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평점 :
일단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
굉장히 힘겹게. 졸음을 참아가며 읽었다.
첫번째 이유. 한가한 매장은 너무 졸려서.
두번째 이유.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많아서.
졸음에 대한 기여도는 아마 두 이유의 비중이 거의 비슷할 듯 싶다.
단편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을 달기에는 그 편수가 적진 않으므로
그냥 뭉뚱그려 하나로 얘기해보자면 어쩌면 이것은 '이해'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것.
언제부턴가 내게 있어 '이해' 라는 것은
'하지 못 함' 혹은 '할 수 없음' 과 한데 묶여지는 단어로 인식된 듯 싶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알 수 없음' 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이해한다. 알게 된다 라고 했을 때의 감각은
하루 종일 무리한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릴 때의 감각과 비슷한 것도 같다.
그냥. 더 말할 것도 없이. 혹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딱 맞는 것.
원래 그런 거였다는 듯이 딱 맞아들어가는 것.
그래서 그런 것을 보거나 알게 되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어지고
왜 말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도 어려워지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몇몇 단편들의 인상은
이미 '알아버린' 자가 그것을 설명하려 할 때의 느낌을 풍긴다.
내가 왜 이것을 설명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설명해볼게. 들어봐.
그래서 어떤 글들은 들어오고 어떤 글들은 미끄러져 도로 나가버린 건지도.
무수히 실패했던 여러 SF에 비해 좀 더 읽기 편한 편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단편 중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고
모든 단편이 마냥 읽기 쉽진 않다.
지식의 차이가 여기에서 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
p.s. 이게 무슨 상관일까 싶긴 하지만 리뷰를 쓰다
문득 '이야기가 이야기면 됐지 뭘 더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해. 합일. 일치. 뭐 기타 등등의 유사적인 상태.
작가 와 독자가 동일인이 아닌 이상 완벽한 이해는 불가할 것이고
그러한 와중에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독자를 자신이 의도한 해석으로 끌고 가기 위해 장치를 심는 걸까
설명을 하는 걸까. 아니면 가이드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
어쨌든 이야기가 이야기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방식 면에 있어서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p.s. 의 p.s. 뭔가 이야기를 짤 수록 점점 길어지고 부연이 많아진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