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조조할인을 받기 위해 서둘러 콜롬버스를 찾았다. 디 워, 미스터 빈, 조디악 중에서 원어민강사 버논이 선택한 영화는 '조디악'이다~~~우리는 귀가 열려있어도 자막을 보느라 정신없는데, 버논은 모처럼 자기네 말을 실컷 들을 수 있어 좋겠다~ㅎㅎ(엄청 부러웠다는... )

하여간 킬러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공포의 대상이다, 이 영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킬러가 사뭇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영화는 스릴러의 장점인 박진감을 표출하지 못하고 지루함과 졸림까지 선사한다. 아흠~~~졸려~~~ 우리의 '살인의 추억'에는 훨씬 못 미치고, 최근의 '검은집'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너무나 자세히 등장인물들의 동선까지 다 보여주는 편집이 영 맘에 안 든다. 예전에 한반도의 구성도 이래서 맘에 안 들었는데... 아무튼, 사건을 추적하고 수사하는 형사들이 느끼는 절망감,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없거나 증거물과 용의자가 일치하지 않는 벽에 부딪힘은 그런대로 전해진다.

이런 절망감과 장기화된 사건이 사람들에게 잊혀지듯, 다들 조디악 사건에서 손을 떼고 있을 때, 아무도 하지 않기에 나라도 한다며 어리버리 저능아란 별명이 붙은 삽화가 '그레이스미스'가 나선다. 사건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보이스카웃 경험을 바탕으로 암호도 해독하고 나름대로 사건 추이를 짜맞춰가는 모습이 진지하다.

1969년 7월 4일 일어난 살인사건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히는 편지를 샌프란시스코 3대 신문에 싣지 않으면 살인이 계속될 거라는 협박은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데, 전개가 너무 지루하게 펼쳐져 흥행은 보장할 수 없다. 120분이면 충분할 영화를 153분으로 만들어 15세 등급이니 대략 짐작되시죠? 영화리뷰를 써 보라는 나의 말에 남긴, 버논 캐스카트의 감상을 옮기니 영어가 되시는 분들은 해석 좀 해 주시죠! ㅎㅎ

Zodiac - Fincher fails to thrill in this potboiler

The thriller by David Fincher, set in 1970's California, revolves around the decade long search for a killer in the Bay area. Actors Jake Gyllenhall and Robert Downey, Jr are convincing in their roles as pursuers of the truth but nothing can save this drawn-out yarn that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In his endeavor to convey the anxiety of life during this very thrilling time, Fincher fails misera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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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실망이 컸던 영화였습니다. 저 역시 졸려서 죽을 뻔 했습니다. 예고편에 낚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어요.ㅜ.ㅜ

순오기 2007-08-2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죠? 스릴 없는 스릴러!
발자국 꾸욱~ 찍어주셔서 감사 ^*^
 

어젯밤 아홉시에 새까맣고 잘 생긴 청년이 왔습니다.
서울로 데리러 간 교감샘께서 흑인이라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하셨더군요. 흑인이면 어떻고 백인이면 어떻겠어요. 본인이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홈스테이 말이 나왔을 때부터 왠지 흑인일 것 같은 예감에 아이들한테 미리 말했거든요... 저, 돗자리 하나 깔아야되겠어요~ㅎㅎ

미국에서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으면 검증된 사람이라는데, 딱 보기에도 착하고 범생이 같아요. 이름은 '버논 캐스카트(Vernon Cathcart) 22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하고,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왔답니다. 고려대에서 3주, 경원대에서 1주 한국어와 한국을 배웠다는데 한글도 잘 읽는군요. 우리에게 말도 잘 걸고 아주 귀엽게 굴어요. 좋아하는 한국가수는 슈퍼주니어와 비라는데, 역시 젊음은 국경도 초월합니다!

