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전문-
한밤중 밖에는 비가 내리고, 삼남매는 모두 엄마 품을 떠났다.
막내까지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온 밤, 마음이 허전해서 잠이 안온다.
정호승 시인은 사람이니까 외롭고, 인생이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또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 모녀는 문자를 주고 받았다.
"딸, 잠자리에 들었어? 밖엔 비님 오시고, 삼남매는 엄마품을 떠나고~ 엄만 잠이 안오네! 굿나잇^^ "
"아직, 공부하다 방금 왔어~ 머리 아퍼, 엄마 보고 싶어 ㅠㅠ 머리 감고 좀만 더 공부하다 잘려고, 잘자~ 주말에 봐!"
"수고했어, 머린 아침에 감지~실내 너무 춥게 하지 말고! 주말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
"홈피에는 핸드폰 괜찮다 해놓고, 이젠 또 낼 아침에 걷는대ㅠㅠ 연락 못해 이제 ㅠㅜ 빨리 주말 됐으면 좋겠어."
"아침에 걷고 끝나면 주겠지~오빠네도 그래! 오늘 들어갔는데 벌써 주말 기다려ㅋㅋ답 안해도 돼!^^"
지난 7월 21일, 광주 무각사에서 마련한 정호승 시인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시집에 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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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정호승 시인을 만난 건 어른을 위한 동화 <항아리>였다.
오줌독으로 쓰이던 항아리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아름답고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열망한 끝에 비로소 범종소리를 받아내는 음관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강아지 똥>과 견줄만큼 강하게 박힌 작품이다. 시인은 카톨릭 신자인데 작품은 불교적 소재와 불교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가라'는 언젠가는 꼭 선암사에 가보리라, 소망 하나를 품게 만들었다. 그후 광고에서 만난 선암사 큰스님이 해우소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시면 손 씻을 물을 대령하던 동자스님은 또 얼마나 즐거움을 주었던지...^^
나보다 10년 연배인 시인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좋아 몇 권의 시집과 에세이를 갖고 있다. 마음 상태에 따라 어디나 펼쳐서 읽으면 잔잔한 위로가 되는 글이 좋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정호승, 선암사 전문-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 중 으뜸은 윤동주 시인이고, 생존한 시인 중에서는 정호승 시인이 1.2위쯤 되지 않을까...
정호승, 안도현, 김용택 시인은 한 줄에 꿰어 생각하게 되는데, 그 중에도 정호승 시인의 시를 사람들이 더 많이 알 것 같다. 그날 시인께 여쭈었더니 정확하진 않지만 노래로 만들어진 시가 40~50편 정도 될거라고 하셨다.
그날 강연 주제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시'였는데, '시는 어느 날 우리 삶에 울리는 종소리'라고 했다.
우리 삶과 시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존재를 깨닫게 하는 것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했다.
그날 무각사의 풍경소리~
시인은 구체적인 작품을 낭독하고 쓰게 된 특별한 배경을 설명하고, 노래로 만들어진 시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정호승 시 / 김현승 곡 / 안치환 노래-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 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여든아홉이 된 시인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면 '호승이가~'하시는데, 치아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젊을 때, 어머니가 이 아프다고 하시면 '병원에 가보세요' 소리만 하는게 아들의 한계라고 했다. 결국 아플때마다 하나씩 뽑다 보니 몽땅 뽑히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어머니는 이를 다 빼니까 시원하다고 하셨단다. 어느날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잠든 어머니 모습을 보고, 영원히 잠드는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 사랑은 모성적 측면이 강하고, 사랑의 본질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담고 있다고...이등병 편지를 작곡한 김현승이 곡을 붙이고 안치환이 노래한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를 지그시 눈감고 감상하시라. 유튜브에서 검색하는데 이 노래는 안 나온다.
중학교 3학년 국어에 실려 청소년도 알고 있는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시 / 유종호 곡 / 김원중 노래-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시인이 50대에 쓴 시로,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눈물과 그늘이 많아서,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그늘과 눈물을 형상화한 시라고 한다. 자기 삶에 깃든 그늘과 눈물이 있었기에, 남의 눈물도 닦아주고 남의 그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삶의 그늘과 눈물을 원망하지 말고,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스페인 속담에 '항상 햇빛이 비추면 곧 사막이 온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에도 항상 햇빛만 비추는 날씨라면 결국 인생은 황폐한 사막이 된다. 내 인생이 사막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사막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래 사이트에 강의 동영상이 있는데,
제가 참석한 강연회는 아니지만 강의 내용이 제가 들은 것과 똑같으네요.^^
http://www.tagstory.com/video/100120737
이별 노래 -정호승 시 / 최종혁 곡 / 이동원 노래 -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시인이 20대에 쓴 시인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절대 이별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라 결코 떠나지 말라는 역설의 시다. 떠나지 말라고 노래했음에도 현실에선 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말씀에 모두 웃었다. 1982년도에 가수 이동원씨가 찾아와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이미 떠나버린 사람이라 별로 좋지 않은 시라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데~ 1년 뒤에 보니 100만장이나 팔렸더라는...
http://youtu.be/syPBpt41yyQ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 뿐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사람들은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떄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시인은 자신의 인생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느꼈을 때 '산산조각'을 썼다고 한다.
시인은 시집 10권에 실린 700여편의 시에서 딱 한 편을 고르면 '산산조각'을 선택한다며
인간은 산산조각이 날까 걱정하지만, 비로소 산산조각이 나야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으며 평안해질 수 있다고...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려 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 '수선화에게'를 노래로 만든 것이다. 제목은 '수선화에게'지만 수선화를 노래한 게 아니다. 어느 날 너무나 외롭다고 호소하는 친구에게 사람이니까 외로운거라고 했던 말을 시로 옮겨 적은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고... 시인도 아내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가장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은 살면서 어려움이나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견디는 것이라는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가 가슴에 와 닿았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됐다.
양희은이 노래하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들려주었다.
http://youtu.be/6vKWw_hsDic
김원중이 노래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또 다른 분위기다
http://youtu.be/pt6idTYyMMs
인간이니까 외롭지만, 밥값을 하려면 열심히 살아야하리...
밥값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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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각사 경내에는 갖가지 꽃이 피어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진짜 산책코스는 무각사를 품고 있는 작은 산이라고 하기엔 더 작은 동산을 거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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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마을 독서회원들과 함께 유홍준 선생님과의 부여답사에 동참하려고 했는데, 버스 3대가 이미 짜여져서 우리까지 버스 한대 마련해 참여하면 160여명이 되기 때문에 힘들다는 답변에 좌절~~~~
그래서 우리는 행선지를 선암사로 바꿨다.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6>을 읽고 선암사의 매력에 흠뻑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한 부여답사 생생후기는 여기로~
http://blog.aladin.co.kr/714960143/4831168 장하리에서 대조사까지
http://blog.aladin.co.kr/714960143/4837932 무량사에서 성주사지까지
http://blog.aladin.co.kr/714960143/4845157 반교마을에서 정림사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