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까지 장장 6개월의 빛고을 독서마라톤을 끝내고~
10월 18일, 이웃들과 무등산 자락 증심사에 갔었다.
광주에 20년도 넘게 살면서 '증심사, 증심사' 말만 들었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당연히 가봤을 줄 알고 데려가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다.
무등산은 증심사쪽에서 올라가거나, 산장쪽에서 가는 길로 몇 번 가봤지만... 정작 증심사는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다.
이웃들은 그날도 증심사를 가려는 건 아니고 그냥 바람이나 쐬자는 의미였는데 내가 꼭. 기필코 가야 된다고 해서....^^
조선의 태조 이성계, 그는 조선왕조를 세우기 전 나라의 유명한 명산을 찾아다녔다. 산신에게 제사를 올려 그가 세우려는 왕조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빌었다. 어쩌면 정권 찬탈과정에서 수많은 고려 충신들을 죽여야 하는 피비린내를 미리 씻어 내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기도 덕분이었는지 훗날 우리의 명산들은 고려왕조를 뒤덮은 이성계의 쿠데타를 대부분 그대로 받아 주었다. 그러나 단 한 곳, 광주의 무등산 산신만은 소원을 거절했다고 한다. 화가 난 그는 무등산 산신을 멀리 지리산으로 귀양 보내고 이 산을 무정한 산이라고 해 한때 무정산(無情山)으로 이름을 바꿔버리기도 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예 등급을 깎아 無等山이라고) 역사는 반복된다... 600년 뒤 나라의 혼란기를 틈타 권력을 탈취한, 5공 실세 신군부에게도 무등산은 또 한 번 고개를 돌려버린다.
<박상진,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에서.357~358쪽>
무등산 오르는 길, 광주시민의 산책로 같은 곳~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우리를 반겼다.
의재 허백련을 기리는 미술관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학습과, 춘설차 시음이나 체험마당도 펼쳐진다.
무등산에 가려면 보통 중머리재로 향하는데, 우리는 증심사 뱡향으로~
무등산 증심사, 일주문 앞에서 속세의 모든 것들을 털어버리진 못해도 잠시 잊기로 하자.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옆에 부도가 보인다.
부도탑을 지나 증심사 오르는 길~
통일신라 시대 철감선사가 창건, 고려 선종 때 해조국사가 다시 지었고, 세종 때 세 번째 지었다고 한다.
다른 사찰들처럼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의 화를 피할 수 없었고... 1970~1989년까지 현재의 건물로 복원했단다.
증심사는 아담한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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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에 핀 맨드라미와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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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증심사를 찬찬히 둘러보는 동안, 그녀들은 이러고 있었다.^^
제육볶음과 유기농 야채쌈으로 맛난 점심을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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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는 중에 고딩 아들의 담임선생님 전화를 받았는데...
그 이후 하루 해가 짧고, 알라딘에 접속도 못할만큼 분주한 순오기의 일상이 대기하고 있었다.
애 셋, 달랑 삼남매를 키우는데도 별별 일이 다 생긴다. 오늘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