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라는게 진행되기 시작하면 일정한 방향과 속도를 가지고 진위여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모양을 형성해나가기도 한다.
뒤통수를 친 이는 그이대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나는 나대로 분이 가라 앚지 않아 새벽이면 벌떡벌떡 일어나 창밖을 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건 참으로 쓰라린 일이다.
사람을 믿지 못한다고 해서 살아가지 못할 것 까지야 없다.
그러나, 신뢰가 바탕이된 관계가 주는 잔재미와 정서적 안정감을 잃는다는 것은 나이 사십에도 적지 않은 손실이다.
하루종일 드라마를 쏟아내는 케이블채널을 보다가 몇년전 퇴사한 입사동기B와 통화를 했다.
피곤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한참을 얘기하고 들어주는 그녀.
까칠한 성격에 빈말 못하는 성격의 그녀가 한참을 듣더니 쓰게 웃는다.
직장다니는 여자들, 나이들수록, 일좀 할수록 늘 뒷통수를 조심하고 한수뒤를 경계하고 살아야 한다고, 나 빠지면 결국 죽도 밥도 안되게 정보나 업무를 공유하고 교육시키는 일따위는 절대 하지 말라고...
업무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유사시에도 업무는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던건 순진무구한 어린애의 사고였던것일까...
직장은 정글이 아니라고, 나는 직장에서 동료를 밟고 올라서는게 아니라 함께 평화로이 친구도 되고 선배도 되는 <관계>를 꿈꾸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믿음이 바람직하지 않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결론앞에 서 있다.
고양이처럼 발톱을 곧추 세운채 갈아야하나, 발톱을 흉기처럼 갈아두어야 하나, 마음이 자꾸만 독버섯처럼 얼룩덜룩해지는 가을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