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영화 자체의 흥미도 있지만 배우 최민식의 할리우드 입성작이며 이것에 대한 내용이 사전에 많이 부각된 것이 크다 하겠다.

 

영화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했으며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짧아 이제 막 절정으로 치닫는가 했는데 끝이 나 약간 아쉽기도 했다.

 

영화는 여러 번 나의 기대를 매정하게 배신했다.

초반  좀더 분위기 있는 최민식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저질이어서 실망.

최민식을 제치고 뇌사용량이 100%가  되는 루시가 보여주는 사상최고의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는데  화려한 그래픽으로 다큐멘터리 한 번 보여주고 결국 컴퓨터와 연결이라니....또 실망

액션과 철학사이에서 방황하다 급하게 끝난 애매한 영화.

차라리 화끈한 액션영화로 나가는 게 더 나을 뻔한 영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포착한 여러가지 생각의 파편들을 정리해보면 나름 건질만한 것도 꽤 있었다.

  

먼저 언어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감독이나 그네들의 시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민식 뿐만 아니라 그 주변 똘마니들이 모두 한국인이다. 영화 내내 그들이 사용하는 우리말이 -물론, 한국어를 모르는 그네들에겐 낯선 소리로만 들렸을 거고 이것 또한 감독의 의도라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감독이 의도한 이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 - 어설프고 어색하게 들렸다. 미국영화와 영어는 한국영화의 한국어와 같지만 미국영화의 한국어는 그렇지 않다. 초반 루시가 한국어를 모를 때 최민식과 그의 무리들이 떠들어 댔던 말들이 우리에겐 의미가 통하는 기호였지만 루시에겐 의미가 배제된 공포와 두려움을 배가시키는 하나의 특수분장같은 것이었으리라.

 

둘째, 배역에 관한 이야기

뤽베송 감독이라면 최민식을 단순히 연기 잘하는 동양배우쯤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민식이 상징하는 한국인(동양인)과 한국(동양)은 그가 극복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와 기계문명 초기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2개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공황과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여러 가지 시도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서유럽의 복지정책 등 그들이 200년을 소비하고서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 아닌가?

(자본)을 위해서라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은 최민식은 악의 상징이자, 돈의 상징, 자본의 상징이다. 감독은 서양의 자본주의를 전수받아 오히려 더욱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어 인류의 행복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한국, 중국 등이 걱정스러운 눈치다.

 

셋째, 철학적(?) 이야기

루시의 뇌사용량이 100%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기원, 생명체의 기원, 우주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의 파노라마는 존재론을 연상시킨다.

루시의 뇌사용량이 100%에 도달한 순간 루시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존재가 된다.

트랜센던스, 트론 등 과거 SF영화에서 가끔 보여지는 결말....인간이 컴퓨터가 되는 순간이다.

루시는 컴퓨터가 되 자신이 터득한 지식을 인간(모건 프리먼)에게 건네준다. 인류가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쌓아 올린 문명이 파멸로 치닫고 있기에 루시가 준 새로운 지식으로 새로운 문명을 세우라는 뜻이겠다.

하지만 인간이 현재의 문명을 위태롭게 한 지식과 -정확히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지식이겠다, 농경이나 목축사회에서의 인간의 지식이란 자연을 지배할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니-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할 지식이 현대지식정보화를 상징하는 USB에 담겨진다는 것은 왠지 어색하고 서운하다. 새로운 문명은 기계에 담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닌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관과 같은 것이어야 더 그럴듯 하지 않은가?(신과 같은 존재가 남겨준 지식이니 나 같은 3%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넷째 루시에 대한 유감

컴퓨터를 통과하여 신(인간에게 있어서)이 되버린 루시!

뇌사용량이 올라갈수록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루시는 감정이 점점 사라진다. 뇌사용량이 올라간다는 것은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가는 건데 감정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거꾸로 비인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단순한 지식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뇌사용을 올리기 위해 수술대위의 환자가 곧 죽을거라며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총으로 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새로운 지식을 인간에게 건네고자 하는 목적이 신의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녀는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가? 모순이다.

 

다섯째 뇌에 대한 의문

영화는 인간의 뇌가 충분히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왜 신은 인간에게 사용하지도 않을 90%뇌를 주었을까?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부분을 극대화시키며 진화해왔는데 왜 90%의 낭비를 남겨놨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분명 필요하기에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 무의식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는 우리 의식을 빙산의 일각으로 보았다. 물속에 잠겨 있는 보이지 않은 거대한 빙산의 나머지가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재 우리의 뇌는 풀 가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의식하고 있지 못할 뿐.

 

마지막 영화와 상관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뇌의 전기신호에 의한 작용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속에 나오는 처럼 뇌가 우리 몸에서 분리되어 그릇에 담겨 있어도 생명유지장치 와 전기신호가 주어지면 실제 벌어지는 일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영화속에 모든 일들이 단지 루시의 뇌의 전기작용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한 인간의 무의식을 단체로 들여다 보며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봤는지도 모르겠다.(너무 동떨어졌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건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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