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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달이네집 ㅣ 낮은산 어린이 1
권정생 지음, 김동성 그림 / 낮은산 / 2001년 6월
권정생 선생님이 유언장에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고 썼던 정호경 신부님이 이 책의 모델이다.
권정생님은 유언장 뿐 아니라 정호경 신부님께 마지막 편지도 썼다.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경상도 북쪽 깊고 깊은 산골의 비나리 마을
통나무집 아저씨와 예닐곱 살의 쪼꼬만 강아지 달이는 이야기를 나눈다.
마을 사람들은 달이가 사람처럼 말하는 걸 한번도 못 들었다지만...
주인공 아저씨(신부님)를 묘사한 글을 보면 권정생 선생님의 짖궃은 일면이 보인다.ㅋㅋ
"그 아저씨는 나이 예순 살이 넘은 건지
아직 예순 살이 덜 되었는지
어정쩡한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아직 새파란 젊은이 같기도 합니다.
생긴 것도 그래요.
누구는 동글동글한 호떡처럼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덜 굽힌 군고구마같이 생겼다고 그러고
또 누구는 어느 길가 비쩍 마른 장승처럼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남자인데도 하회탈 가운데 각시탈처럼 예쁘게 생겼다고 하거든요."
아저씨와 달이는 아침 일찍 경운기를 끌거나 터덜터덜 걸어서 들로 나간다.
풀밭을 매다가 밭고랑에 앉아서 쉴때면 또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달이도 다른 강아지들처럼 다리가 네 개였지만
통나무 집을 짓느라 바쁜 아저씨가 놀아주지 않아서
혼자 심심하다고 산속으로 놀러 갔다가 그만...
누가 노루 잡는다고 놓아 둔 갈고리 같은 덫에 치였느냐 물으니
달이가 고개를 끄덕거렸기 때문에,통나무집 아저씨는 그렇게 믿는다.
어느 날, 시골마을 성당에 가다가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나 갈아끼우고 쉬다가
달이가 하는 말을 들었다.
"하느님도 성당 안에만 있지 말고 이런 데 나와서 살면 좋을 텐데....."
아저씨는 쪼꼬만 달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농사꾼이 되었다.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타일러도 착해지기 어려운데
달이와 세상 모든 짐승들은 부처나 예수처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아저씨다.
어느 달 밤, 개울 둑길에 앉아 하늘의 달님을 쳐다보는 아저씨,
달이는 아저씨가 왜 혼자서 자주 달을 보는지 궁금했다.
달이가 '아빠'라 부르는 아저씨가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 이름은 왜 달이가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어는 날, 꿈속에서 달이는 아저씨랑 둘이 널따란 풀밭에 앉아 있었다.
아저씨는 또 달이에게 다리가 몇 개냐고 물었는데
달이가 다리가 네 개라고 대답한다.
다리가 네 개인 달이와 아저씨는 오래오래 뛰어 다녔다.
새들과 나비들도 날아 오르고
꽃들이 하얗게 빨갛게 노랗게 마구 피어난 들판을...
이 책에서도 권정생님이 평생 꿈꾸어 온 평화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전쟁이 없고 미움과 다툼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유롭게 훨훨 날듯이 살 수 있다면...
김동성 화가의 은은하고 섬세한 동화스런 그림은 글로 다 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안타까운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보여줘 잔잔한 감동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