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반인 막내는 화욜부터 금욜까지 기말시험이다.
언제부턴가 시험기간에 학부모들이 감독을 하게 됐다.

큰딸이 중학교 1학년이던 2002년부터 3년,
둘째가 중학교 1학년이던 2006년부터 3년,
막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2008년부터 3년. 

둘째와 막내가 한 해는 겹쳤으니까, 도합 8년을 중학교 시험 감독으로 봉사했다.
1.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까지 4회, 한 번에 하루나 이틀 하지만 작년엔 중간고사 사흘을 혼자 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민경이 반 엄마들은 시간 내기가 어려운지, 담임샘이 이틀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오전 시간 게으름 부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라, 어제 오늘 3교시 시험감독을 했다.
그러니까 오늘, 순오기 여사의 중학교 학부모 시험감독 8년을 마감한 역사적인 날이다.^^ 

나혼자 기념하기 위해 심야 영화를 보러 갈 예정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못 본 <부당거래>가 심야에만 해서... 황정민 보러 가야지.
 

기말시험은 3학년만 일찍 보고, 1.2학년은 13일부터 본다.
늘 학부모들이 시청각실에서 대기했는데,
이번엔 3학년 엄마들만 오니까 특별히 교장선생님이 교장실에서 대기하게 하셨다.
아~ 교장실에 마련된 다과를 찍었어야 했는데... 가방에 디카는 있었는데 생각이 안났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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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이라 그런지, 시험지 받자 마자 마킹해놓고 자는 녀석이 반마다 한 둘은 꼭 있었다. 
어제 어떤 녀석은 시험문제는 31번까지였는데 40번까지 마킹했다.
감독 선생님이 어이없어 하시며 OMR카드를 바꿔주고, 

"00아, 너 이렇게 시험치는거 네 아버지가 아시냐?"
"당연히 모르시죠.ㅋㅋ"
"이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문제라도 읽어보고 찍어야지."
"아~ 그래도 나름 논리적으로 찍었어요.ㅋㅋ"
"이 다음에 우리 아들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선생님 아들도 저처럼 그럴거에요.ㅋㅋ"

'아~ 어쩌란 말이냐, 이 녀석을... '
스스럼없는 녀석이 얼척없고 우습기도 해, 나역시 슬쩍 웃음이 났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게 00중의 현실입니다."
선생님은 내게 죄송하다고 말씀하시곤
"녀석아, 마킹했다고 잠자지 말고, 20년 후의 네 모습의 상상해봐라."
"사장이 돼 있겠죠."
"녀석아, 말로 하지 말고 맘 속으로 생각하고 있어!"


아이들한테 깐깐하기로 소문난 한문선생님이신데
올해 인근 학교에서 오셨지만, 열악한 우리 지역을 잘 아는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졌다. 

세상은 꼭 공부 잘하는 아이만 성공하는 건 아니다.
못난 것도 힘이 된다는 이상석 선생님의 교단일기 <못난 것도 힘이 된다>가 생각난다. 
아들녀석 1학년때 추천도서라 읽었는데 양철북에서 박재동 삽화로 개정판이 나와서 반가웠다.  

그리고 여학생 하나가 처음부터 엎드려 자는데, 감독선생님이 깨워도 그대로 잤다.
마킹이라도 하고 자나 걱정돼서 끝나기 10분 전에 살짝 봤더니
모조리 3번에 마킹해놓고 자는 거였다.ㅡㅡ 

시험이 종료되고,
"어제 잠을 안자서 피곤했어? 많이 잤으니까 다음 시간에 잘 풀어봐!"
말을 붙이며 등을 두드려 줬더니 멋적은지 씨익~ 웃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3-6반 담임은 체육선생님이신데
다른 반에서 못 본 <우리의 다짐>이란 게시물이 보여 살짝 찍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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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담임선생님의 다짐이다.^^

8년의 마지막 시험감독을 마치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공원길이 아닌 아파트 쪽으로 걸어왔는데
아파트 담에 걸어 둔,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가 눈에 띄어 인증샷~  



