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뭔가 ‘크리스마스 캐롤‘ 이 연상되는 분위기

2. 장례용품점 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장례용품점을 차리는 얘기에 가까움.

3. 사업가의 기질은 역시 타고나야 하는가.

4. 떼까마귀 이야기와 벨맨 이야기를 교차시킨 게 인상적. 아마 떼까마귀에 대한 꼭지대로 이야기가 전개되게끔 한 것 같은데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환경 +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냥 후루룩 읽어버렸음

5. 고딕소설 이라기엔 너무 교훈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지만 애초에 고딕소설에 대한 정의조차 명확하개 알지 못 하는 관계로 그러려니 하고 납득

6. 나중에 조용한 방에서 차분하게 다시 읽어보고 싶다.

7. 근데 대체 작가들은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하는 걸까. 매번 그게 너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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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델핀 드 비강 지음, 권지현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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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랍시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면서(혼자 끄적거리는 수준이라도)

깨달은 건 내가 '가족' 그리고 '엄마' 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는 것.

엄마와 딸의 유대보다는 

가족에서의 딸의 위치나 가족 내에서의 모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가 더 가는 편이니

아마 엄마 보다는 가족 이라는 주제에 더 집착적으로 굴고 있지 않나 싶다.

그 이유는 물어보나마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때문이겠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엄마 가 등장하는 컨텐츠 들에 약한 편이고

그런 소재가 나오면 꼭 한 번씩은 보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리다보니 만화에서도 꼭 그런 사람이 한 명씩은 나왔지 않나 싶고. 


계속 이렇게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 바엔

아예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보자 싶어

최근에는(최근이라곤 하지만 꽤 오래 전에 시작한)

나에게 있었던 기억들을 추려서 변형. 왜곡. 비약 등등을 시켜 스토리를 만들었더랬다.

지금은 그 스토리를 이미지화 하기 위해 설계 중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라는 책을 통해 델핀 드 비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으로 인해 델핀 드 비강이 '어머니의 자살' 에 대한 글을 썼음을 알게 되었고

스토리의 접점이 생길 것 같아 재발간을 기다리다 결국 중고거래를 통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독했을 때에는 다소 실망했더랬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어머니에게 우울증이 온 계기 혹은 이유' 라던가 

그 이유가 자살에도 똑같은 영향을 미쳤는가 에 대한 것이었지만

작가는 어머니의 삶 전반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그녀는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파고든 문장이 그것이었다. '살아남았다'


최근 우울의 기질이 다시 치고 올라오면서

습관적으로 '그래도 살자. 살아남자' 라고 되뇌곤 한다.

그러면서 이 우울기질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오로지 나에게서 온 것인지 유전적 기질에서 온 것인지도 생각한다.

아마 양쪽 다 이유가 있겠지.


'어머니의 우울증의 원인. 혹은 자살의 원인' 에 집중하여 읽는다면

왜 이런 부분까지 얘기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법한 책이다.

허나 단순히 원인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어머니를 지켜본 기록 으로 본다면

정말 처절한 투쟁의 기록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적어도 난 그랬으니.


내 안의 전쟁에 지지 않기

허물어지지 않기

성벽을 쌓듯 일과를 쌓아보기

그렇게 하루를 버티면 일주일을 버틸 수 있고 일주일이 쌓이면 또 한 달이 될테고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끝나는 때도 있겠지.


그렇게 버텨보는 요즘이다.

물론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난 계속 썩어가야 한단 말이냐! 라는 

내적 외침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괜찮음.

일단 읽고 그리고 있으면 괜찮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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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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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

굉장히 힘겹게. 졸음을 참아가며 읽었다.

첫번째 이유. 한가한 매장은 너무 졸려서.

두번째 이유.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많아서.

졸음에 대한 기여도는 아마 두 이유의 비중이 거의 비슷할 듯 싶다.


단편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을 달기에는 그 편수가 적진 않으므로 

그냥 뭉뚱그려 하나로 얘기해보자면 어쩌면 이것은 '이해'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것.


언제부턴가 내게 있어 '이해' 라는 것은 

'하지 못 함' 혹은 '할 수 없음' 과 한데 묶여지는 단어로 인식된 듯 싶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알 수 없음' 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이해한다. 알게 된다 라고 했을 때의 감각은

하루 종일 무리한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릴 때의 감각과 비슷한 것도 같다.

