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아름다운 전라도말 대회에 네 식구가 구경갔다가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더니 1박 2일에 유홍준 선생님이 나왔다.

우리 가족은 '나는 가수다'를 시청하기 때문에 1박 2일을 잘 안 보는데, 채널이 KBS에 맞춰져 있어 보게 된 것이다.

작년에 유홍준 선생님과는 부여답사와 보길도 완도 답사까지 함께 해서 친밀한 느낌에 와락 반가웠다.^^

혹시 어제 못 보신 분들은 재방송을 놓치지 말고, 다음 12일에도 이어서 나온다니 꼭 챙겨보시기를...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mydapsagi/100150078228

 

 

 

어제 방송을 보면서 가장 큰 수확은, 경복궁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중국의 자금성 규모에 기죽어 스스로 비하하는 못난 생각을 단번에 날려 버린 것! 물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을 읽은 독자라면 자금성에 기죽기는 커녕 경복궁에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역사공부를 이렇게 현장을 찾아다니며 한다면, 달달 외우는 공부로 생각하는 부작용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1박 2일 멤버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재미를 더하려고 퀴즈를 맞춘 멤버에겐 조선시대 화폐였던 상평통보를 상으로 줬고, 자기가 가진 엽전의 가치만큼 점심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 이승기는 아는 게 제법 많았는데 이수근이 대박났고.ㅋㅋ

 

  사람들은 은연 중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해 축소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금성이 완공된 것은 1420년이고 경복궁이 완공된 것을 1935년이니, 경복궁이 25년 먼저 지어진 것이다.

  경복궁의 중요한 특징이자 자금성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위치설정(location)이다. 자금성은 건축디자인의 기본취지가 위압감을 주는 장대함의 과시에 있다. 이에 반해 경복궁은 우리나라 건축의 중요한 특징인 주변환경, 즉 자연과의 어울림이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건축미학 자체가 다른 것이다. 주변의 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경복궁처럼 훌륭히 이루어낸 건축은 세계에서 드물다. 우리 경복궁은 어느 시점에서 보아도 북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볼 수 있는 자연과의 어울림이 자랑이다. 그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미학의 문제다. 경복궁은 거기에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건축이다. 궁궐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은 경복궁의 가시적 정원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왕궁에 그런 산이 있는가. 자금성 주위에는 그런 산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자금성 북쪽에 우리의 북악산에 비하면 '뒷간'보다도 작은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금성에 들어서면 나무 한 그루 없다. 자객이 들어올까봐 있던 나무도 다 없애버린 것이다. 그렇게 철저히 자연을 배제할 수가 없다. 경복궁의 각 권역을 이어주는 길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버드나무, 때죽나무, 마가목, 산딸나무 등 각 건물에 어울리는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종류가 100종이 넘는다.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연과의 어울림이다. 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15~17쪽에서 발췌 인용)

 

 

우리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5년 여름방학에 경복궁에 데려갔었다. 그때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이 나오기 전이라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로 경복궁에 대한 공부를 하고 갔기에, 그 넓은 경복궁에서 빼놓지 않고 꼭 봐야 할 곳을 잘 찾아다녔다. 다녀와서는 체험학습 보고서를 폼나게 만들어 학교축제에 전시도 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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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에는 알라디너들과 만나 경복궁의 매력에 흠뻑 취하는 행운을 다시 누렸다. 어제 1박 2일에서 유홍준 선생님 안내로 멤버들이 둘러본 곳을 우리는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돌아보았으니 그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교태전 뒤쪽으로 돌아서면 홀연히 아름다운 꽃동산이 나타난다. 아미산 회계(花階)라 불리는 이 꽃동산은 말의 진실된 의미에서 여성적인 공간이다. 경복궁이 세계 어느 나라 궁궐보다 인간적 체취가 느껴진다는 것은 아미산 꽃동산 같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자경전 꽃담장과 경회루 연못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미산 화계는 경회루에 연못을 만들면서 퍼낸 흙을 모아 가산을 만들면서 네개의 꽃계단으로 축조한 것이다. 교태전의 화계는 밝고 화사한 꽃담으로 둘려 있고 세번째 단에 아름다운 네개의 굴둑이 줄지어 있어 환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교태전 구들의 굴뚝을 이렇게 멀리 빼내어 골칫거리 건축 장애물을 또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계기로 삼은 것이다. ( 57~58쪽)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는 고종의 어머니인 철종의 왕비(철인왕후)가 생존해 있었고,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와 익종(효명세자)의 왕비인 신정왕후(조대비)도 생존해 있었다. 때문에 이분들을 위한 공간이 별도의 건물로 필요했다. 이른 자전(慈殿)이라고 하는데 그중 조대비가 기거하던 자경전은 건물이 자못 장중하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아들이 왕으로 등극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조대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건축적으로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조대비는 여기에서 1866년까지 수렴첨정을 했다.

