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아빠가 금요일날 편도선수술을 한데다 비도 퍼부어대니 네식구가 꼼짝없이 방안에서 내리 뒹굴거렸다.

노는것도 잠깐이지 네 식구가 좁은 집안에서 복작대니 조금씩 말소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연우와 건우는 틈만 나면 낄낄거리며 사고를 쳐 놓고 엄마의 반응을 살피고, 어쨌든 수술후의 환자라고 죽 끓이랴 수시로 들여다봐주랴 3일연휴가 어느새 마지막이다.

 

빗줄기를 보며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는데 문득 청춘이 저렇게 쏟아내리는 빗줄기처럼 지나갔구나 싶다.

신록같던 이십대초반에 만났던 이들은 어디서 늙어가며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그들도 이 장마에 아픈이를 뒷치다꺼리하며, 혹은 아이들과 싸워가며 삼십대의 후반을 혹은 사십대의 초반을 보내고 있을까?

그들중 누구 하나의 마음이라도 온전히 받아들였더라면 오늘 이렇게 빗속에 아이들의 투정을 들어가며 죽을 끓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 맞춰 아이의 약을 먹이고 머리를 감기고 죽을 끓이는 가난한 일상속에 내 젊은날의 꿈이 풀죽어 무릎을 구부리고 있다.

 

내일은 평소처럼 기어이 아침 여섯시 반에는 공부하러 나가겠노라며 잠든 건우아빠의 등뒤로는 무엇이 있어 그를 저리 밀어대는 것일까?

그리고 내 등뒤에 붙어 나를 밀어대던 것들은 어느새 빗물처럼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이 장마가 끝나면 나는 또다시 이 생각조차 잊고 하루 삼십분의 여유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생활에 등을 내주고 밀려다니리라.

그러나 또다시 세월은 어느때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되어 떠밀리는 내 발목을 잡아 세울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걸음을 멈출때는 내 생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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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7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7-18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좀 서글프기도 하지만, 님의 차분한 의지가 느껴져요. 기운 내시길...^^

2006-07-18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7-18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속삭이신님 잘 주무셨나요? 날이 밝으면 또 이렇게 멀쩡해지는게 엄마의 힘이죠.. 님도 즐거운 하루보내세요^^
나어릴때님, 며칠을 줄창 비가 내렸는데 별일은 없으시죠..
이렇게 비라도 내려야 한번씩 뒤도 돌아보는거죠.. 님도 즐거운 한주 되시길...

치유 2006-07-1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페퍼를 읽을때는 커피 한잔 들고 서서
창가을 바라보며 깊은 맘속까지
다 털어놔 버리는 사람의 고독이 보이고,
아이아빠의 그 공부에 대한 집착이 보여요..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스런 장난이 보이고..
그리고..건우와 연우님의 엷은 미소..

댓글을 보니 아..햇살이 방긋입니다..
엄마들은 언제나 강해요..
밤엔 고독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정신도 멀쩡해지고
생활에 탄력을 받아서..방방 뛰며 열심히 살죠??
저도 그래요..
밤중의 그 고독은 어디로 가고
아침이 되면 바빠요..바빠..하며 방방 뛰고 나르고 있어요..
연우님..오늘도 웃음지으며 지내자고 살짝~~~!

씩씩하니 2006-07-1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보다는 늘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힘이 들지요..
죽,,,작년에 죽집 차려도 될만큼 죽을 끓였었는데...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네요,,,
힘내세요...그리고 꿈은 늘 새롭게 꾸는 맛이 있잖아요,,잃어버린 꿈은 잊고 새로운 꿈을 세울까봐요,,,,함께 화이팅하실래요,,왠지 저도 힘이 빠지는 날이에요..
화이팅!!

전호인 2006-07-1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간호 하시느라고 고생하셨겠네여.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푸하 2006-07-1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하루 8시간 노동을 성취하고 공동육아를 정착시켜야 할 듯.... 진지한 분들의 고민이 온 사회에 퍼지면 참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 2006-07-1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공동육아 정말 필요해요. 요즘 유치원은 뭐가 그리 비싸고 시간 제한도 많은지...유치원비용이 사립대는 아니어도 국립대 수업료보다 비싼것 같아요.ㅠㅠ
전호인님, 애들아빠가 워낙 엄살은 없는데요. 먹는걸 맘대로 못먹으니 좀 짜증이 나나봐요..^^
씩씩하니님, 그죠, 꿈은 새롭게 꾸는 맛이 있지요..조만간 새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요.^^
배꽃님, 아이아빠가 나이들어 다시 시작할수 있었던 몇 안돼는 일이 공부였던지라, 좀 열심히 하는 편이예요.덕분에 다른 많은 일들이 공부뒤로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럼 얄미워요..^^

카페인중독 2006-09-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은 이상하게 짠해요...
 
