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점 하나.

폐가처리반 - 망가진 물건들의 병원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등의 요소로 이어지는 

상처받고 상실된 사람들의 이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구원이 있을 것인가 를 보여줄 듯 하다가 결국 보여주지 않는다

 

 

인상깊은 점 둘. 

상상을 실제로 펼쳐놓은 듯한 문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메리-리 가 아들과 재회하면서 아들의 뒤를 캐왔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실제 그들의 대화는 마치 대본처럼 씌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깊게 애착을 느끼지 못 하는 이유.

마일스의 상처에 깊이 공감되기보다는

그 상처가 마일스라는 인물을 

'어딘가 상처가 있는 우울하지만 배려심 많고 사려깊은 조용한 젊은이' 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그가 필라를 만나게 된 이유나

선셋 파크의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좋은 동거인으로 인정받게 된 데는

결국 '어딘가 상처가 있지만 꽤 멋지고 조용한' 이라는

그의 이미지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고

그가 도피를 하게 된 형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두고 보았을 때도

죄의식이야 분명 생길 만 하지만 과연 그 정도로 친밀했는가 에 대해서는 조금 의구심이 든다.

어쩌면 그의 상처는 '형이 나 때문에 죽었어' 가 아니라

'내가 사람을 죽게 했어' 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마일스의 실체는 '상처많은 젊은이' 가 아닌

사실 자기연민과 자기애로 가득차 있는 사람이 되는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실 이 책에서 인상깊은 것은 마일스를 제외한 나머지다.

도무지 마일스=상처입은 젊은이 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공부를 잘 했는데, 야구까지 잘 했으며, 독서를 좋아하는 취향에

배우인 생모를 닮은 탓인지 아니면 사려깊은 성격 탓인지

고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인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후에 빙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부분)

라는 여러 조건들이 '상처입은 젊은이' 와 매치되기는 이질적이라고 생각되어 영 껄끄러웠다.

 

그에 비해 선셋 파크의 동료들은 정말 말 그대로 '홈리스' 들이다.

과거에서도 떨려나오고 미래에도 별 기대는 할 수 없으며

현재도 별볼일 없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더 눈에 들어왔던 듯 싶다.

 

 

총평을 해보자면-

현실이 갑갑하고 전쟁같은 건 알겠으나 몇몇의 전쟁은 그저 식자처럼 읽힐 뿐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일스는 한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방황하는 재벌집 도련님' 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결국은 그저 그랬다. 마일스의 동료들이 끌어당기면 마일스가 밀어버리니...

'실내인간' 과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와 비슷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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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가사가 떠오름. 정확히는 난 정말 물정을 몰랐네 정도. 하나의 상황을 두고 다층의 시각이 존재함+몰라도 너무 뭘 모르는 주인공이라는 요소 때문인지 오전에 읽은 `봄에 나는 없었다`의 확장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왜인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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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평범한 상황에서 뽑아낸 일대기적 미스터리.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에 한동안 책을 덮을 수 없었다...

 

...라는 광고 비슷한 후기라도 써야 될 듯한 느낌의 책.

 

잘 짜여진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 75%

 

그런데 난 어디로 끼면 되지? 라는 생각 25%

 

'오 놀랍군' 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심장은 딱히 움직이지 않았음

 

미스터리물이 원래 이런 기분인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음.

 

그나저나 사실, 조앤 같은 사람 꽤 많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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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을 몰랐다면 굉장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정유정 특유의 몰입력은 그대로이나 7년의 밤에서 느꼈던 간결한 힘이 아직 없다. 감정이입이 될라 치면 갑자기 튀어 들어오는 유머와 자료에 감정이 식어버리고 머리가 아파온다. 수명이란 캐릭터의 마음이 읽히지 않는다. 무언가 제대로 닿지 않는다. 멋진 풍경을 불투명유리를 통해 본 느낌. 난 정신병원의 시스템이나 차량. 비행의 지식보단 수명이나 승민의 마음이 알고 싶었다. 허나 쉽게 읽히진 않는다....내가 `7년의 밤`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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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좀 예민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리만치 둔감하다.

 

한 마디로 자신의 약점과 치부,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게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거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까닭도 그 내부를 짐작해보면


'이 사람은 나의 신조와 맞지 않는 이런 말과 이런 행동을 했어.

 그러니까 난 괜히 이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야"

 

정도가 되지 싶다. 한 마디로 죽어도 난 누구보다 사람다운 사람인 체 하고 싶은 거다.

