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의 연인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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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 영화 '알렉산더'를 보고 주인공의 캐릭터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록산으로 나온 여배우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기대만큼 압도하지 못한 영화였지만, 인물 알렉산더를 아는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알렉산더의 연인'이란 제목을 보고 '록산' 이야기일까 싶어 서평단에 신청하였고, 운 좋게도 서평단으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서평단의 의무를 이행하기엔 만만치 않은 책 읽기였다. 도통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몰입을 방해하는 이유가 뭘까? 책을 읽는 내내 빠져들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지, 책이 문제인지...... 이런 상태로 중반부에 들어서자 드디어 실마리가 풀렸다. 바로 화자가 문제였다.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타냐, 즉 아냐라는 알레스트리아의 시녀이자 서기이고 자매인 그녀의 입으로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왜, 작가 샨샤는 본인이 아닌 제3의 화자를 내세워 같은 이야기를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가게 했을까? 이런 화법이 상당히 지리하게 전개되었다.

샨샤라는 작가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에 난 100% 공감하지 않는다. 아마도 동양여자가 최고의 언어라는 프랑스어로 책을 썼고, 동양이란 신비감에 매력을 느끼는 유럽인들이 후한 점수를 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 몰입하지 못하면서도 그녀의 문장력엔 찬사를 보냈다. 상당히 깔끔한 문체를 매력적으로 구사하고 있었다. 밑줄을 치고 싶은 곳이 많아 색연필로 그어가며 읽었다.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프랑스어로 완벽한 문장을 썼을테고, 번역을 기막히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정복자 알렉산더와 아마존의 여전사 알레스트리아가 운명적인 만남을 하면서 스토리는 쉽게 읽혀졌다. 이 얘기를 하자고 이렇게 빙~ 에둘러 왔는가 약간의 허탈감을 느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들만 취하게 된다.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의 사랑을 지켜보는 아냐의 심정이 그랬고, 두 연인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이 그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럴 것이다. 정복자 알렉산더도 수컷의 본능에 충실하게도 아들을 낳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으니 그 무엇이 다를까? 또한 알레스트리아도 아이를 잉태하고 모성의 본능에 충실했으니 인간의 한계이자 본분이라 여기기에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소설의 결말은 영혼까지 하나가 된 온전한 사랑을 완성하고 삶을 마감한 연인의 이야기로 아냐가 마무리 한다.

영웅의 삶이 아닌 인간 알렉산더의, 성장배경에서 기인한 인간적인 욕망과 야망을 그려낸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너무 산만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소재에 적절하게 가미된 성적환경과 묘사가 독자를 끌어당길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명성에 충분히 공감할만큼의 책은 아니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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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된 할아버지 책읽는 가족 52
문영숙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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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변에 치매노인 때문에 고생하는 가정들이 늘어간다. 이제 남의 불구경하듯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치매노인을 위한 지원을 한다니 이런 복지사회가 구현될 때 우리도 제대로 된 선진국가가 되리라 기대한다.


그림이 참 독특하다. 맘껏 펼쳐놓지 않고 빼꼼히 열린 방문 너머로 살짝 보여준다. 징채를 잡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징을 빼앗느라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나 고두실로 가야 한다며 잠옷 바지에 윗저고리만 입은 할아버지가 방문을 나서는 모습은 엿보기가 민망스럽다. 치매노인의 문제는 이렇게 확 드러내놓기가 어렵다. 아무리 잘 모신다 해도 공이 없다. 치매노인을 돌보는 일이 며느리의 몫이 된 버거움에 엄마는 잠시 가출한다. 아들이나 딸보다 며느리들이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라 충분히 공감이 간다.


찬우엄마의 가출 이후 아빠나 고모도 미안하다면 몫을 나눠 감당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할아버지와 한방을 쓰며 말동무와 잔심부름 하는 찬우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할아버지에 대해 귀찮은 생각이 스멀스멀 스며들기 때문이다. 또 엄마나 아빠가 늙어 치매에 걸린다면, 과연 나는 엄마나 아빠처럼 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와 솔직한 찬우 마음을 들여다 본 독자도 편하지 않다. 누구도 치매노인을 잘 모신다고 자신할 수 없고, 나한데 왜 이런 상황이 주어졌을까 원망하고 싶을 것이다.