그냥. 더 말할 것도 없이. 혹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딱 맞는 것.

원래 그런 거였다는 듯이 딱 맞아들어가는 것.

그래서 그런 것을 보거나 알게 되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어지고 

왜 말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도 어려워지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몇몇 단편들의 인상은 

이미 '알아버린' 자가 그것을 설명하려 할 때의 느낌을 풍긴다.

내가 왜 이것을 설명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설명해볼게. 들어봐.

그래서 어떤 글들은 들어오고 어떤 글들은 미끄러져 도로 나가버린 건지도.


무수히 실패했던 여러 SF에 비해 좀 더 읽기 편한 편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단편 중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고 

모든 단편이 마냥 읽기 쉽진 않다.

지식의 차이가 여기에서 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




p.s. 이게 무슨 상관일까 싶긴 하지만 리뷰를 쓰다  

     문득 '이야기가 이야기면 됐지 뭘 더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해. 합일. 일치. 뭐 기타 등등의 유사적인 상태.

     작가 와 독자가 동일인이 아닌 이상 완벽한 이해는 불가할 것이고

     그러한 와중에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독자를 자신이 의도한 해석으로 끌고 가기 위해 장치를 심는 걸까

     설명을 하는 걸까. 아니면 가이드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

     어쨌든 이야기가 이야기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방식 면에 있어서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p.s. 의 p.s. 뭔가 이야기를 짤 수록 점점 길어지고 부연이 많아진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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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힘겹게. 겨우겨우 읽었음.
문장 자체가 어렵거나 한 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뇌와 약품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있었고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졸아가며 읽었음.

우울증에 대한 서적을 말할 때 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지 충분히 납득은 되지만 역시 두께가 주는 압박이 만만치 않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보자면

‘고백과 공유의 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한 위안‘
‘자살시도의 반복이 꼭 우울증으로 인한 건 아니다‘ 정도?

스토리 짜는 거에 도움이 될까 싶어 구매해놓고
두께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이제서야 읽어봤는데
(이미 스토리 구상은 끝남. 다음 단계 준비 중)

전개가 그래도 영 어거지로 흘러간 것 같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 중.

한 번 더 제대로 집중해서 읽어봤음 싶지만
솔직히 장담을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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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알던 책이나 알던 작가는 아니었다.

혼자서 끄적이는 수준이래도 어쨌든 만화 비스끄무리한 걸 그리고는 있으니

뭔가 도움될만한 만화도 좀 봐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SNS에서 텀블벅 진행 중인 것을 알게 되었고

평가가 꽤 좋아 충동적으로 텀블벅 후원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시일이 꽤 지난 청춘물은 보기가 꺼려지는 면이 있다.

당시, 그 연령대만 공감할 수 있는 정서 가 

아무래도 청춘물 내지는 학원물의 핵심일 테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아무래도 공감이 힘들어지는 면이 있으니 말이다.

'정서나 감정의 공감' 으로 연령대 다른 것까지는 커버가 된다 쳐도

당시가 어긋나면 그 정서는 상당히 알기 힘든 것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이 작품이 나온 것이 아마도 1990년대.

그럭저럭 대충 하나로 묶으려면 묶을 수도 있을 정도로 비슷한 세대니

그럭저럭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특히 

'시체' 를 보며 살아있다는 위안을 얻고

'시체' 를 가리켜 재미있는 것  

이라 말하는 부분.


관계의 허무, 욕망, 자아의 상실 등이

왜 다른 대상을 향한 폭력과 파괴적인 행위로만 표현되는지

물론 8~90년대의 만화가 거의 그런 양식이긴 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싶으면서도

자꾸 이 방법 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더랬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싸움. 마약. 이성. 빼고는 청소년 못 그리나?



근데 써놓고 나서 보니 

지금 내가 구상하고 있는 스토리도 그 모양이군. ㅡㅡ

아무튼.


수작인 것은 인정. 

아마 동시대에 봤더라면 내가 굉장히 좋아했을 것 같다.

허나 지금의 나에게는 꽤 여러 면이 불편 혹은 불쾌하게 느껴진다. 



p.s. 오카자키 쿄코의 '리버스 엣지' 라는 만화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최근 이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가 나온 듯 합니다.

   

p.s. 의 p.s. 무언가 이미지라도 첨부하고 싶었지만 

             만화책 이미지는 별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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