어젯밤엔,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을 달라기에, 영어로 된 '광수생각'을 주었더니 펼쳐보며 웃더군요. 웃음은 만국 공통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독자들을 열광케 한 해리포터를 주었는데, 해리포터는 안 읽었다는군요.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김밥, 비빔밥, 떡, 유과...' 라고 하기에, 아침엔 김밥을 쌌어요. 쇠고기 돼지고기는 안 먹고 닭고기 오리고기는 먹는다기에, 점심엔 감자 넣고 닭볶음을 했더니~마치 어린 아기 음식 먹듯, 아주 아주 작게 잘라서 먹는군요. 많이 먹지는 않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는 넘치게 합니다. 점심엔 설거지까지 하겠다는데, 괜찮다 했더니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었네요.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진짜 귀여운 강아지 같아요.

어머니는 44세, 아버지는 46세, 돌 지난 여동생이 하나 있다는데, 우리 부부가 나이도 몇살 더 많으니 아들 하나 양자 들였다 생각하고, 가족처럼 편안하게 한 일년 부대끼며 살면 ~~ 뭔가 답이 나오겠지요?

광주에선 초등 한 곳, 고등학교 한 곳, 중학교 두 곳이 원어민 강사 지원받았더군요. 정말, 우리 아들이 복있는 녀석입니다. 작년에도 원어민 강사가 있어 일주일에 한번씩 수업 받았는데, 듣기가 좋아진듯 녀석의 영어가 통하긴 하네요. 엄마는 단어 하나로 소통하는데... ㅠㅠ

기숙사에 있는 큰딸이 올 때까지는 이 녀석이 우리집 통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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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촌이 형성되었군요.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연과 감동이 싹을 틔울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

비로그인 2007-08-18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쌰 화팅입니다 !!!
저도 전에 아프리카 어디더라... 암튼 어디서 온 외국인 노동자 봉사를 좀 한 적있는데
그때 기억이 참 많이 남아요. 서로들 좋은 인연으로 오래가시기를요 :)

순오기 2007-08-2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국 찍어주신 마노아님, 체셔고양이님 감사해요.
이제 딱 일주일인데, 콩글리쉬라도 제법 통합니다~ ㅎㅎ
어떤 상황이고 무슨 말이 필요한지 알기에 한 단어만 귀에 들어와도 알게 되는군요 ^*^
 

지난 수요일(8일), 중학교 2학년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괜히 죄송스러움에 주눅이 드는 마음은 나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한번 찾아뵈야지 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방학을 맞았으니 더욱 민망하였다. 선생님은 어려운 부탁이 있다시며

"학교의 원어민 강사를 1년간 하숙해 달라"

는 요청이었다. 헉~~~ 내가 일을 하며 나름대로 바쁜 사람인지라, 학기 초 가정방문도 전화로 하신다는 선생님께서 이런 부탁을 하시다니?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어, 아이 아빠와 상의하겠다 우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자녀를 위한 교육열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쏘냐!

우리의 사생활이 침해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과 식사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음에선 '예, 선생님!' 소리치고 있었다. ㅎㅎ~ 대부분 1,2층에 상하방(윗 지방의 미닫이로 나눈 방을 부르는 말)이라는 곁방을 두어 세를 놓는 전라도의 가옥구조를 무시하고 지은 우리집은 1층을 우리 가족이 다 쓰는지라 사실 세를 놓거나 하숙을 치기에 좀 그런 환경이라 전화를 드렸더니, 오히려 그런 조건이 원어민은 한국 가정을 알 수 있고 아이들은 대화를 트기에 더 좋은 환경이란다.

하여간 이래서 일사천리로 홈스테이가 결정되고 17일부터 사람을 들이기 위한 준비를 진행중이다. 지은지 17년이나 된 우리집은 팔려고 집에 돈을 들이지 않아 화장실 타일도 떨어지거나 다시 붙인 자리가 엉망이라 남을 들이기엔 영 민망한 환경이다. 더구나 외국인에게 한국의 가정을 보여줘야 하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화장실 리모델링 하기로 했다. 토요일 걸음품을 팔아 타일 전시장에 가서 고르고 기술자를 섭외하여 오늘 드디어 깨끗하게 마무리했다. 내일은 원어민이 쓸 방을 새롭게 도배 장판하고, 침대와 책상을 들이고 커튼과 침구류를 준비하면 대충 끝난다.