지친 가족들에게 찬우는 해답을 제시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할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드리자고. 찬우의 말에 동의한 엄마는 한시름 놓는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우리 이웃의 치매노인과 다를 바 없을 텐데, 징소리에 집착하는 할아버지에게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하기에 이 작품은 빛을 발한다.


일제강점기 증조할아버지가 산속 움막에 숨어 방짜 징을 만들어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징을 할아버지에게 전하고 일제에게 발각돼 죽임을 당한 증조할아버지의 한을 어찌 잊겠는가! 시대의 고난과 개인의 아픔에 맞물려 징소리에 집착하는 할아버지가 눈물겹다. 물속에 잠긴 고두실을 바라보며 원 없이 징을 친 할아버지는 한을 풀고, 할아버지를 이해한 가족들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늘의 이치를 깨우치는 징소리에 집착하는 할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아기를 돌보듯 할아버지를 돌보는 엄마를 통해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의미도 제대로 깨닫는다. 며느리지만 할아버지를 돌보는 그 마음은 바로 위대한 모성이었다.


102살까지 사신 시할머니를 모시느라 평생을 며느리로만 살다 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나 많이 눈물났다. '만약 우리 부모가 치매에 걸린다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찬우와 엄마를 통해 끊임없이 내 마음까지 저울질당해 얄밉도록 불편했지만, '아기가 된 할아버지'는 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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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를 아십니까 책읽는 가족 53
장경선 지음, 류충렬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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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암리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에서부터 가슴을 후려치듯 독자를 제암리로 끌어들인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일본인 소년 나카무라의 눈과 마음으로 서술하여 객관적 거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응어리진 한은 민족적 울분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성큼 앞서갈 수 있다. 그러나 울분을 누르고 마지막까지 나카무라와 동행하고 얻은 위안은, 어쩌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소수의 일본 지식인들이 바로 소년 나카무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나카무라에게,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너희 나라가 지은 죄를 낱낱이 세상에 알려'라는 연화의 말처럼, 잘못을 인식한 소수의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사죄하지 않는가! (3.1절이나 광복절에 특집으로 방송되는 것을 보았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연화 할아버지가 사사까에게 당당할 수 있었던 정신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건 높은 양반들이었지만, 이 땅을 지켜내는 건 높은 양반,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땅의 참주인인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는 정신이 바로 우리의 힘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곳곳에서 목숨을 바친 민초들의 정신과 희생이 이 땅을 지킨 것이다. 바로 제암리 사람들처럼......

2003년 10월, 고향 가는 길에 발안 톨게이트를 빠져 1~2Km 정도 갔을 때, 왼편으로 제암리기념관이 보였다. 일정을 잠시 뒤로 미루고 그곳에 들러 전시된 자료를 둘러보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조정래님의 '아리랑'을 두 번째 읽는 중이어서 더 많이 울었고, 아이들에게 아픈 역사를 제대로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들었다. 책을 읽고 역사현장을 돌아보는 것, 자녀에게 살아있는 역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 부모들의 몫이다.


초등 고학년들이 역사를 배울 때 '제암리를 아십니까'를 반드시 읽고, 제암리 교회와 기념관을 가보고 이 말씀을 새기면 좋겠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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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책들과 보물창고에서 6기 신간평가단을 모집합니다!
    from 파피루스 2008-02-01 00:31 
    2006년 이금이작가님 '밤티마을 블로그'에서 푸른책들의 신간평가단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했었죠. 리뷰라는 걸 써보지도 않았지만, 나름 동화를 많이 읽었기에 용기를 냈었답니다. 다행히 3기 신간평가단으로 뽑혀 지금까지 우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그 덕분에 알라딘도 알게 돼서 이제는 제 놀이터가 되었지만...  신간평가단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해 보시라고 알려드립니다.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서 제가 응모할 때 올렸던 '유진과 유진
 
