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유쾌한 지식여행자 요네하라 마리의 세계문화기행이다. 일본에서 났지만 공산주의자인 아버지 덕분에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소녀시절을 보냈고,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상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문화를 접했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마리여사가 부러웠다.

문화편력기라는 제목이 좀 거창하게 생각됐는데, 실제 담긴 이야기들은 소소한 에피소드로 접근하는 세계의 문화 이야기다. 먼저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미식견문록'을 읽어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녀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을 알고 있으니 책내용도 쉽게 이해됐다. 어디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았는지, 아주 짧은 글도 많아 편집이 널널하고 부담없이 가볍게 읽힌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깔깔 웃거나 빙그레 미소 지을 수 있는 에세이로 유고집이라는데,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된 순서는 다른 듯. 

러시아 동시통역사답게 러시아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동유럽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러시아나 일본 속담을 인용하는데, 속담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온전히 말뜻을 알 수 있다. '꽃보다 경단'은 우리의 '금강산도 식후경'과 통하는 속담이다. 두한족열도 추위 나름이고, 축구광 옐친과 푸슈킨 미술관 이야기는 러시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음식이 도자기가 아닌 플라스틱 그릇에 담기는 순간 먹이로 전락한다는 건 의미있는 말이다. 닭고기를 금지한 나폴레옹에게 용감하게 닭요리 내놓은 요리사의 자신감, 맛있는 버섯=무난한 인생, 맛없는 버섯=생명의 위험이라는 철학적 이야기도 재밌다. 어떤 버섯도 먹을 수 있지만, 버섯에 따라 한 번밖에 먹을 수 없다는 독버섯 이야기는 서늘한 유머다. 성찬식에서 흑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카톨릭에서 그리스 정교회가 분리됐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고, 전쟁으로 메밀이 전파됐다는 건 좋은 정보다. 

통역에 관한 에피소드를 '심장에 털이 나 있는 이유'라는 세번째 챕터에 묶었다. 말과 문자의 차이, 러시아와 일본의 언어습관 차이로 통역의 내공을 발휘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페레스트로이카 1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동시통역을 하며, 고르바초프를 지칭할 때 절대 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 화자의 말을 일본어로 통역하면서 무조건 고르바초프로 대체했단다. 러시아식 언어 습관을 일본식 언어 습관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해됐다.

첼리시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야마하 음악학원생들의 작곡 작품을 심사하고 평할 때, 멋지다는 의미의 뉘앙스가 다른 낱말을 무조건'우와 멋지다'라고 통역했더니, 로스트로포비치씨도 '우와 멋지다'라고 멘트했다는 글에 깔깔 웃었다.ㅋㅋ 또한 발화자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나서 통역할 수가 없어 구절 단위로 처리하는데, 마지막에 의미가 다른 말이 될때는 미묘한 차이가 나도 어쩔 수없이 다른 말로 대체한다고. 그래서 동시통역자의 심장이 뻣뻣한 털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유럽이나 미국인에 비해 정보를 비논리적으로 나열하는데, 그것은 단답식 암기 위주로 평가하는 일본과, 구술이나 논문으로 평가하는 서구 학교 교육의 차이로 생각하는데 공감이 됐다. 언론매체의 뉴스 전달방식에 대한 비판도 귀가 쫑긋거렸다. 

요네하라 마리는 참 재밌고 대단한 여자다. 네번째 챕터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기까지의 거리'는 문화적인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적었다.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이 문화라고 정의하고,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는 사이에 놓인 거리가 100년 전보다 더욱 짧아지고 있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마리 여사의 이해와 존중하는 태도가 맘에 들었다. 제아무리 우아한 폼으로 다도와 꽃꽂이를 해도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한 일본의 다도와 꽃꽂이를 하는 여성들의 에피소드는 참 안습이었다. 문화편력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마리여사였기에 '맞선남' 다카하라씨를 이해할 수 있었을 듯, 그 남자 완전 빵 터지는 사람이다.ㅋㅋㅋ

다섯번째 챕터 '드래건 알렉산드라의 심문'은 마리의 추억이다. 프라하 학교 2학년 때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를 익히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주로 빌려봤는데, 사서인 드래건 알렉산드라는 책을 반납할 때, 즐겁게 읽은 책 내용을 들려달라고 해서 독서를 하면서도 들려줄 내용을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독서에 집중하고 러시아어 표현력의 폭과 깊이가 확장되어 드래건에게 감사한다고.^^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참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루소'아이를 망치는 법은 간단하다.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을 몽땅 사주면 된다'고 한 반어적인 표현도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격리된 교실이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 하는 노동을 통해서 배운다'는 말씀도 공감했다. 후반부는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집팔하게 된 동기를 밝혔는데, 먼저 그 책을 봤기 때문에 이해하고 공감했다. 

 

서비스로 가장 웃겼던 153쪽의 이야기를 옮긴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세 쌍의 커플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고 하자. 미국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Give me the honey, my Honey!" (꿀 좀 집어주오, 나의 허니!) 

영국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Give me the sugar, my Sugar!" (설탕 좀 집어주구려, 나의 슈거!) 

일본인 남편도 아내에게, "햄 좀 집어주쇼......" 하고 말을 꺼내기는 했는데, 입을 다물고 한참 고심하더니 덧붙였다.
"나의 새끼 돼지."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송이 2010-08-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작가가 정말 부럽군요.^^
책도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구요.^^

순오기 2010-08-23 14:52   좋아요 0 | URL
가볍고 재미있고 부담없이 읽혀요.^^

책가방 2010-08-2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어쩜 이리도 감칠맛나게 쓰시는지.. 그저 부럽네요.
전혀 관심없던 책도 순오기님 리뷰를 읽으면 꼭 읽고 싶어질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8-23 14:54   좋아요 0 | URL
이거 사흘에 나눠 읽으며 독서마라톤에 남겼던 600자평의 종합판 리뷰인데...
괜찮았나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양철나무꾼 2010-08-2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부분에서 낄낄거렸는데...^^
이 책을 읽은 제가 보기에,
마리 여사보다 순오기님의 리뷰가 더 통통,재치만점이십니다~^^

순오기 2010-08-23 14:55   좋아요 0 | URL
히히~ 정말 재밌죠.ㅋㅋ
에이~ 마리여사보다 통통, 재치만점이라는 말은 비행기에요.^^

마녀고양이 2010-08-2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캡쳐하신 저 부분에서 한참 낄낄거린 기억이... 아하하.
일찍 돌아가셔서 참 가슴아파여.

순오기 2010-08-23 14:55   좋아요 0 | URL
낄낄, 큭큭~ 재밌게 있히죠.
그러게요~ 아까운 마리 여사 56세는 너무 짧았어요.ㅜㅜ

꿈꾸는섬 2010-08-2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캡쳐...정말 ... 배꼽잡고 웃었어요.^^

순오기 2010-08-23 15: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같은하늘 2010-08-25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웃겨서 어쩌나...

순오기 2010-08-26 00:45   좋아요 0 | URL
정말 웃기죠.ㅋㅋ