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문학적 성취라던가 위치라던가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여기 그려지는 세계가 슬프고 아프고 쓸쓸한데 점점 실제 일어날 수도 있단 생각까지 더해져 서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고 한다면 너무 얄팍한 인간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

행복한 것. 평화로운 것이 보고 싶은 요즘이다.
입에만 달콤할 뿐인 거짓이라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악은 충분하니
차라리 위선이라도 봤으면 싶다.

p.s. 맥카시 역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듯.
무겁고 아픈데 차갑거나 황량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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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1. 일단 여러 면에서 신경숙 씨의 '외딴 방' 이 떠올랐다고 해두고 싶다.

   사실 외딴 방보다는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더 닮은 꼴이라

   일컬어지는 모양이지만 내가 미저리를 보지 않은 관계로

   그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2. 이것 역시 개인적인 경향이라면 경향일 수 있고

   요즘의 세태라면 세태랄 수 있겠다만

   언제부턴가 실화라는 말을 점점 믿지 않게 되었다.

   그 계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날이 영화보다 충격의 강도가 세어지는 뉴스 속보가

   한 몫 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는 더욱 흥미가 일지 않는다.

   그래놓고 최근 읽는 것은 사례를 통한 심리서적들이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인 듯 하지만

   어쨌든 실화 라는 말이 예전보다 울림을 주지 못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3. 현실감각의 부재라도 해도 좋을 것이고, 인터넷의 영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축소될수록

   점점 많은 말들을 인터넷에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표현이 좀 뭐하지만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릴 때면 딱 그 기분이다.

   집어던지는 기분.

   운 좋게 누군가에게 맞는다면 접점이 생기겠지만

   대부분 거치는 것 없이 날아가 수면에 떨어지고 마는 것.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왔다.


4. 하여 딱히 실화를 바탕으로 할 생각은 하지 않았더랬다.

   다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아는 것마냥

   쓰려 할 때의 버석거림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버석거림을 타개하기 위해 내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쓴다면 얼마나? 어디까지?

   아니 그 전에 내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몇 편의 이야기나 쓸 수 있는데?

   그리고 그것은 실화인가. 기억에 의해 날조된 현실인가.

   실화의 범위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5. 영상과 이미지가 점점 주요문화로 자리하게 되면서

   오히려 문학이 제자리를 찾을수도 있을 거란

    L의 의견에는 일부 동의하는 바이나

   실화에 집착하는 그 태도에는 역시 의문이 생긴다.

   실화라고 한다면 결국 어느 한 쪽의 실화라는 건데

   과연 그게 실화로서의 기능을 하기는 하는 건지.

   구구절절한 자기변명은 아닌 건지.


6. 어쨌든 난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고 그리고 있다. 피드백은 없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기이한 것은 해가 갈수록 이야기는 길어지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지면서

   무엇보다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그리고 점점 현실로 돌아오고 있다.

   나랑 아주 먼 것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더니 점점 내 지척으로 오고 있다.

   해서 과연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다면 난 괜찮을지 생각 중이다.

   물론 이 핑계 대고 안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는 L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 냈고

    그런 걸 보면 역시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은 어쩌면 저주받은 직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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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이라는 시인에 대해
그리고 이 시집에 대해 호기심이 일면서
이 책을 읽은 이들의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박힌 것은
누가 이 젊은 시인의 마음에 이토록 짙은 슬픔을 드리웠는가 하는 것

이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왜 아직까지도 이러한 비애와 생의 고단이 통용되고 공감될 수 있는지
생의 고단이라 하면
너무 오래 살아 버팀마저도 지겨워질
그런 나이 쯤 되어야 느낄 수 있을 법한 감정일 듯 한데
왜 젊은이의 고단함이 낯설지 않은지
이것은 내가 고단해서인지
이 나라가 고단해서인지

고단하다 고단하다 생각하다 보면
그저 물에 풀어지는 잉크 마냥
퍼져서 사라지고만 싶기도 하다
생각하는 것마저 고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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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1. 첫 번째 이미지.

   배불뚝이 광대들.

   삐에로가 맞는지 크라운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광대들.

   천사인형이 내려오면서 끝나는 인형극.


2. 두 번째 이미지.

   삐에로 탈을 쓴 신사들.

   마치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사지를 줄에 묶은 채.

   혹은 묶었음에도 자유로이 떠들고 흐르는 대로 얘기한다.