이런 와중에 드는 생각은 환영 이벤트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현관이나 방문에 풍선이라도 걸고 '웰 컴 투 000' 이런 환영문구라도 붙여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리고 일단은 바디랭귀지로 소통하겠지만, 말을 붙이려면 뭔가 예비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다니 미국이란 나라는 다 몰라도 거기라도 알아두자.'

그래서 다시 펴든 책,  

이원복 교수와 함께 만화로 보는 미국역사와 영어이야기 '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 에서 노스캐롤라이나를 찾아 '예습하자 예습을 하자~ '중얼대는 중...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사지 않은 미국편 3권을 내친김에 질렀다. 홈스테이 가정의 기본 매너가 이쯤은 돼야할 것 같아서......ㅋㅋ

                    

 바디랭귀지를 벗어나기 위해 지른 책 하나 
'센스 영어회화 기본표현'


 
하나 더,

'영어울렁증 완전극복처방전Sense English'
 

 

 
집 단장과 기타 준비로 1년간 받을 하숙비의 절반이 들어갔지만, 우리 삼남매가 원어민과 친해지고 영어의 물꼬가 트인다면 충분한 보상이 되리라 생각하며 즐겁게 준비하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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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8-2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용기있는 결정이십니다. 저라면 상상도 못할듯^*^ 좋은 결과 있으시길~~~

책향기 2007-08-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어요. 남들은 돈 들여서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려 애쓰는데 하숙비 받아가며 원어민과 생활할 수 있다니!! 나중에 이 서재가 온통 영어로 바뀌는건 아니겠지요??^^

순오기 2007-08-2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책향기님~~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요즘 실감하는 중입니다. 근데, 엄마만 용기 백배지~ 애들도 아빠도 별로 말을 붙이지 않아서... 내가 하는 시집살이가 제값을 하려나 모르겠습니다. ㅠㅠ
차츰 사진도 올리고 '버논'에게 뭔가 한마디씩 끄적거려 달라고도 해야겠어요!
기대하세용^*^
 
토지 - 전21권 세트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 3월 10일 수요일 오전 10시 37분...

'토지' 21권 읽기에 도전한 40일간의 독서가 마감된 시간이다.

그간 혹사당한 눈과 허리와 머리를 쉴겸 잠시 누웠다.

아~~~~~~~~~~감동~~~~~~~~~~떨림~~~~~~~~~~~~~



1897년부터 1945년 해방의 그날까지

하동 평사리에서 서울과 간도, 일본을 넘나들며

600여명의 등장인물을 뒤엉켜진 실타래를 풀듯

풀어나간 위대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토지'에서 만나는 인물들, 그리고 역사관...

'박경리' 그녀는 역시 대가였고 위대하다~~~~~~~


2001년 11월 11일, 일명 빼빼로데이였다.

하동 평사리에 최참판댁을 복원 조성하고

제1회 토지문학제 시상식이 있던 날~

광주시교육청에서 주관한 각급학교 어머니독서회를 위한

문학기행으로 나는 그 곳에 가서 박경리씨를 보았다.

당당하게 늙은 여장부 박경리씨의 모습은

함께 온, 옹색한 촌부같았던 박완서씨와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아~ 나도 이담에 저렇게 당당하게 늙을 수 있을까?'


2002년 1월 새로 출간된 '토지' 21권을 사 놓고도

손대지 못하다가 2년 만에 읽기에 도전하여 40일만에 끝낸 감회...

400여쪽의 책을 하루에 혹은 이틀만에 읽어내느라

밤을 새워가며 읽노라면 눈이 아파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는

불을 밝힌채 잠들기도 서너 차례...

날 새우고 살짝 잠들어 아이들 학교 지각시킬뻔 하기도 두어 번...


토지 읽기를 끝낸 혼자만의 감동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

작가가 25년간에 걸쳐 써 낸 작품을 40일만에 읽어내고 뭐라하기엔

송구하기도...감동을 좀 더 숙성시킨 후에 나만의 감상을 기록하고자 한다.

하지만, 읽는 동안 손에서 내려 놓을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었다.