  자경전은 집보다 담이 아름답다. 자경전 담장에는 거북등 무늬, 만자무늬, 능화꽃 무늬 등이 사방연속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네 글자를 전서체로 새겨넣었다. 또 매화, 난초, 모란, 연꽃, 대나무, 국화 등을 마치 화투짝 그림처럼 디자인해서 배치했는데 그 환상적인 어울림이 경복궁의 표정을 더없이 밝고 화사하게 만든다. 붉은색 벽돌 자체가 화려하기 그지없는데 여기에 온갖 꽃무늬를 더해 자칫 사치스러운 공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궁궐 건축의 미학이 여기에도 유감없이 구현되어 경복궁은 참으로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59~60쪽)

 

물에 비췬 모습까지 완벽한 경회루의 아름다움은 할 말을 잊게 한다.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다시 봐도 멋지다!

경회루 건축의 아름다움의 반은 그것이 인공방지(方池)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경회루는 밖에서 보면 누각이 물에 어른거리면서 더욱 아름답게 비치며, 누각 안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면 땅과 거리감이 생겨 일상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런 경회루 건축에서 가장 슬기롭고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이 연못물의 순환씨스템이다. 어떤 강제 순환장치 없이 북악산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연못 전체를 돌아나감으로써 항상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81~82쪽)

 

가을 향원정의 아름다움도 경회루에 버금갈 만하다.

 

 

 

 

1박 2일 멤버들이 쬐금 부러웠던 건, 우리가 살펴보지 못한 영제교 천록상의 유머를 찾아낸 것. 혀를 낼름 내밀고 있는 천록이라니... ^^

  영제교 돌다리 양옆의 호안석축에는 물길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돌짐승이 모두 네 마리 조각되어 있다. 이들은 천록이라는 전설속의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천록상에는 왕의 밝은 은혜가 온누리에 미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이다.

  이 천록 조각은 대단히 생동감있는 명작이다. 한껏 웅크리고 있는 자세도 실감나지만 금천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의 표정은 살아있는 듯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천록들의 표정이 개울을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능청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네 마리 모두 표정이 다른데 한 마리는 아인슈타인이 '메롱'하는 것처럼 혓바닥을 날름 내밀고 있다. (44쪽)

  

 

폭우가 쏟아질 때 근정전 박석 이음새를 따라 흐르는 모습을 경복궁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꼽았다는 소장의 말을 확인하고 싶다. 경복궁에 갔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렵겠다.

'빗물이 박석 이음새를 따라 제 길을 찾아가는 그 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물 길은 마냥 구불구불해서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하수루로 급하게 몰리지 않습니다. 옛날 분들의 슬기를 우리는 못 당합니다."(37쪽)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경복궁에 가기 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을 읽고 가는 건 필수고, 어제 방송된 1박 2일 경복궁 편을 보고 가면 더욱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나는 비오는 경복궁보다 눈덮인 경복궁이 더 보고 싶다.

2월 15일 딸내미 대학 졸업식에 가는데, 그때 눈이 온다면 다른 일 제쳐두고 경복궁으로 달려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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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2-0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저게 초등학교 3학년이 한 숙제란 말입니까!!!
떡잎이 달랐구나,,,우리 아이들과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저 답사기 6권 있어요!!
아~~~읽을 책이 무궁무진,,,ㅠㅠ

순오기 2012-02-06 23:37   좋아요 0 | URL
에이~ 저건 엄마랑 같이 만든 거지요.^^
체험학습 보고서를 본 선생님이 축제에 내라고 해서 다시 만들었어요.
답시기는 한번에 읽을 필요없이 답사 가기 전에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좋아요~ ^^

울보 2012-02-0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도 작년에 경복궁에 다녀와서 답사기 써서 냈었는데 ,,여름 참 즐거웠느데 올 겨울은 궁을 한번도 안가봤네여. 자더도 겨울이 가기전에 궁을 한번 찾아가봐야겠어요, 아이랑 옆지기랑 ,손잡고,

순오기 2012-02-06 23:38   좋아요 0 | URL
세 식구가 궁궐 나들이 하시면 좋지요~ 아이 어릴 때 같이 많이 다니셔요.^^

차트랑 2012-02-0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정체성과 관련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알아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
경복궁에 대한 페이퍼는 뜻깊은 일입니다요~

순오기 2012-02-06 23: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이 써주시는 페이퍼도 참 좋습니다.^^
경복궁 페이퍼 뿐 아니라 뜻깊은 페이퍼를 써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하늘바람 2012-02-0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보면서 우리 경복궁 만남을 떠올렸어요 참 그립고 생각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