(이걸 허세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잘난 척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생각이 점차 깨지게 된 것은 실직과 재취업을 되풀이 하는 과정에서

 

면접에서 미끄러지고, 직장생활에서 까이면서였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사무직으로 일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지금껏 서비스직 종사 중)

 

요즘은 나이 탓인지 아니면 경험 탓인지

그래도 어느 정도 반응도 가능하고 어색하지 않게 대화에도 낄 수 있긴 했지만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사소한 것(이를테면 머리를 잘랐다던가, 휴대폰을 샀다던가)에

왜 반응을 요구하는지 어떻게 반응을 보여달라는 건지 조차

이해하지 못 하고 화를 내곤 했었다.

(이런 류의 대화는 사무직에서 더 활발한 걸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저렇게 뻔한 대답만 요구하는 질문을 퍼붓는 걸까.

안 어울리다고 하면 버릴 건가. 바꿀 건가 라면서 비난하기도 했더랬다.

 

기억들로 인해, 살아감에 있어 인간관계는 최소한이 되어야 낫다고 생각하던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초월자 내지는 방관자를 자청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나름대로 흑역사라면 흑역사다. 이보다 더 허세인 게 어디 있을까.

 

그러다 계속 떨어지고, 까이고 하면서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초월자가 어찌 될 수 있나'

'제대로 해보고나 떠들어라'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 새해 목표를 '솔직해지자' 로 잡았던 기억이 있다.

 

타인에 대해 솔직하자 가 아닌 스스로에게 솔직하자.

말 그대로 그냥 이 사람이 싫은 거면서 이 이유 저 이유 붙여가면서 핑계 대지 말자.

그냥 급여가 낮고 오래 일해서 싫은 거면서 회사 분위기 갖다 붙이지 말자

핑계 대지 말자. 그냥 내가 싫은 거지 거기에 고고한 척 이유는 갖다 대지 말자.


어느 정도는 지켜진 것도 있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면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리뷰를 쓰면서 아직도 난 그림을 그렸었네. 창작을 했던 사람이네

하고 떠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허세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마음 한켠에는 책 한 권도 사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면도 있다.

참 인간이 좀스럽다.

 

 

 

솔직해지자.

아마 이것은 평생 지켜도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감추고 싶은 것

그냥 남 잘되는 게 싫은 패배의식까지 솔직해져야지 솔직해졌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아무리 해봤자 그 지경까지는 도달하지 못 할 듯 싶다.

그럼 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

솔직해지자. 이런 목표를 썼을 때 부가적으로 덧붙인 문장이 '인정하자' 였다.

날 세우기 바쁘던 성격이 점차 수그러진 것도 인정하기 시작하고 나서 였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보통도 되지 못 한다' 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박수받아 마땅할 일' 이라는 것.

그리고 나 혼자 살아남기도 바쁜 사회에서 구성원을 보살피고

아이들까지 건사하는 그 생활은 더 대단하다는 것.

 

 

 

인간관계는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변한 것은 '나에게는 인간관계는 최소한인 게 낫다' 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난 사람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아마 직업적인 영향도 있을 테고, 성장환경의 영향도 있을 터이다.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만나보자고 생각도 했고

실천에도 옮겼으나 남는 것은 늘어난 주량 뿐이었다.

(그것도 같이 마시다가 는 게 아니라,

 그 자리의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 와서 혼자 마시다가 늘어난 주량)

 

 

 

최근 새해 목표를 '뭐라도 되자' 라고 세웠더랬다.

뭐가 됬던 평범하게라도 좀 제대로 살자.

여기에 숨겨진 속뜻은 제발 실직 좀 그만하자 이제. 가 되겠다.

내지는 아무리 취미라지만 그래도 만화 좀 빨리빨리 그리지 정도?

 

그리고 부가적으로 덧붙인 것이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작정 피하지 말자. 라는 것.

지금껏 나의 태도는 둘 중 하나였다. 피하거나 충돌해서 깨져버리거나.

 

 

이번에는 중도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안 내키는 자리 억지로 가지 말고(회식은 어쩔 수 없지만)

가고 싶은 자리 지레 겁먹고 피하지만 말자고 다짐은 했지만 얼마나 지켜질 지는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놓아두어야 한다.

요즘 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변하는 걸 부러 붙잡지도 말고, 일부러 변화시키려 하지도 말고

그냥 나라는 개체의 생존적응력을 믿으며(살고 싶으면 알아서 변하겠지)

어떤 모습이 되었건, '나답지 않아' 라는 말로 어색해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뭐 그러다 보면 뭐가 되도 되어 있겠지.

지금과 많이 다르진 않더라도.

 

 

p.s. ...이상이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생각

     (...쓰다보니 결국 사담이 되어 붙여보는 변명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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