 전출처 : 치유 > 나도 이거 해 보고 싶다!!물만두님꺼.

 

여기다 올리리까^^;;;

저는 영원한 방콕족이라 집에서 선풍기 틀어놓고 책봅니다~

백조가 무신 피서~!!!

물만두님꺼 훔쳐와서 내꺼로 만들어도 내것이 안된다.

 저 퍼랭이만두가 지키고 있어서..

저 퍼랭이 만두 넘 이뻐서 어제부터 눈독들이다가 결국에 훔쳐 와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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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7-1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1012

이런 이런...!!@@

1000을 놓치다니..아깝지만..다음엔 10000을 꼭 잡도록 해 보겠나이다..


건우와 연우 2006-07-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배꽃님..아유 좋아라~

2006-07-14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7-16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새 열린 창문사이로 빗소리가 아우성을 쳤습니다.
속삭이신님 별일 없으시지요^^
요며칠 정신없이 바빴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새 일요일이네요.
비오는 주말이지만 온가족이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푸하 2006-07-1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지요? 어째 쉬는 날 비까지 오네요....

건우와 연우 2006-07-1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푸하님 어제까지는 정신이 없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여유가 좀 있네요^^
푸하님도 괜찮으신가요? 올 여름 빗속에서 많이 바쁘셨을텐데 장마에 건강하세요^^
 

아침에 나갈사람이 행선지를 대지않고 미적거리더니 나가기 직전에서야 아이들에게 흘려 말하는 것처럼 어디를 가노라고 말한다.

가는곳을 들어보니 멀리도 간다. 오늘중으로 들어올수 있을까?

그는 과거의 동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니, 나에게만 과거고 그에게는 아직도 현재다.

어제 그제 이틀을 내리 소주를 마시며 , 관계의 번다함이 논문에 미치는영향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던 그가 생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내리는 비는 유난히 번개가 잦고 천둥소리가 크다.  갑자기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에 베란다로 나가 내다보니  더러 놀란 사람이 있는지 빗속에 우산을 들고 서둘러 내다보는 이들이 간혹 눈에 띈다.

이 빗속에 그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리라. 형체도 잡히지않는 문제들을 의논하며...

가끔씩 그가 학위문제니 자리문제니를 놓고 고민하는것은 다만 생활상의 문제를 대부분 내게 떠밀어놓고 있는것에 대한 민망함의 표현일까?

그는오지 않는다. 오늘 오리라 말하고 갔지만 십중팔구 그는 오늘중으로 귀가하지 않을것이다.

그가 고민하는 운동의 대의를 나는 머리속으로 이해하나 존중하지 않는다. 그운동의 언저리에서 만났기에 차마 아귀다툼하듯이 그를 끌어내리지 않을 뿐, 가끔씩 고단한 현실은 수도 없이 손톱으로 그의 등에,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내라고 말한다.

비가 내린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그는 아마도 내귀에도 익은 이름을 가진 몇몇과 기약없는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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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0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1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매번 고맙습니다. 흉보면 안돼는데 제가 옹졸해서요...
그래도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치유 2006-06-1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좋은아침이지요??
옹졸해서 흉을 보시는게 아니라,애틋한 기다림과 사랑이 보여요..
오늘하루 웃으실 일만 생기시길,,바래요..^^.

로드무비 2006-06-1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혼자서 술을 드셨나요?^^

건우와 연우 2006-06-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핑계김에 와인반병마시고 확 퍼질러 잤습니다.^^
 

밤에 선잠을 자기 시작한것이 3주쯤 되었다.

체격으로만보면 인심좋은 후덕한 아주머니건만, 일년이면 서너차례 불면증이 되풀이되는것 같다.

뚜렷이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방법도 알 수가 없다.

문득, 사는게 발밑이 불안하구나 느껴지면 그날부터 오래든 짧게든 편안한 잠이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불면은 역사가 길다.

십년도 더 전에 철밥통 같았던 직장에서 노조간부로 일하다가 해고되던해, 해고보다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했던 인간관계속에서 느꼈던 절망감이 복직이후에도 늘 가시처럼 남았었다.

혹은 그보다 더 전이었을까.

대학입시만으로도 힘겨웠던 고3무렵 갑자기 몰아닥친 빚쟁이들과, 이제부터 무슨일이든 혼자결정하고 책임져야한다는 고립감이 손톱을 세우고 목덜미를 할퀴는 짐승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때 이후로 자리잡은 막막함.

