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수도 학자도 서평전문가도 아니고 하다못해 대학에서 교양으로도 철학을 접해 보지 못한 진정한 초짜였다. 단지, 책이 좋아 읽다 보니 평범한 책 한권으로도 얻지 못한 것을 철학 책 단 한 줄로 깨닫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세계의 구성 원리와 흐름의 사유을 쫒다 보면 가장 지름길이 철학이었다. 수많은 책들의 밑바탕엔 결국 철학자들의 논리가 그 근거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 역시 그 ‘사유의 틀’을 소지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렸고 한 줄의 글에서 순간적으로 영감을 얻으며 내 생각의 지평이 한 걸음씩 확장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땐 그야말로 환희의 순간이었다.
‘마슬로우’의 인간5단계의 욕구 중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하는 순간인 것이다. 지적 욕구는 결코 허영이 아닌 것이다. 먹는 것도 중요하고 생명유지도 중요하고 사회적 지위도 중요하지만 배고파도 읽고,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인 것이다.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여유를 만끽하는 독서야말로 지적 허영이며 내가 읽고 있는 이 욕망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체욕구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철학은 낚시다. 어차피 바다 속 모든 물고기를 다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어종만 족집게처럼 낚을 수도 없다. 운에 맡기고 낚시대를 드리우며 괜찮은 놈이 걸리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논문을 쓸 필요도, 책을 낼 필요도,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할 가능성도 없는 내가 철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아주 편하고 지극히 단순하다. 인내를 가지고 읽다 보면 언젠가는 필이 확 꽂히는 부분이 다가온다. 하나의 실마리로 길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나름대로 짚이는 것이 생기곤 한다. 모든 철학을 다 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전전긍긍할 필요도 의심할 이유도 없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니 철학자가 자기가 쓴 내용을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고 곡해했다고, 무식하다고 뭐라 하진 않을 것이니까.(그렇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들뢰즈’ 말대로 내가 섭취할 수 있는 한 조각의 사고라도 절단하고 채취해서 또 다른 사유와 접속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내가 들뢰즈가 아니듯이 들뢰즈의 철학 또한 내 철학이 아니다. 나만의 '개똥철학'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결국, 우리같이 보통사람이 철학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서 내 맘대로 사는 사람에게 타인의 시선이란 의미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