토지를 향한 우리 민족의 그 뜨거운 사랑, 집착.......아니 땅은 그들의 목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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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경리 선생을 기리며......
    from 파피루스 2008-05-06 06:07 
    내가 토지를 처음으로 접한 건 TV드라마였다. 최수지가 '최서희'역으로 나왔던...  그리고, 21권으로 완간된 책을 산 건 2002년 1월이었고, 그 책을 완독한 건 2004년 3월 10일 수요일 오전 10시 37분이었다. 40일만에 토지 읽기를 끝낸 감동은 굉장했었다. (먼댓글) 내가 박경리 선생의 이름을 들은 건 중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린 작품, 그것도 제목만 실렸는데 '파시'와 '김약국의 딸들'이었
 
 
비로그인 2007-08-1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7권을 읽고 있는데 올해 안에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만만치 않은 두께와 더불어 우리네 삶이 진하게 녹아있어 마음이 아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질 않습니다.

마노아 2007-08-1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 할 명작이라고 생각하면서 선뜻 손이 가질 않아요. 너무 길어서 말이죠ㅠ.ㅠ
저 대하소설을 40일만에 마치시다니, 순오기님도 대단하십니다^^

뽀송이 2007-08-1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방대한 소설을 완독 하시다니 놀랍습니다.^^
짝짝짝!!!! 멋지세요.^.~ 추천!!!

순오기 2007-08-2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위대한 작품은 독자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 같아요~ㅎㅎ
저도 책을 사놓고도 2년이 지나 읽기에 도전했으니 말예요~~ 정말, 완독하고서 출렁였던 그 감동은 지금도 생각하면 머리끝이 쭈삣하답니다.
 
도깨비와 범벅 장수 옛날옛적에 4
한병호 그림, 이상교 글 / 국민서관 / 200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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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이야기 중에는 도깨비를 소재로 한 것이 많다. 내가 어려서 충청도 산골에 살때, 달빛도 숨어버린 밤길 묘지 옆을 지나려면 도깨비가 나올까봐 등골이 오싹했던 경험이 있다. 으시시~~그러면서도 할머니께 도깨비 얘기해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아슴프레 떠오른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정서를 모르고 사는 불쌍한(?) 아이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엄마나 선생님들이 우리 옛이야기를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에 다 큰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읽어준다. ㅎㅎ~

이상교님의 글과 한병호님의 그림으로 나온 국민서관의 '도깨비와 범벅장수'는 세로줄 쓰기로 되어 오른쪽부터 읽어야 하는 낯섦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림도 우리 민화적인 요소들이 잘 드러나고 한지에 그린듯한 색감이 한국화 한편을 보는 듯하다. 읽어주며 그림을 보여주니 상당히 신기한 듯 바라보던 녀석들의 눈길이 정겨웠다. 유치원이나 저학년 아이들이나 보는 그림동화라 여기지만 고학년은 그 나름의 눈높이에 따라 소감이 다르다. 오늘 우리 막내가 독서록에 쓴 글이다.

은혜 갚는 사람이 되자 - '도깨비와 범벅장수'를 읽고,     6학년   선민경

이 책은 영리한 범벅장수가 도깨비를 속여서 한 재산 모아 떨떵거리고 산다는 전형적인 옛이야기다. 책에서는 범벅장수가 영리하다고 했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범벅장수는 도깨비에게 호박범벅을 팔아 큰 돈을 받자 범벅을 팔지 않았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범벅을 다시 먹을 수 있을지 궁리하는 도깨비를 속여 농사도 풍년을 맞는다.

범벅장수는 도깨비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 재산이 늘어나자 입을 싹 닦고는 도깨비들에게 호박범벅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부자가 됐으니 도깨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호박범벅을 만들어 줄수도 있었는데, 도깨비들에게 은혜를 갚지 않은 것이다. 범벅장수는 분명 영리했지만 고약한 마음씨를 가졌다. '결초보은'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은 꼭 은혜를 갚아야 한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고 냉큼 입을 씻어버리는 행동은 정말 동물만도 못하다. 사람들이 자기가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을 때, 우리 사회는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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