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 첫 번째 이미지.

   배불뚝이 광대들.

   삐에로가 맞는지 크라운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광대들.

   천사인형이 내려오면서 끝나는 인형극.


2. 두 번째 이미지.

   삐에로 탈을 쓴 신사들.

   마치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사지를 줄에 묶은 채.

   혹은 묶었음에도 자유로이 떠들고 흐르는 대로 얘기한다.

   간혹 자신들의 줄을 손에 든 주인에게 건배를 보내기도 하면서.


3.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물론 나의 이야기다.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뚜렷하게 체감하게 된 계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의 도자비엔날레 방문이었다.

   나라별로 확연히 나눠지는 주제와 표현법.

   그 와중에 왜 우리만 존재니 침묵이니 죽음이니 삶이니 그러고들 있어야 하는지

   당시 무슨 작업만 하려 하면

   '이 작업이 너에게 있어서 왜 의미가 있으며 왜 해야 하는지를 밝혀라' 라며  

   당위를 따져대는 수업에 지쳐있던 때이기도 했다.

   아 좀. 그냥 좀 합시다. 그냥 이러고 싶었다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올랐던 게 몇 번인지.


4. 그림과 연계되기 이전, 그러니까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를 무렵

   어쨌든 난 특이한 사람이고 싶었다.

   특이함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으나

   내가 택한 특이함은 '생각 있어 보이고 진중한' 것이었고

   그 결과 '그림' 이라는 나락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어 그리 흘러갔는지 자세한 경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런 흐름이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놈의 '무엇을, 왜, 어째서' 를 닦달당하다 보니

   결국 '왜가 왜 필요한데' 라는 지경까지 왔다나 뭐라나. 


5. 내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시절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의미있는 것, 의미없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은 것.

   아마 이미자와 미디어와 사운드의 발달.

   영구적인 것이 아닌 한 순간 감각으로 남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도 싶다. 

   어느 쪽이 더 낫냐고? 그런 무의미한 질문은 해서 뭐 해.


6.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것. 힘을 뺄 것.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다.

   특이하고 싶었던 아이는

   자라서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하필 하고 싶은 것이 평범이란 것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던지라

   지금의 모양새는 뭔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림 역시 괴기일러스트에서 그냥 예쁜 일러스트가 되었다.

   (애초에 예쁜 걸 그리고 싶었으니 이제야 목표달성한 셈) 


7. CG 툴을 익히겠다고 회사를 때려치고 학원을 등록했고

   그 학원은 이번 달이면 종강이다.

   아직 취업은 되지 않았지만

   어디든 들어가면 아마 다시 일-그림-일-그림 의 패턴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계획대로 된다면 독립까지 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는데?' '어디 돈 받고 내는 것도 아니잖아'

   이에 답한다.

   '그래도 10년 넘게 그렸는데 아무도 안 사준다는 이유로 놔버리면

   나의 지난 생활은 다 어떻게 되는 거냐'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어쩌라고 ㅡㅡ. 내가 지금 다른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게 제일 낫다잖아'


8. 사실 이 책의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다.

   파티가 있었고, 파티가 끝났고 정도?

   그러나 그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이

   그리고 그것을 여과없이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태도가

   너무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

   ....그리고 누구 말마따나 설마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이 들기도 한다.


9. 의미, 무의미, 당위성, 개연성.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도

   잘 버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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