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전 홍길동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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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평점 :
10월 24일 홍길동 생가를 중심으로 한 문학기행을 앞두고, 고등학교 독서회 토론도서로 선정했다. 전에 나랏말에서 나온 청소년용을 읽었지만 민음사에서 나온 건 완판본(전주에서 판각한 목판)과 경판본(경성에서 판각한 목판)이 다 실렸다.
경판 24장본은 내용이 간략해서 완판36장본과 비교해보면 좋을 거 같다. 내용이야 뻔히 아는 거지만, 고전소설의 상투어인 화설(話說)-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 차설(且說)-이야기를 전환할 때, 각설(却說)-앞에 하던 이야기를 그만두고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이란 용어가 나와서 옛이야기를 읽는 맛이 더 났다. 엮은이 김탁환씨는 ’허균, 최후의 19일’을 쓴 작가로 특별히 허균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홍길동전이 영웅의 출세만을 그린 게 아니고, 임진왜란 이후 산적한 조선의 제반 문제를 다룬 사회소설로 적서 차별, 탐관오리의 횡포, 승려의 부패, 조정의 무능함 등이 적나라하게 담겼고, 홍길동은 이런 문제를 백성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홍길동전의 율도국은 허균이 꿈꾼 유토피아로 봉건체제를 그대로 답습한 한계가 있지만, 조선을 율도국으로 만들기 위한 허균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홍길동이 꿈꾼 세상이 기대치만큼 만족스럽지 않아도 소설이 쓰인 당시로는 파격적이었을 듯.
완판 36장본은 내용이 경판본보다 자세해서 좋다. 길동의 형, 홍대감의 소실, 길동을 잡겠다고 나선 이의 이름도 조금씩 다르다. 게다가 이 책은 동양화 풍 삽화가 있어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같으면서 약간 다른 홍길동전을 세번째 보는 거라 살짝 식상하지만, 경판본에는 길동이 집을 떠나기 전 어머니 춘섬에게 ’장길산’을 거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완판본에서는 길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역시 판본이 거듭되면서 훨씬 후기의 장길산 이야기가 끼어든 게 분명하다.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문학사적 가치는 충만하지만, 홍길동이 활빈당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한 것이나, 병조판서를 요구하는 건 출세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위에 올라 아버지를 추존하여 태조대왕이라 하고 어머니를 왕대비에 봉한 거나, 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기존 질서를 답습한 것으로, 독자로서 혁명을 꿈꾼 홍길동을 보고 싶었는데 좀 실망스럽다. 홍길동 부부가 오색구름에 홀연히 자취가 사라진 결말은 환타지다. 홍길동의 형 길현도 연이어 승진해 승상이 되어 잘 살았고, 길동은 원한을 풀고 효성과 우애를 다한 당당한 장부로 아름답고 희한한 일이기에 후세에 알린다는 마무리도 안습이다. 개인의 부귀영화에 머물지 않고 백성을 위한 큰 틀에서 다뤘다면 진정한 우리시대의 영웅이 되었을 텐데 좀 아쉽다.
영인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돼 있는데, 현대어에 익숙한 내겐 외국어나 다름없어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냥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주욱 구경만 하고 글을 읽어 내용을 알아 먹기는 힘들었다. 하하~~ 세종대왕께서 만든 훈민정음을 현대어로만 읽을 수 있으니 이를 어쩌리오!ㅠㅠ
세 권의 홍길동전을 보고 ’허균, 최후의 19일’을 읽었더니, 진정으로 허균이 꿈꾼 새로운 세상을 알 것 같았다.
홍길동전을 읽었다면, 시대를 앞서간 천재 기인 허균이 꿈꾼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허균 최후의 19일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