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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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방 첫번째 리뷰

http://blog.naver.com/cheshireee/90144999453

 

 

처음과 달리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그들을 어떻게 살게 하였나.

 

누차 생각해왔듯 내가 부모에게서 얻은 것 중

가장 큰 백분율을 차지하는 것들이 체념과 포기, 원망,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는 성향- 등이라면

과연 난 그들을 어떻게 살게 하였나.

 

굳이 '외딴 방' 때문이 아니라도 문득문득 출퇴근 버스 안에서 들곤 하는 생각이다.

 

일과 집, 그저 일과 집으로 점철된 생활을

고의는 아니었다 해도 여지껏 그들에게 강요해왔구나

내 꿈을 쫓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의 꿈(어쩌면 집이었을, 또 어쩌면 자녀의 결혼이었을)을

망가뜨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한번쯤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풀어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겨우 외면이 가능하게 된 지금 보다 더 무덤덤해져

상황에 관여하면서도 그것이 날 해치지 않게끔 내가 강해졌을 때

아니면 아직도 문득문득 옛 감정들이 치밀어 올라 눈물이 날 때 그것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지나간 날들을 되짚어 가며

하나의 거름이나 외면도 없이 써내려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나도.

한 번쯤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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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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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 혹은 사랑스럽다는 감상이 10~20 % 쯤.

 

비일상적이고 어두워 묵직하기 짝이 없는 주제가 아니라 좋다는 생각만큼이나

 

어째선지 익숙치 않은 감정

혹은 잊은 지 오래 된 감정들을 리플레이 시켜야 할 때 느껴지는 미미한 두통이

읽는 내내 자리하고 있었다.

 

'그저 끌리면 산다' 는 스스로의 철학을 고수하다

두 자리 수에 달할 만큼의 책을 실패(?) 하고 난 뒤

 

책에 대한 나의 구매 성향은 점차 명사, MD의 평가는 물론. 독자리뷰도 챙겨볼 뿐 아니라

그 독자가 구매한 다른 도서까지 알아보는 데 이르렀다.

물론 귀찮은 걸 심히 싫어하는 또다른 성향 탓에

몇몇 사람의 리뷰와 몇몇 개의 구매도서를 확인할 뿐이지만.

 

근래 산 책 중 가장 결론이 나지 않는 책이 '소년을 위로해줘' 였다.

 

무겁고, 심각하지 않아서 좋다는 의견이 많은 것 만큼이나

더없이 가볍기만 해서 싫다는 의견 또한 많았다.

 

나의 취향은 굳이 표현하자면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고 생각한다.

 

십수년이 지나도 서로를 잊지 못 하는 애달픈 사랑이야기는 읽을 수 있으나

서로를 끔찍히 사랑하다 못 해 그것이 변질되어 주변의 모든 환경을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광적인 사랑 이야기는 읽을 수 없다. 아니 읽을 수는 있지만 힘들다.

 

스펙터클한 것보다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일상적이고 현실적일 것에 얽매이다

심각한 문제들이 너무 심각하지 않게 그려져 버린 것들은 싫어한다.

 

최대한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을 것.

아마도 일상과 현실 에 대한 나 나름의 표현원칙을 들어보자면 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슬픔 또한 자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슬픔이 느껴지는 것을 애써 자제하여 표현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의미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을 위로해줘' 는 꽤 훌륭한 소년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장물' 이 아니라 '소년의 이야기' 라는 것이다.

수많은 아픔과 고난을 겪고 이 소년은 마침내 이런 어른이 되었습니다- 가 아닌

이런 소년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었고, 이렇게 살아왔으며, 지금은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에 가까운 이야기.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가벼워서 좋다' 와 '가벼워서 싫다' 는 감상이 공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작가 은희경씨가 어떤 느낌과 어떤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 '소년을 위로해줘' 는 '위로가 필요했던 어떤 한 소년의 이야기' 일 뿐이다.

 

한 명의 소년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에 

그 한 명의 소년의 것이 아닌

청소년'들' 과 그 세대의 이야기와 그에 따른 통찰력은 불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어설프게나마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여 본다.