나뭇잎이 떨어져 삭막한 풍경이지만, 시를 읽으며 천천히 걷는 그 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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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영화보러 갑니다.
나는 혼자서도 심야영화 보러 다니는 씩씩한 아줌마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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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2-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시험 감독도 개근상이군요. 오랜 시간 수고 많으셨어요. 충분히 상 받으실 만해요.
영화 재밌게 보고 오셔요. 내용이 속상해서 그렇지 영화적으로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순오기 2010-12-02 11:38   좋아요 0 | URL
시험감독 개근상은 상장도 없어요.^^
영화는 잘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 자는 힘 있는 자더군요.ㅜㅜ

무스탕 2010-12-0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성이 1학년때 3번인가 하고 올해 한 번 했어요. 지성이는 다음주에 보는데 이곳의 3학년들도 비슷한 풍경이리라 생각해요 ^^;
영화 재미있게 보세요~ :D

순오기 2010-12-02 11:39   좋아요 0 | URL
시간낼 수 있는 엄마들이 수고해야지 어쩌겠어요.
어제 처음 온 엄마는 차라리 청소를 하지 시험감독은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ㅋㅋ
영화 괜찮았어요, 황정민을 보러 간 거지만.^^

양철나무꾼 2010-12-02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험감독 한번도 못했어요.
학부모 참관수업만 겨우 겨우 가게 돼요.
전 저 시험상황이 충격적인데,일상적인 건가요?ㅠ.ㅠ

영화 재밌게 보셨어요?

순오기 2010-12-02 11:41   좋아요 0 | URL
시험상황은 아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에요.
고등학교 가도 금세 엎드려 자는 아이들 있어요,
선생님이 깨우면 고개만 들었다가 다시 자더라고요.ㅜㅜ

영화는 그런대로...
심야에 혼자 보는 게 더 무서운데, 다행히 한쌍의 부부가 들어와 같이 봤어요.ㅋㅋ

hnine 2010-12-02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험 감독 하는 시간 참 지루하던데요. 그리고 요즘은 시험 시작하고 5분만에 나가는 학생도 꽤 되더라고요.
그동안 수고 정말 많으셨네요. 8년, 말이 8년이지, 무슨 일이든 오랜 시간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영화는 어땠는지요? 전 지난 일요일 혼자 나가서 재미있는 영화 골라보느라고 <이층의 악당> 보고 왔어요.

순오기 2010-12-02 11:44   좋아요 0 | URL
시험감독 지루하지만 아이들을 관찰하면 나름대로 재미도 있어요.^^
시험시간이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엎드려 자는 수밖에...
이층의 악당이 김혜수 나오는 건가요?

후애(厚愛) 2010-12-0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영화는 재밌게 보셨어요?
감기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순오기 2010-12-02 11:45   좋아요 0 | URL
헤헤~ 8년이면 수고는 좀 했지요.^^
영화도 잘 보고 감기 안 걸리게 피곤하면 푹~ 잠자요.
어제 저녁때는 죽은 듯이 잤어요.^^

2010-12-02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12-02 11:48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학부모 12년, 중학교 8년~ 이제 고등학교도 8년을 해야지요.^^
영화할인권은 마지막날까지 사용해야 하니까, 2~3일 뒤 날짜로 예약하면 돼요.
할인 혜택 때문에 공짜 영화 아니면 조조나 심야를 보러 가요~
즐독하시고 리뷰 올리면 볼게요, 나는 아직 리뷰를 안 썼지만요.

같은하늘 2010-12-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하셔도 꾸준한 모습의 오기언니~~ㅎㅎ
근데 시험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저에게도 충격이예요.
이게 일상적인 모습이라는 말씀인가요? 왜? 공부를 안해서? 공부하기 싫어서?
저는 <부당거래> 예전에 보았고, 내일은 한바탕 웃어 보려고 <쪠쩨한 로맨스> 보러 가는데...^^

순오기 2010-12-19 14:12   좋아요 0 | URL
애가 셋이니 모두에게 공평한 대접을 해줘야죠.ㅋㅋ
부당거래~ 후편이 나와도 괜찮을 거 같아요. 속편이 전편을 능가하는게 별로 없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