혹은 그보다 더전에 강경쪽다리밑에서 너를 주워왔노라는 엄마와 언니들의 놀리는 말을 들으며 <어쩌면 나에게 불우한 성장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턱없는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어도 이유가 명확하지않은 이  불안감은 도무지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더빨리 내가 늙어지기를 소망한다.  나이먹으면 세월뒤에 웅크린 불안감이란 놈이 조금씩 익숙해지기도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그리하여 밤마다 햇솜같이 편안한 단잠을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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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0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가족이나 이웃에게 마음이 정말 따뜻한 분이시군요. 건우아빠가 이번에는 병의 주기가 짧아져서 통증이 빨리 가라앉았어요. 덕분에 밀린 공부를 하겠노라고 휴일에도 책싸들고 나갔어요.
아마도 님의 기도효험을 봤나봐요.^^
님도 편안하고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치유 2006-06-06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낮에라도 좀 주무셨나요?/
아이들 아빠의 통증이 빨리 가라앉아서 공부하러 가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님께서 간호를 아주 정성껏 하시고, 성의껏 죽끓여 대령하신 덕인가 보네요..

건우와 연우 2006-06-0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덕분에요. 어제는 잘 안자던 낮잠도 잤답니다.^^

카페인중독 2006-09-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고보다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했던 인간관계속에서 느꼈던 절망감이 복직이후에도 늘 가시처럼 남았었다.' 밑줄긋기 하고픈 심정...^^ㆀ
 

제사끝에 건우아빠가 목구멍안쪽이 헐고 열이 나기 시작한다.

연우낳을 무렵에 발병한 건우아빠의 병은 완치가 되지 않은채 올해로 7년째다.

매일 아픈건 아니지만 재발하면 한달여를 입안이 헐고 관절이 붓고 고열이 오르내린다.

그와중에 그는 간간이 강의나가고 공부하고 옛동료들을 만난다.

그의 표현으로 당장 죽는병은 아니고  아프고 완치되지도 않지만 관리가 가능한 병이니 어쩔수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딴에는 면목없음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리라.

그도 그럴것이 연우낳을 무렵, 나는 직장생활에도 지쳐 있었지만 돈도 안돼면서 몇주씩 밥먹듯이 외박을 요구하는 그의 직장아닌 직장생활에 신물이 나 있었다. 

건우와 둘이 잠든 밤에  이상한 협박성 전화라도 걸려오면 심드렁하게 받아넘기는척 했지만  아침까지 선잠으로 지새야 했다.

그해 나는 낳지도 않은 아이를 몇번이고 죽였다. 그리고 그해부터 시작된 건우아빠의 병은 그렇게 태어난 연우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그의 병이 익숙해졌음일까? 건우아빠의 통증에 익숙해진만큼,  건우와 연우는 철이 들었다..

그는  병을 나에게 상의하지 않는다.  나역시 묻지 않는다. 내가 묻지 않는 것은 아직도 정리하지 않는 그의 일에 대한 서운함의 표시다. 그가 내가 정한 의미를 알든 모르든...

 

오늘 아침엔 입안이 헐어 밥을 먹지 못하는 건우아빠를 위해 따로 깨죽을 끓였다.

늘 먹는 밥에 물렸던 탓일까, 생전 죽을 입에도 대지 않던 아이들이 맨밥을 물리고 죽그릇에 달라붙어 아침부터 죽을 두번이나 데웠다.

볶은 찹쌀이 참깨와 함께 물속에서 넓게 퍼져가는 것을 보며, 이제 그의 병도 이렇게 퍼져 가족처럼 익숙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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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6-02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리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모든 가족이 짊어지고 가는.......
아...건강하셔야 하는데 말이죠..^^ 힘내세요~!

치유 2006-06-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ㅠㅠ연우가 그렇게 컸군요..
그래도..보실때마다 안스럽겠지만 그래도 잘관리하시고 건강해 지시겠지요..
빨리 회복하셔서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셨으면..하고 바래봅니다..

물만두 2006-06-0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건우와 연우 2006-06-0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메피님, 배꽃님 그리고 만두님
사실은 이제 익숙해져서 많이 덤덤해요. 아픈사람이 속으로 서운해할지도 모를 정도로요... 그리고 언젠가 저절로 나을지도 모르지요(희망사항)
모두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6-06-03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지 짠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글입니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그 아픔은 생생하고 고스란히 또 아픈 것일 텐데.
빨리 깨끗이 나으시길 빌게요.

건우와 연우 2006-06-0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고맙습니다. 어차피 쉬 낳지 않을거라서 그냥 친구처럼 생각해요. 썩 반갑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