 

 

이쯤 되어 간략하게 평을 요약하여 보자면

 

1. '특수 케이스에 놓인 청소년을 그린 성장물' 이 아닌

   '그저 그런 한 명의 소년이 통과한 어떤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2. 가벼움과 무거움이 적절히 공존하고 있는 만큼

   어렵지 않게 진행되는 내용 전개와 꽤 어렵게 접근해야 하는 감성이 공존하고 있다.

 

3. 청소년에 대한 관찰과 그들의 내면을 알고 싶은 분들은

   소설이 아닌 다른 분야의 서적을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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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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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많은 아저씨(비하의 표현이 아닌 친근함의 표현이다)가 들려주는 천일야화' 란 느낌.

 

허나 술술 넘어갔던 1부에 비해 2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점 그 속도가 한 풀 꺾이는 것이

 

1부에서 보았던 서두들이 다시 반복되는 것

+ 내가 알지 못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제한적 시간

 

뭐 이런 저런 요소들이 합쳐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일야화' '재미있는 이야기' 였던 것들이

 

나중에는 '이렇게 사물 하나하나에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면 피곤하지 않을까' 로 변모되기

시작하였고 학문이 먼저였던 사람과 창작이 먼저였던 사람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연유를 묻는다면 어줍잖게 한 때 창작을 했던 사람인 탓이라 하겠다)

 

어느 쪽이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정을 깃들이고 사고를 연장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지나치게 민감한 촉수는 도리어 창작에 방해가 되는 때도 적잖이 있다.

 

이를테면 버스기사의 피곤에 찌든 얼굴을 그리고자 할 때

 

버스에 올라 탄 어르신들에게 빨리 앉으라며 소리를 치는 모습이라던가

 

집으로 돌아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마누라에게 손찌검을 할 지도 모르는

그런 모습은 배제해야 할 것이다.

 

학문적인 사고의 접근이 하나하나 까발리며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라면

 

창작을 기반에 둔 사고의 접근은 알기는 알되

의도에 맞지 않는 것은 배제해야 하는 것 이라 생각한다.

(배제해서는 안 될 이야기라 생각한다면

차후 그 이야기를 중심에 올린 것을 다시 만들어내야 함이 옳다)

 

이야기하다 보니 또다시 전혀 책과 상관없는 내용으로 흘러간 듯 한데

 

결론을 내보자면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할 법한 이야기" 이긴 하지만

그것이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 가 되지는 않는다.

 

듣다보면 졸음이 올 때도 있고 의자에 앉아있느라 곧게 세운 등이 쑤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을 어떻게 하자' 는 것이 아닌 그저 '그랬었다' 는 식의 이야기이므로

 

산문 혹은 수필..(논평인가??) 아무튼 허구가 아닌 이야기에

 

깨달음과 앞으로의 지침을 요구하는 이들이라면 적잖이 실망을 느낄 수도 있을 듯 하다.

 

아님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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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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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상실의 시대' 로 하루키 열풍이 불었을 때

 

차라리 난 무라카미 류 편을 들었던 한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상실의 시대' 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왜 그의 글이 그토록 와닿지 않았는가 물어보면 대답은 하나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물론 소설이 무엇을 어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따져보면 난해한 소설도 꽤 많고

어떤 경우 명분과 이유를 만든 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경우도 많으니까.

(이를테면 연쇄살인범을 등장시켜 놓고 그가 살인범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애정결핍 따위를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등-)

 

그러나 하루키의 글을 볼 때 느껴지는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가' 라는 느낌은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드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상황으로 빗대어 표현해보자면

 

'실연을 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자가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빗고

세수조차 하지 않은 채 도넛가게에 가서 한참동안이나 남자 점원을 바라보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도넛을 사서 돌아와 먹지 않았다' 는 느낌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왜 갑자기 일어나 도넛가게에 나갔는지

 

남자 점원을 왜 그토록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는지

 

달콤함으로나마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는 다른 도넛이 아닌

왜 하필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도넛인지

 

그리고 왜 기껏 사와서 먹지 않았는지

 

'실연을 당해 마음이 아프다' 는 것까지는 설명해주지만

 

그 실연으로 인해 생겨나는 듯해 보이는

상황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해 주지 않는 듯 해서

 

하루키의 글을 볼 때면 늘 흐릿하고 개운하지 못 하다.

