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그리 만만한(?) 작가는 아님은

   '굳빠이, 이상' 을 읽다가 제풀에 지쳐 놓아버렸을 때나

    '원더보이' 를 읽다가

    도무지 쫓아갈 수 없는 주인공의 감정에 지쳐 덮어버렸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집중에 집중을 더 하여 어떻게든 문장을 해석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두 번째 읽기를 마친 지금 역시나 만만치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만만치 않느냐 고 묻는다면. 글쎄. 대답하기 어렵지만

    감정과 인물에게 일어난 사건과 인물이 살던 나라에 일어난 사건을

    한 문장으로 뭉뚱그려 놓아 그것을 해체하는 게 벅찼던 것 같다.

    어쩌면 근 며칠 째 먹고 있는 감기약 탓일 수도 있겠고.

    어쨌든 꽤 벅차게 읽었고 지금도 두통과 미슥거림 같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는 상태다.

 

 

2. 이런 느낌이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난 이런 느낌을 주는 문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강렬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전에 한 차례 슬픔이 지나가고 난 뒤 사막을 바라보는 느낌.

   이 책을 통하여 본 작가 김연수의 느낌이. 그의 문장의 느낌이 그랬다.

   슬픔을 말하지 않고 한 때 슬펐던 여자가 사막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서술하는 것.

   슬픔을 말하려 하지 않는 것과 한 때 슬펐던 것은 꽤 다르다.

   슬픔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내재된 슬픔이 남아있어

   무엇이 자신을 그토록 슬프게 만들었는가를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감정이 조금씩 묻어난다 치면

   한 때 슬펐던 누군가가 그 슬펐던 일을 말할 때면

   이미 울 만큼 울어버린 뒤라 감정은 대부분 휘발되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책을 읽는 데 있어 감정의 공유를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꽤 어리둥절했다.

   분명 슬프고 아픈 이야기일 법 한데 이미 지나버린 것처럼 이야기하는 문장들이.

   그래서 가끔 '쿨한 척' 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문장들이 불편하기도 했고.

 

 

3. 내용도 주인공도 다른 단편이 모인 책이다.

   그것들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문득 손 안에 쥐고 있다가 날아가버린 모래가 떠올랐다.

   그렇게 흘러가버리고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4. 문득 SNS에서 김연수를 가리켜 대책없는 로맨티스트 라 칭하는 걸 본 기억이 떠올랐다.

   지나가버린 일들도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며

   걸음을 돌려 다른 곳을 향하면 또다시 삶은 시작될 거라 말하는 듯한

   이 책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그 말도 가히 틀린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맨티스트라는 말에 긍정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얹어서.

 

 

5. 어쨌든 문장은 따라가기 벅차고 그 안에 감정도 포착하기 힘들다.

   역사적, 과학적 지식(내 취약부분)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글이 아님에도

   꽤 집중해야 해서 몸이 힘들다.

   그럼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있어

   그의 문체에 적응되면 그 반짝이는 것에서 눈을 떼기 힘들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는 안녕, -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 말에 대한 배신감을 뼈저리게 느꼈던 때.

   정확히는 그 말에 부합하지 못 하는 나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던 일.

   누군가에게 '난 이것을 싫어해' '난 어떤 사람이야' 라고 말해도

   그것이 평생 갈 정도로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인식 또는 자각이 낮았던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내가 되고자 하는 모양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부합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

   애를 쓰는 동안은 줄곧 5가지 결심 중 1~2가지를 지키지 못 하는 식이었고

   종내 나는 나를 ~할지도 모르는 사람

   으로 모르는 사람으로 내버려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쓰는 일련의 글들에서는 ~한 듯 했다. ~한 것 같다는 말이 늘었고

   확신하는 말을 믿지 못 하게 된 듯 했다.

 

   

2. 기억 둘. 지금도 이어지는 것.

   부모님은  종종 '너는 내가 뭔 말을 해도 듣질 않냐' 고 하신다.

   왜 말을 따르지 않느냐 가 아닌 말 그대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 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익혀온 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좋을 대로 판단하고 자기 좋을 말만 기억하는' 부모님이었다.

    더욱이 안 좋은 점은 '자신이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매우 흔하게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편의대로 상대의 말을 기억한다.

   그래놓고 자기의 말은 모조리 다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

   한 해, 두 해 그런 사람들을 안팍으로 겪다 보니 종국에는 사람들 말도 싫어져 버렸다.

   더 정확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게 싫어져 버렸다.

   기억 하나에서는 내가 지키지 못 할 나의 말들이 싫어졌고

   기억 둘에서는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 할 위인들에게

   내가 왜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3. 물론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는 게 일반론이긴 하지만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연달아 같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여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4. 적다 보니 책에 대한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요즘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적어놓은 것 같은데.

