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세 곳의 작은도서관 일을 보게 되어 정신없이 달렸다.
어제 일요일 18시 청소년기자학교 프로그램을 마지막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다.
올해에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되돌아보면서 갈무리한다.
아이디어컨퍼런스에서 우리지역 작은도서관 연합회가 사업지원을 받아 소식지를 발행한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여 책소개 코너를 맡았는데, 창간호에 싣게 될 추천도서 원고다.
<나는 바람이다 1.2> 김남중/비룡소/2013. 9. 20
우리와 같이 광주에 사는 김남중 작가는, 2년 전 강연에서 '하멜표류기'를 읽고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꼼꼼한 자료준비를 위해 하멜의 탈출경로를 따라 여행하며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드디어 책이 나왔다. 만약 하멜과 같이 떠난 조선아이가 있었다면 앞선 유럽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상상력으로, 17세기 조선에 억류되었던 하멜과 열세 살 소년 해풍이를 주인공으로 해양동화를 빚어냈다.
'나는 바람이다'로 시작되는 작품은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배가 좌초되어 전라좌수영에서 살게 된 하멜일행과 얽히 해풍이네 가족이야기가 펼쳐진다. 빨간수염, 빨간털쟁이로 불리던 그들의 조선찰출 계획을 알아챈 해풍이는 몰래 배에 숨어들었고, 항해의 모험과 일본에서의 어려움이 더해진다. 17세기 카톨릭을 등에 업은 스페인과 포르투칼 상선들이 일본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했다. '기리시딴'을 처형하며 기독교 전파를 막은 일본 기독교 박해 역사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 도공들을 같이 엮어나간 솜씨가 돋보인다.
조선에서 13년, 일본에서 2년의 억류생활을 끝내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 일행의 여정을 따라 바다에 무관심했던 우리가 좀 더 일찍 해양에 눈을 떴더라면 통 큰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대륙이이나 바다를 중심으로 봐도 변방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지만, 현대 청소년들이 더 넓은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을 읽어내는 건 독자의 몫이다.
2004년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 부문 대상 수상작 '기찻길 옆동네'는 1977년 이리역 폭발사건과 80년 5월 광주를 한 줄로 꿰어 쓴 작품이고, 5월의 진정한 용서를 그린 '연이동 원령전' 자전거여행으로 가족의 화해를 시도한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김남중 작가의 대표작이다.
<피카이아> 권윤덕/창비 2013. 7. 20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실제로 진행되었던 키스(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에서 착안한 제법 글밥이 많은 그림책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생물체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1. 반지하방에서 할아버지와 사는 상민이와 바퀴벌레 - 친구들과의 어울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모순과 불공평을 생각함.
2. 성적만 관심 있는 엄마, 학원을 뺑뺑이 도는 미정이와 스트로마톨라이트 -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지만 함께 살도록 진화된 인간,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억압과 자유에 대해 생각함.
3. 관심 받지 못하고 성폭력에 노출된 윤이와 고양이 - 자존감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는 사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생각함.
4. 정리해고 위기에서 복직된 채림이네 가족과 흑두루미 - 일감과 월급을 나누며 문제를 해결한 노조, 가족의 힘과 사회를 바꾸는 힘을 생각함.
5. 육식을 즐기는 강안이네 가족과 돼지 - 인간도 동물이고 자연이라는 명제로 살처분된 돼지와 육식문화를 생각함.
6. 엄마 없는 아이 혁주와 피카이아 - 엄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왜 우월하지 못한 피카이아가 살아남아 인간의 조상이 되었는지 생각함.
개인문제, 가족문제, 학교문제, 회사문제, 도덕성 문제, 문화적인 문제 등 우리 사회에 산재한 무거운 문제들을 알아야 된다고 들려주는 작가의 목소리, 어떤 문제도 못 본 척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시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자는 작가의 열정이 느껴진다. 어른이 먼저 읽고 토론하면 좋을 책이다.
일상의 문제를 충격적으로 맞닥뜨리게 한 그림은, 우리가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나를 깨닫게도 한다. 작가는 더 불온하게 그리려 했지만 의도했던 것보다 착한 그림이 되었다고 후기에 적었다. 분명히 충격적이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놀람을 진정시키고 위로도 하는 따뜻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