 계급과 결탁한 국가는 안정적인 인력수급을 위해 봉건사회의 장원제 몰락으로 경작지를 잃어버린 농민들을 도시로 유혹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열악한 작업환경에도 버틸 수 있는 정신적 기제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온몸이 바스러지도록 희생할 수 있는 가장의 투철한 가족애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기원이 의외로 최근임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되는데 오늘날 마치 인간의 본성처럼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것도 결국 사회적 산물이며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하나임을 알게 되는 건 허무한 일이다. 엄격하지만 따뜻함을 가슴에 숨긴 부정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희생하는 모정, 형제간의 경쟁어린 사랑을 구성으로 하는 ‘스위트홈’의 환상은 실재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 아닌 인위적 결과물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