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인스타그램보다 북플에 더 많이 들어온다

-> 많이 들어온 만큼 많은 책을 보게 된다.

-> 스스로 구할 때보다 사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 못 읽은 책이 쌓여있음에도 자꾸만 또 산다.

-> 이것도 알라딘의 밀당인가!!!!

결론 : 이번 달 도서구매액도 예산 초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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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0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나 북플이나 여기에 들어오게 된 이상 책 욕심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겁니다. 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알라딘의 밀당에 승리하세요. ^^

cheshire 2015-01-01 19:50   좋아요 0 | URL
....승리하는 건 포기했고 엎치락뒤치락만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완독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는 편인지라...cyrus 님도 다복하고 풍요로운 한 해 되세요^^
 

제대로 번역된 게 없다 는 이유로 프랑스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나의 지인. 사실 제대로 번역이 되어도 프랑스 소설을 읽지 않을 게 뻔하다. 그럴 바에야 솔직히 흥미를 못 느낀다. 난 판타지나 NT 노블이 더 좋다 고 말하면 될 것을 뭘 그리 포장하려 하는 걸까.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나도 다를 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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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28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번역된 모든 프랑스 소설이 발번역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체셔님 지인의 말씀은 이해할 수 없군요. 차라리 프랑스 소설이 너무 현학적이고, 작가의 할 말이 너무 많아 이해하기 어려워서 읽고 싶지 않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요. 사실 저도 프랑스 소설을 읽기가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판타지 좋아하면 어때요? 장르가 어떻든 간에 독서를 즐길 줄 아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대해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

cheshire 2014-12-28 08:1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리고 사실 요즘은 장르문학이니 순수문학이니 나누는 것도 의미없다고 생각하는지라...가끔 주변에서 아직도 장르문학 읽는다는 걸 밝히는 건 쪽팔리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보면 좀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그런 생각이 듭니다. 왜 취향까지 보여지는 용을 따로 만들려 하는 건지....

돌연변이 2014-12-2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어에 관심은 있으나 뭐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는 저로서는 번역이 발이다 아니다를 논할 수 없지만.. 쉬운 프랑스 소설도 많아요. 특히나 베르나르 같은 경우는 굉장히 유명해서 번역도 잘 돼있는 것 같고.. 레미제라블도 문체가 막 현학적이지만 읽어보면 재밌는 내용이구요

cheshire 2014-12-28 08:12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어떤 언어든 번역은 신경쓰지 않는 편입니다. 원어로 읽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나라별 문체의 특징이 분명히 존재하긴 합니다만 여러 방면에서 경계 짓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요즘은...나라의 특징이 아닌 작가에 따른 특징이 되어가는 듯도 하네요.
 

웃는 늑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코인로커 베이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십대 소녀의 가출기(소녀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로로 사망한다) 등 여러 이야기가 생각나는 이야기. 아 또 그 얘기야? 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왜 이런 이야기가 아직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와 동시에 예전에는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던 것들이 이젠 실제로 일어나도 놀랍지 않고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그런 시대에 산다는 씁쓸함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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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딘가 불편함이 존재하는 소설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혹은 이유는 있을 법 하나 전혀 읽히지 않는)

한 줄을 통으로 비워버리는 이상한 여백과

왜 굳이 붉은 색과 푸른 색이라는 고리타분한 색상을 사용해

그와 그녀의 대화를 상정해야 했는지 등이

불편함의 이유가 되었으리라 생각해보긴 하지만

아마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작품에서 '예쁘다는 이유로 권력을 지닌 어떤 계층' 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왜 유독 이 작품은 흔히 통용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CD까지 책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나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맴돌았기 때문이다.

 

길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책을 읽어온 기간 동안

그나마 내가 차릴 수 있는 예우란 것은 가능한 작가명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겪고 괜찮다고 판단한 작가가 아니라면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혹 내 스스로 괜찮다고 판단했다 치더라도

그의 다음 작품까지 무조건 호평을 내리지는 말자는 것

이것이 내가 그나마 차릴 수 있는 예우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리얼 타임으로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이 한창 인기였던 그 때의 '박민규' 라는 작가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 작품이 그의 커리어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지금 내가 체감하기에는

'왜 그 정도로 돌풍이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추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 라고 하기에는 추녀의 묘사가 없다.

추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위해 그녀의 외양에 대한 묘사는 가능한 줄이고

슈베르트를 듣고 전시회를 가는 그녀의 문화적 취향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것이 '못 생긴 애들은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 라는 그 잔인한 말과 뭐가 다른 걸까

 

그리고 주인공은 꽤 훈남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가 추녀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버지에 의한 계기

아름다움을 믿지 않는 그의 자세이다.

...이것이 '이 정도의 계기가 없다면 추녀는 사랑받을 수 없다' 는 것과 뭐가 다른 걸까

 

마치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소설에 대한 평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

왜 인물들의 대사에 색깔을 넣어야만 했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줄바꿈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말줄임표가 사용되었어야 했나

 

뭘 그런 것까지 따지고 그러냐- 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런 세세한 것까지 따지고 들 정도로 이 작품은 날 몰입시키지 못 했다 는 생각도 들기에

적잖이 안타까운 책이다

좀 더 뭔가 있었으면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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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신해철씨의 죽음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그리 광팬도 아니었고 그의 어떤 부분은 싫어하기도 했던 사람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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