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 갑자기 도서관엘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도 볼까하는 마음에 주섬주섬 몇 권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도서관은 그대로 있었고 외관도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과거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옥죄는 가슴을 부여잡고 침침한 형광등아래에서 영어책을 뒤적이던 나의 초라한 자화상이 배어있던 열람실을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차디찬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자판기 커피한잔을 빼들고 잔디밭 벤치에 홀로 앉아 쓰디 쓴 담배 한 모금을 품어 댔던 그 암담하고 어두웠던 하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앞은 보이지 않고, 다른 이들은 다들 제 갈 길을 잘 찾아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홀로 도서관에 남아 방황하는 모습이 스스로에게 너무 안타까웠던 시절이었다.

 

공부하면서 휴식시간에 잠시 들렀던 열람실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내 눈을 끌곤 했다. 책을 좋아했던 나였지만 취직공부와 관련이 없는 책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래. 취직하면 이 많은 책을 원 없이 읽어봐야지

겨우 취직하고 잠시 남는 틈을 타 한동안 도서관엘 다시 나갔다. 취직공부하면서 늘 되새겼던 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책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물론,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그 후 도서관은 내 인생에서 멀어져갔고, 지나치면서 내 눈에 들어온 도서관 건물은 무심한 도시의 배경에 불과했다.

 

다시 들러본 도서관은 그 옛날 내가 다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처절한(?) 넋두리로 도배를 했던 낡은 책상과 의자들은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되었고, 차디찬 도시락을 까먹던 식당은 원두커피와 인스턴트식품들로 가득 찬 깔끔한 편의점이 되었으며, 컴퓨터와 각종 디지털시청각자료들로 바뀐 열람실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사진들처럼 근대에서 현대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당시 고시 준비한다고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나이 지긋한 형님들은 사라졌고 젊은 친구들이 이어폰 끼고 앉아 있었다. 화장실 앞에서 혼자 중얼중얼 하던 머리가 약간 이상한 친구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 그 때가 언제라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헛웃음이 나왔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도 아닌데 나만 빼고 모든 것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자신이 우습다.

 

잠시 자리에 앉았다. 건너편 머리 희끗한 어르신이 이름도 거창한 거시경제학 책을 보무도 당당하게 열공하고 계신다. 무엇을 준비하기에 다 늙어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걸까? 옆에 앉아 있는 아저씨는 사주명리학을 열공하고 계신다. 무슨 운명이 그리 궁금하실까?

 

세상은 변했고 도서관도 변했지만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습은 그대로인 것 같다. 다들 인상 찌푸리며 두 눈에 쌍불을 켜고 뚫어져라 책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말이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담보. 현재를 희생하면 빛나는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도서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헛헛한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다 가방에 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 보았다. 그러나 책을 보는 게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소파에 누워서 편하게 보던 습관이 몸에 밴지라 딱딱한 의자에서 조용히 보는 게 영 어색하다.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자리를 떴다.

 

대출실에 들러 서가를 둘러본다. 책은 여전히 많이 꽂혀 있지만 그 때처럼 불타는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월만큼 빛바랜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건만 내 마음은 그때 그 마음이 아닌 것 같다.

 

할 일없는 이방인처럼 도서관을 배회하다 결국, 도서관을 나섰다. 도서관은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났다. 지금 내가 있을 곳은 과거의 도서관이 아닌 그 때 꿈꿨던 미래의 희망 한 가운데가 아닌가? 비록 그 때 꿈꿨던 대로 현재의 나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도서관에 앉아 있었던 나를 잊지는 말아야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지 그 곳이 내 도서관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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