 

아마도 거기에는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들도 알고 있으리라' 는 생각

(또는 착각이나 오해)이 깔려 있지 않을까

 

하고 짐작해보는 바이지만 그저 그 사람의 성향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성향과 난 여전히 접점이 없는 상태라고-

 

 

p.s. 이번 책의 경우 대관절 유즈의 거짓말과 그 악령은 무슨 사건으로 인해 생겼는지가 의문이다.

      '실제 사건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것은 저만치 떨어뜨려두고 사건에 대해 토론을 하는 듯한 분

       위기' 도 어찌 보면 하루키스럽다 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지점이다. 취향이 대중적인 건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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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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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이 책에 대한 첫 인상부터.

   산문집 '보통의 존재' 가 소설로 탈바꿈되었구나.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책은 읽지 못 하면서 서점은 무척 좋아하는. 

   실연으로 인한 애도기간이 지나치게 긴.

   그래서 철저히 혼자이기를 고집하게 된 지금까지. 

   성북동을 좋아하고 빵을 좋아하는. 

   산문집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된(혹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

   이석원이라는 사람의 특징이

   등장인물인 '용우' 와 '용휘' 의 것으로 탈바꿈되어 곳곳에 뿌려져 있다.

   결과부터 말해보자면-

   덕분에 소설로도, 산문으로도 몰입하기 어려웠다. '실내인간' 이라는 글이.

 

 

2. 두 번째 인상.

   난 '실내인간' 이라는 것이 용휘가 아닌 용우를 가리키는 줄만 알았다.

   몇 차례 읽은 뒤인 지금까지도 왜 '실내인간' 이 용휘가 되어야만 하는지 하는 의문이 남아있다.

   책은 안 읽으면서 서점은 죽어라 가는.

   그러면서 서점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괴로워하는. 용휘의 것으로 설정된 그 특징까지는

   어찌저찌 납득할 수 있으나 '실외' 를 싫어하고 '바람' 을 저주하는

   그 밖의 특징은 도무지 설명 불가능이다.

   왜 용휘는 그렇게 되었나?

   자신의 능력이나 명예가 영향을 끼치지 못 하는 곳을 싫어한다-

   마치 부연설명이라도 하듯 붙여진 제롬의 해설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왜 이 인물은 이렇게 설정되었나? 그는 왜 그렇게 되었나?

   이리저리 의문만 던져주고 결국 해결을 봐주지 않는 것에

   얼핏 어딘가에서 읽었던 '하루키스럽다' 는 평이 떠올랐다.

   누군가 '실내인간' 을 가리켜 하루키스럽다 는 말을 했고

   난 그것을 '명료하지 않음' 으로 이해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석원씨의 글은 명로하지 않음 외에는

   내가 좋아할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

   하루키 씨와 달리-

 

 

3. 세 번째 인상.

   사실 아직까지도 '소설' 을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소설' 을 가장한 자기고백이라던가

   혹은 자기 얘기를 소설로 풀어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과연 이 다음에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전작과 똑같이는 낼 수 없는 다음 작품을 쓸 때.

   그래서 실연이나 애도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인물을 이야기해야만 할 때

   그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며

   그 때 그의 문장과 그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그래. 이 쯤에서 재수없다 싶을 만치 직설적인 평을 해보자면

 

   "운 좋게 소설로 풀어낼 수 있는 요소들을 갖게 된(심지어 기회까지 갖게 된)

   사람의 자전적인 이야기" 처럼만 느껴진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뮤지션 이석원이 아닌 작가 이석원에 대한 개인감상은 좀 더 뒤로 미뤄야 할 듯 싶다.

 

   산문의 연장선이 아닌 소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부터 쌓아올린 글을 읽어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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