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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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해 전, 아니 어쩌면 몇 해 전(사실은 불과 1년 전인지도 모르겠다)


난 모종의 관계들을 모조리 포기해버렸다.


아직 내 신체에너지와 그로 인한 삶이 남아있기에 포기했다- 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 어딘가에서 놔버렸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계기는 끝내 해결되지 못 해 말하기도 지겨운 가정불화다.



지금도 가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만약 내가 그리는 대로 집을 나가는 날이 온다면


그리고 나가고 난 뒤 그대로 계속 삶을 영위해나간다면


그 끝은 과연 고독사랑 뭐가 다른가 싶은 거다.


물론 그 사고의 작용이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야겠어- 가 아닌

좀 더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야겠어- 로 흘러가 버린 것은

타고난 내향성으로 인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돈, 직업, 건강 의 문제 외에

앞으로의 나에게 닥칠 문제는 '고독' 이 자리하고 있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남은 문제. 부모님.


반복하여 내가 그들을 놓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가족의 화목을 꿈꾸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원인을 알고 싶지 않다는 것.

더 이상 이해하려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계속 스스로에게 그 결심을 되뇌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기에 불안감이 엄습하는 거다.

만약 언젠가 나에게건, 부모님에게건 죽음이 다가올 때

이 결심을 후회할 거라 생각하기에.


아는 것을 포기하고 이해하는 것을 포기해서

결국에는 관계의 단절까지 이르게 될 결심을

미래(가깝거나 혹은 먼)의 내가 후회할 것이 분명 보임에도

지금의 난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다. 감당하고 싶지도 않고.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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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세게관을 행성 간의 전쟁 정도로만 얄팍하게 인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결말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스타워즈- 라는 브랜드(??) 자체가

세계관과 역사에 따른 어쩌고 저쩌고 때문에 인기있는 건

일자무식인 나 역시도 알고 있는 바이며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인간은 한낱 스쳐가는 개미일 뿐이다 라는 인식도 하고 있으나


...이런 식으로 몰살시킬 거라면 굳이 캐릭터와 캐릭터 각각의 이야기는 왜 만든 걸까

...내가 영화에서까지 인간은 한낱 먼지와도 같은 존재임을 확인해야 하나

...이렇게 되면 캐릭터가 소모되었다는 느낌밖에 안 드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좀 허무했다.

소모되었다는 느낌이 지배적으로 들어 썩 좋게 보이진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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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1. 일단 여러 면에서 신경숙 씨의 '외딴 방' 이 떠올랐다고 해두고 싶다.

   사실 외딴 방보다는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더 닮은 꼴이라

   일컬어지는 모양이지만 내가 미저리를 보지 않은 관계로

   그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2. 이것 역시 개인적인 경향이라면 경향일 수 있고

   요즘의 세태라면 세태랄 수 있겠다만

   언제부턴가 실화라는 말을 점점 믿지 않게 되었다.

   그 계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날이 영화보다 충격의 강도가 세어지는 뉴스 속보가

   한 몫 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는 더욱 흥미가 일지 않는다.

   그래놓고 최근 읽는 것은 사례를 통한 심리서적들이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인 듯 하지만

   어쨌든 실화 라는 말이 예전보다 울림을 주지 못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3. 현실감각의 부재라도 해도 좋을 것이고, 인터넷의 영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축소될수록

   점점 많은 말들을 인터넷에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표현이 좀 뭐하지만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릴 때면 딱 그 기분이다.

   집어던지는 기분.

   운 좋게 누군가에게 맞는다면 접점이 생기겠지만

   대부분 거치는 것 없이 날아가 수면에 떨어지고 마는 것.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왔다.


4. 하여 딱히 실화를 바탕으로 할 생각은 하지 않았더랬다.

   다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아는 것마냥

   쓰려 할 때의 버석거림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버석거림을 타개하기 위해 내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쓴다면 얼마나? 어디까지?

   아니 그 전에 내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몇 편의 이야기나 쓸 수 있는데?

   그리고 그것은 실화인가. 기억에 의해 날조된 현실인가.

   실화의 범위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5. 영상과 이미지가 점점 주요문화로 자리하게 되면서

   오히려 문학이 제자리를 찾을수도 있을 거란

    L의 의견에는 일부 동의하는 바이나

   실화에 집착하는 그 태도에는 역시 의문이 생긴다.

   실화라고 한다면 결국 어느 한 쪽의 실화라는 건데

   과연 그게 실화로서의 기능을 하기는 하는 건지.

   구구절절한 자기변명은 아닌 건지.


6. 어쨌든 난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고 그리고 있다. 피드백은 없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기이한 것은 해가 갈수록 이야기는 길어지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지면서

   무엇보다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그리고 점점 현실로 돌아오고 있다.

   나랑 아주 먼 것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더니 점점 내 지척으로 오고 있다.

   해서 과연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다면 난 괜찮을지 생각 중이다.

   물론 이 핑계 대고 안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는 L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 냈고

    그런 걸 보면 역시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은 어쩌면 저주받은 직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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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이해 와 마찬가지로 제목에서 말하는 ‘심연‘ 을 알고 싶어 구매했으나 심연은 어디 가고 괴물 역시 사회에서 존속가능하다는 얘기와 대비책과 뇌 구조 설명만 들은 기분. 본인이 사이코 패스에 가까움을 자각한 이후 느꼈을법한 혼란과 이후 이어진 과감한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이래도 이 사람은 괜찮은가‘ 싶기도 했지만 잊힐만하면 튀어나오는 ‘재치 있고 일 잘 하며 유쾌한‘ 저자 묘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이건 뭐 변명 일대기인가 싶기도 했음.

사이코패스의 심연을 알고 싶었으나
심연도 없고 사이코패스도 없었음...
.....내가 이 사람의 TED 강연을 안 봐서일수도 있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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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들을 잔뜩 집어넣고 가슴을 한 바퀴 휘저어낸 듯한 느낌.

하여 보기 버겁고 느끼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만나기 위해.


SF의 관점이 아닌

시간과 인간의 측면에서 본다면 감정의 결이 훨씬 쉽게 읽힐 듯 하지만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사운드 때문인지. 연체동물 닮은 그들 때문인지.

아니면 막힌 공간 때문인지 전쟁의 위협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서 영화는 괜찮으나 나는 힘든-

꽤 기묘한 경험이 되어버렸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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