   간혹 자신들의 줄을 손에 든 주인에게 건배를 보내기도 하면서.


3.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물론 나의 이야기다.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뚜렷하게 체감하게 된 계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의 도자비엔날레 방문이었다.

   나라별로 확연히 나눠지는 주제와 표현법.

   그 와중에 왜 우리만 존재니 침묵이니 죽음이니 삶이니 그러고들 있어야 하는지

   당시 무슨 작업만 하려 하면

   '이 작업이 너에게 있어서 왜 의미가 있으며 왜 해야 하는지를 밝혀라' 라며  

   당위를 따져대는 수업에 지쳐있던 때이기도 했다.

   아 좀. 그냥 좀 합시다. 그냥 이러고 싶었다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올랐던 게 몇 번인지.


4. 그림과 연계되기 이전, 그러니까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를 무렵

   어쨌든 난 특이한 사람이고 싶었다.

   특이함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으나

   내가 택한 특이함은 '생각 있어 보이고 진중한' 것이었고

   그 결과 '그림' 이라는 나락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어 그리 흘러갔는지 자세한 경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런 흐름이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놈의 '무엇을, 왜, 어째서' 를 닦달당하다 보니

   결국 '왜가 왜 필요한데' 라는 지경까지 왔다나 뭐라나. 


5.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시절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의미있는 것, 의미없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은 것.

   아마 이미자와 미디어와 사운드의 발달.

   영구적인 것이 아닌 한 순간 감각으로 남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도 싶다. 

   어느 쪽이 더 낫냐고? 그런 무의미한 질문은 해서 뭐 해.


6.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것. 힘을 뺄 것.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다.

   특이하고 싶었던 아이는

   자라서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하필 하고 싶은 것이 평범이란 것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던지라

   지금의 모양새는 뭔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림 역시 괴기일러스트에서 그냥 예쁜 일러스트가 되었다.

   (애초에 예쁜 걸 그리고 싶었으니 이제야 목표달성한 셈) 


7. CG 툴을 익히겠다고 회사를 때려치고 학원을 등록했고

   그 학원은 이번 달이면 종강이다.

   아직 취업은 되지 않았지만

   어디든 들어가면 아마 다시 일-그림-일-그림 의 패턴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계획대로 된다면 독립까지 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는데?' '어디 돈 받고 내는 것도 아니잖아'

   이에 답한다.

   '그래도 10년 넘게 그렸는데 아무도 안 사준다는 이유로 놔버리면

   나의 지난 생활은 다 어떻게 되는 거냐'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어쩌라고 ㅡㅡ. 내가 지금 다른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게 제일 낫다잖아'


8. 사실 이 책의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다.

   파티가 있었고, 파티가 끝났고 정도?

   그러나 그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이

   그리고 그것을 여과없이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태도가

   너무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

   ....그리고 누구 말마따나 설마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이 들기도 한다.


9. 의미, 무의미, 당위성, 개연성.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도

   잘 버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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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간 책 읽기를 멀리한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보자면 ‘뜻대로 되지 않는 작업+다시금 도래한 구직의 시기+에라 모르겠다‘ 의 공식으로 멍하니 영화만 틀어놓고 보낸 나날이 많았다고나 할까
(주로 마블의 히어로물을 보았음)

‘태양은 가득히‘ 라는 제목의 영화를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어쩌고 저쩌고
라는 개요를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가
고전명작과 상성이 좋지 않은 성향 탓에 포기했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나서 ‘리플리‘ 라는 제목으로
다시 영화화되었다는 정보를 입수- 허나 맷 데이먼에 대한 호감도가 낮은 관계로 포기.
그리고 이제야 리플리씨를 만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그가 ‘사이코패스‘ 라 정의내려질 수 있는 인물인가 하는 것.
- 물론 의문을 가졌다가 그럼 사이코패스란 대체 뭐냐 라는 의문으로 연계되는 바람에 답을 내릴 순 없었지만.

하지만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
자신보다 더 나은 처지의 누군가가 되고 싶은 바람.
으로 점철된 그의 모습이 과연 사회적 기준이 무너진 사람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호한 듯 싶다.
욕망이 그의 기준을 잡아먹었다- 라면 몰라도.

어쨌든 심연에 이어 하이스미스 씨에 대한 신뢰도를 다시 한 번 상승시켜 주었고 아마도 그녀의 책을 지속적으로 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맷 데이먼의 리플리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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