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제자백가 아카이브 1
임건순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13인의 사상을 요약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비판을 고명으로 얹은 썩 괜찮은 책이다.

춘추시대 사상이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고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이 아닌 현실 정치학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그들의 사상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향한 각자의 다양한 방법론에 다름 아닐 것이다.  

비록 2,000년 전 고대의 이야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것은 똑같기에-지배층은 여전히 하층민의 희생을 담보로 권력을 유지한다-  더욱 오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나 또한 동의한다.

서양의 사상이 그리스시대에 이미 완성됐다면 동양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에 나올 것은 다 나온 듯하니....그 사이에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지.....역사의 발전이 반드시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을 타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새삼 놀라울 뿐이다. 

 

첫번째, 제나라의 재상이자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인민을 배부르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인민과 귀족의 생활터전과 생계를 철저히 구분하고  생업에 전념토록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주변국가의 백성들이 몰려들도록 하였다.

인민의 숫자가 국가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오고 나아가 부강한 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인의 매점매석을 막기 위해 농산물을 국가가 개입하여 쌀때 사고 비쌀때 팔아 인민의 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적당한 이익을 챙기기도 했고 소금과 철을 국가가 독점하여 나라의 자원을 관리했다.

심지어 나라에서 기생집까지 차려 수입을 챙길정도의 극단적인 실용을 추구했다.

결국, 지금의 자본주의를 방불케하는 그의 실용주의 경제학은 그의 사후 제환공이 피살당하고 천민자본주의로 흐르면서 그 폐해로 국운이 기울면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관중이 시대를 앞서간 정치가이자 경제가였으나 그의 사상에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제어할 도덕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바탕이 아닌 군주만을 위한 정책이 목표였기에 그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봐도 손색없는 그의 정책들은 2,000여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한다. 

 

두번째, 유가사상의 원류, 안자

공자와 맹자 이전 유가의 기본개념을 구축한 최초의 인본주의자 안자.  전에 별로 들어 보지 못했으나 생각외로 그의 발자취가 크다.

사직(社稷)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군주와 국가를 엄격하게 분리하고 군주 독단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자 했다.

즉, 군주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며 단지 사직이라는 국가의 관리자일 뿐이며 군자(신하,관료,지식인)는 군주가 국가를 잘 관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 군자, 백성 모두 맡은 바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사직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군주가 정치를 잘 못해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내칠수 있도록 하는 맹자의 역성혁명론의 단초를 제공한다.

평생 청렴과 백성사랑을 온 몸으로 구현한 안자는 나라의 큰 어른으로서 제자백가 사상가들 중 가장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극단적 실용주의를 추구했던 관자에겐 부족했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을 사상의 기본으로 추구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세번째, 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

손자하면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손자는 결코 승리를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승을 논하기 앞서 절대 패하지 않는 법을 논했고, 그보다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不殆) 법을 고민했다.

전쟁에 패하는 것은 모든 것의 파멸을 의미했고, 승리하더라도 나라의 재정이 파탄에 이르면 같은 결과를 야기한다.

위정자는 모든 정치적, 외교적 방법을 다 동원한 후 해결책이 없을 경우 불가피하게 군사를 일으켜야 하며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준비를 철저히 하여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번째, 하층민의 대변자, 묵자

묵자는 중국사상사의 위치와 상관없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에 속하는 편이지만  묵자 하면 대표되는'겸애'는 도덕교과서에 자주 등장했다. 

누구보다 하층민을 아끼고 대변하고자 했던 묵자는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독자적으로 이론을 구축했던 것과 달리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민주적인 토론을 통한 사상의 정립을 추구했다.

 

- 시간상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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