 
 
어린이책 함께 얘기해 봐요!
할아버지의 눈으로 이야기 보물창고 4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신형건 옮김, 데버러 코건 레이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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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눈으로'  파스텔톤의 표지가 많은 이야기를 담은 듯하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할아버지네 집이 가장 좋다는 소년을 따라가 본다. 화려한 색깔이 배제된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속삭인다. 한장 한장 읽어가며 잠시 눈을 감고,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워본다. 책을 읽고 나서 실험적으로 눈을 감고 길을 걸었는데, 뻔히 아는 길도 불안감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두 눈으로 세상의 빛깔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독특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바로 마음의 눈으로...... 그런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손자는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 보는 법을 배운다. 시각은 잃었지만 더 많은 감각과 마음으로 느끼는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아주 따뜻하게 펼쳐진 색감의 그림이 할아버지와 손자의 세상보기를 소곤소곤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이 있습니다'가 생각났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기피현상이 많이 달라지는 중이다. 동화나 문학, 영화와 음악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눈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나가니  참 좋은 현상이다.


할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는 손자처럼, 우리도 따뜻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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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가족 책읽는 가족 46
배봉기 지음, 박지영 그림 / 푸른책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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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가족'이라니~~~~~과학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쓰듯, 가족을 관찰한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가족이 함께 실험한다는 얘기일까?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이라며 6학년 우리 막내가 주절거리던 말이다.

제목에서 풍기듯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기 전, 실험기간을 둔다는 얘기였다. 표지에서 보듯이 맞잡은 손이 무색하게 외면하고 있는 아이들이 바로 문제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 어른들-아니 부부의 결정에 따라 이혼을 하든, 재혼을 하든 아이들은 따라가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열쇠를 아이들이 쥐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외국에 나가 있는 남편의 외도를 용납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은 남편을 산뜻하게 보내주는 영수엄마의 태도는 흔치않은 모습이다. 물론 아이에게도 아빠를 이해하라며 비난하지 않는 성숙한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으니, 이런 의미에서도 실험가족은 참신하게 다가왔다. 주변에서 우리가 보는 모습은 이런 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또 이혼한 배우자에 대해서도 비난 일색인 것을 대부분 경험하지 않는가!


아내와 사별한 민호아빠는 영수엄마와 대학 연극반 선후배로 막역한 사이다. 서로 가까워지면서 재혼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런 순서다. 같은 학교 6학년인 영수와 민호에게 가족이 될 수 있는지 3개월의 실험기간을 갖자고 제안한다. 물론 너희들이 어떤 결정을 하던 그대로 따르겠다는 약속을 한다. 어른들의 자연스러움에 반해 어색함으로 시작된 아이들의 가족 되기는 만만치가 않다.


3개월까지 견딜 수 없어 친구들에게 부탁해 민호를 때리게 하고, 동거가족을 과감히 깨 버리는 영수. 같은 마음이었기에 침묵으로 동조하게 된 민호. 두 녀석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며 시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뭔가 편치 않은 느낌이다. 활력을 잃어버린 엄마를 바라보는 영수나, 침묵하는 아빠를 지켜보는 민호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갈라지고 나서 비로소 빈자리를 느끼는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화해를 시도한다. 그리고 도중에 끝나버린 실험가족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영수엄마의 생일잔치를 멋지게 계획한다. 정말 멋진 녀석들이다!

드디어 친구가 된 아이들을 이해하고 실험가족을 위한 차 마시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실험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네 쌍 중 한 쌍이 이혼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거기에 사별한 가정까지 합한다면 새혼 가정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입양이 동화의 단골소재가 되었듯이 한부모 가정이나 새혼 가정도 동화에 깊숙이 자리매김 되었다. '실험가족'이 아이들의 뜻을 존중하며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기간을 둔다는 설정은 참 바람직한 모습이다. 새혼 가정을 꿈꾸는 사람들이 시도해보면 문제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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