   읽는 내내 책의 내용에 대한 생각보다는 '말' 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던 책 같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고 휘몰아치는 듯이 격정에 빠져 읽었다 고는 할 수 없으나

   독특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책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5. 그저 그렇게 스쳐갈 뿐이니 일일이 안타까워 하지 말고

   오면 받아주고 가면 놓아주는 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말 따위 기억에도 잔상에도 남지 않을 허황된 것이니까

   말을 아끼는 자세로 일생을 살아야 할는지

   갑자기 헷갈렸다.

 

 

6. '허언증' 까지는 아니더라도 글 중

    마리가 느끼는 '말' 에 대한 생각에는 상당수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한 생각이 사람, 사람 관계에 대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것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비밀을 숨기고 캐내고

사건을 일으켰다가 해결하면서도

좀처럼 결과를 확실하게 정해주지 않는다.

첫 장 시체가 떠오른 순간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음에도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몰라

의문스러운 상태만 남았다.

 

다만 도시에서 오래 살아본 자라야 쓸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흔히 감수성이라 하면 풀잎에서 별의 소리를 읽어내고

별에게서는 지구의 눈물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자연을 벗삼아 자라온 것만이 감수성은 아니다! 라고 소리치고픈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분명 사람도 있고, 관계도 있으나

그것을 좋다, 나쁘다 등의 정확한 결론을 내어주지 않고

그저 사람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도 사건 안에 휩쓸려 들어가 어찌할 줄 모른다기보다는

몇 발자욱 떨어져 사건 안의 인물들을 관찰 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묘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정신없이 읽어내려간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시종일관 소설 밖에 있는 자신을 자각하면서 휩쓸려 나간 적도 처음이었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을 터는 단 한 가지 방법 블랙 로맨스 클럽
앨리 카터 지음, 곽미주.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런 류(?)의 책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음을 먼저 일러두고 싶다.

다른 걸 떠나 '블랙 로맨스 클럽' 의 일원으로 세상에 나온 책이니.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서 오는 미약한 두통을 안고서도

끝까지 책을 덮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이 책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표면상 이것은 도둑들의 이야기다.

그것도 보통 도둑들이 아닌 아기 때부터 철저하게 훈련받아온 어린 도둑들.

그들이 누군가의 계략에 빠지고

그 계략으로부터 가족과 친구를 지키고자 하는 데서 이야기는 출발하지만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 속내는 끊임없이 가족으로부터

혹은 어릴 때부터 부여된 역할(결코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성장기의 아이들이 보인다.

초반에 살짝 자신의 존재만 알려주던 아이들의 성장통은

중반을 지나면서는 보다 확실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캣이 닉에게 했던 말. "왜 이 일을 하니?"

어쩌면 그것은 캣이 줄곧 스스로에게 해오던 질문인지도 모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한테 있는 거라곤

'미술관을 터는 단 한 가지 방법' 한 권 뿐이라는 것

그래서 시리즈로 길게 이어져 있을 법한 내용을 알지 못 한다는 거다.

 

내가 알지 못 하는 그 부분에

캣이 가족을 떠나고자 한 이유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을 것만 같은데

갖고 있질 않으니 알 길이 없고 알 길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적당히 가벼우면서 적당히 고민스럽기도 하고

유쾌한 듯 하다가도 순간순간 우울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기도 한.

 

'10대 성장소설의 클래식한 요소를 이판사판 탈선 속에 잘 버무린' 책이다.

책 뒷면에 실린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의 평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어지곤 하는 성장의 시기에 느껴지곤 하는

 

근거 없는 슬픔이나 아픔, 두려움, 불안

 

이런 것들을 뽑아내어 한 형태로 잘 반죽하여 빚은 다음

 

그것을 가지고 견고한 형체를 쌓은 듯한 책이다.

 

슬플 만한 사건이 생겨서 난 지금 울고 있네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그 가슴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아프고 슬픈 글이다.

 

 

 

그래서 그만큼 각오가 필요한 글이기도 하다.

 

책을 폈다가 덮었다가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책을 폈다.

 

시시때때로 악 소리를 내며 다시 덮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읽어나가야 했다.

 

아마 표정은 찌푸려진 채로.

 

 

부러 내용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좋을 듯 싶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가 작고 날카로운 바늘 같으니 감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읽을 것.

 

시간을 때우기 위한 독서라기보다는

이것을 읽음으로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현상들의 시간들을 감내하겠다는 자세로 읽을 것.

 

이를 당부해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